[작가들의 한 물건] 여름의 냄새

2019-08-23     송지현

나는 스무 살부터 매년 여름이면 망상해수욕장에 가곤 했다. 그러다가 아예 망상해수욕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은 것이 작년 봄, 정확히는 2018년 3월이었다. 계약 만료가 되면 자취방을 옮겨 다니긴 했지만 주소까지 이전한 것은 처음이었다. 주민등록증 뒤에 붙여진 주소가, 또 평생 살던 도가 아닌 다른 도로 적힌 것이 신기해 동사무소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동해에 온 뒤 한 달은 내내 잠만 잤다. 잠깐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잠들고 그게 다였다. 그러다 동생이 회사를 그만두고 동해에 왔다. 내가 자는 것만큼 동생도 잤다. 나만큼 잘 자는 동생을 보며 동생이 그간 서울에서 지나온 계절 을 짐작해 볼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실컷 자다가 어느 날 일어났다. 일어나서 밀린 일을 했다. 실업급여도 신청하고 강릉까지 영화를 보러 가거나 맛집 탐방을 했다. 그리고 매일 집 앞 바다에 나갔다. 정수리 바로 위에 떠 있는 햇빛을 맞으며 웃을 때면 우리 얼굴엔 그림자가 일렁댔다. 얼굴에 파도가 새겨지는 것 같았다. 잔잔한 봄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여름이 왔다. 기온이 올라가니 갑자기 기운이 생겼다. 그때부터 친구들을 초대하고 망 상해수욕장에서 열린 락페스티벌에도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을 뜨면 바다 로 가서 해수욕을 했다. 여름 동안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일어나서 씻지 않고 간단하게 밥을 먹는다. 수영복을 입고 수건과 선크림을 챙겨 바다로 간 다. 튜브를 대여한다. 물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물 밖에 나와서 체온을 올리고 다시 물에 들어간다. 집에 돌아와 모래가 잔뜩 낀 옷을 빨고 샤워를 한다. 간단 히 밥을 먹는다. 친구에게 말하니 문학 작품에서나 보던 남프랑스적인 삶이라고 했고, 그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그 말이 서울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동 해로 떠나온 것에 대한 긍정의 대답처럼 들렸기 때문일 거다. 동생과 나는 고 개를 끄덕였다. 이게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지. 동생은 물을 조금 무서워한다. 언제부터 무서워했냐고 물어보니 아주 어 릴 때라고 했다. 부모님과 수영장에 갔고 수영장에 들어간 것은 동생 혼자였 다고 했다. 저 멀리 선베드에 앉아 있는 부모님에게 손을 흔들고 물속에 들어 가 귀가 물에 잠기는 순간이 너무도 적막했고, 엄마도 아빠도 어딘가 멀리로 떠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그 뒤로도 그 비슷한 적막감이 떠오를 때마다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 동생을 위해 물에 들어갈 때마다 튜브를 대여했다. 한 번 대여하는 금액은 오천 원이었고, 해수욕장이 폐장하는 6시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번 오천 원을 내고 튜브를 빌렸다.

그러다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튜브가 진열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튜브를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아틀란티스라고 적힌 튜브와 부풀면 캐릭터의 얼굴이 되는 비치볼을 샀다. 아틀란티스는 불고 나면 좀 어지럽긴 했지만 입 으로도 충분히 불 수 있는 크기였다. 우리는 이제 바다에 가면 튜브를 부는 것 으로 해수욕을 시작했다. 어지러움 탓에 가만히 누워 해를 바라보면 투명한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발바닥에 엉기는 모래는 어릴 때 먹던 톡톡 터지는 사탕 같았다.

* 어디선가 본 글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모든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버릴 수가 있었는데 함께 휴가에 가서 쓴 튜브 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고. 바다에서 열심히 불었던 그 튜브 안에 아내의 호흡이 들어 있을 생각을 하니 그게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는, 그런 이야기.

* 아틀란티스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도 열심히 바람을 불고 동생 은 튜브를 타고 나는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다. 물속에서 조개를 줍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동생이 말한 적막감을 떠올렸고 수면 위로 올라 한바탕 물을 뱉어 냈다. 그리고 동생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동생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동생에게로 헤엄쳐 가 튜브에 손을 올렸고, 튜브는 공기가 빠져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튜브를 끌고 간신히 해변에 도착했 을 때 동생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동생이 웃는 걸 보고 안도했다. 그래서 같 이 더 크게 웃었다. 집에 가는 길에 우리는 욕을 하며 아틀란티스를 버렸다. 그 뒤로도 우리는 이마트에서 몇 개의 튜브를 더 샀지만 모두 아틀란티스 와 운명을 같이 했다. 우리는 다시 튜브를 대여하기 시작했다.

해수욕장에 사람이 북적이는 계절이 지나고 가을이, 겨울이, 다시 봄이 지 났다. 그 사이 동생과 나는 해수욕장 앞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 다.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날에는 이마트 시식 코너에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작년 여름의 남프랑스적인 삶과는 아주 달라진, 노동 의 삶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여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여름이 왔다. 해변에는 다시 사람이 북적였고 파라솔이 세워졌고 튜브 대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작년과 달랐다. 해변을 채우던 사람들이 카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장 근무에 대타에 정신이 없었다. 여름이 왔지만 올해는 해변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튜브도 파라솔도 투명한 별도 발바닥을 간질이는 터지는 사탕도,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 튜브에 대해 쓰면서 나는 친구들에게 튜브 하면 생각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친구 중 한 명은 작년 여름, 아이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날따라 아이가 일찍 잠들어서 길어진 술자리를 나도 기억한다. 또 다 른 친구는 내가 알고 있는 저 이야기를 했다. 아내의 튜브를 차마 버릴 수 없었 다는 이야기. 나는 우리가 같은 글을 보고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동생은 역시 아틀란티스가 수명을 다한 날이라고 했 다. 나는, 튜브를 생각하면 이젠 소유와 대여의 개념이 먼저 떠오른다. 몇 번이 나 샀지만 금세 망가져 버린 튜브들. 이상하게 튜브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물 건인 것 같아. 아니, 결국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졌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어딘가로부터 대여하고 있던 게 아닐까.

튜브는 한철만 쓰는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망가져 버렸다. 동생 과 나의 지난 여름 한철처럼. 우리는 이제 동해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 지만 떠나는 것이 이곳이 지긋지긋해서라든가 일을 너무 많이 하게 돼서라든 가,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냥 이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 동해라는 곳을 대여하 는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 동생과 집에 돌아와 튜브의 바람을 뺄 때면 자꾸 바람이 빠지는 입구에 서로 얼굴을 갖다 댔다. 우리는 웃으면서 이게 여름의 냄새라고 했다. 여름의 냄새는 고무 바람으로 각인되었다.

 

송지현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로 등단.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가 있다. 현재 동생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동해에 거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