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 사찰이 대중과 가까워지는 아주 특별한 방식

통도사 서운암 효범 스님과 공작새 (feat. 칠면조와 거위, 그리고 닭)

2019-08-23     조혜영

웹 서핑을 하다 어느 블로그에서 공작새 사진을 보았다. 하얀 눈꽃 같은 꽁지를 활짝 펼친 채 우아하게 앉아 있는 자태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물원에 있는 공작새가 아니었다. 사찰에 살고 있는 공작새라고 했다. 공작새를 만나기 위해 양산 통도사 서운암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도량에서 새와 함께 힐링을

통도사 주차장을 지나 좁은 도로를 타고 몇 분을 더 달려 서운암에 도착했다. 암자라기보다는 작은 사찰 정도의 규모라고 할까. 잘 닦여진 길과 연못, 푸른 숲 사이로 자리한 벤치들이 마치 공원에 온 듯한 편안함을 준다. 서운암 주지 이신 효범 스님이 서울에서 내려온 객을 시원한 오미자차 한 잔으로 맞이하신 다. 진한 오미자 맛이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게 만든다. 본격적으로 서운암 에 사는 공작새에 대해 여쭈려는데, 스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우리 서운암에는 공작새가 여섯 마리 있습니다. 공작새뿐만 아니라 칠면 조, 거위, 관상용 닭도 어우러져 같이 살고 있죠.” 공작새만도 놀라운데, 칠면조와 거위, 닭까지…. 어떤 사연으로 서운암에 각종 조류들이 함께 살게 된 것일까? “현재 서운암 방장스님이신 성파 대종사께서 서운암으로 오시면서 시작 된 일입니다. 대략 15년에서 20년 전 이야기지요. 급속도로 변해가는 삭막한 사회에서 절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시다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운암에 들꽃도 가꾸시고, 새들과도 인연이 되어 데려오게 되신 거죠.” 새들이 서운암에 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서운암에서 키우고 있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서운암의 자연 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일 뿐. 따로 사료를 주는 일도 없다. 새들 스스로 자연 속에서 벌레를 잡아먹으며 야생적으로 살아 가고 있다고 한다.

“처음 공작새를 데려올 때는 1-2년 정도 훈련을 시킵니다. 훈련을 안 시키 면 다시 날아가기 때문에 큰 우리에 넣고 먹이를 주면서 적응을 시키는 것이 죠. 그 이후에 문을 열어놓으면 마음껏 날아다니면서도 서운암 주변을 크게 벗 어나진 않습니다. 가끔은 길 잃은 공작들이 통도사 큰절에 가 있기도 하고 산 을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사찰로 전화가 옵니다. 서운암 공작새를 보았다면서. 하늘엔 담장이 없으니 마음껏 날아다니지만 때가 되면 서운암 도량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스님이 예불을 볼 때면 법당까지 따라 들어오기도 하는 공작새는 서운암 의 유명 인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신도들뿐 아니라, 불자가 아닌 분들까지도 공작새를 보기 위해 서운암을 찾아올 정도다. “주말이면 많은 분들이 서운암을 찾아주십니다. 성파 대종사께서 발원하 신 대로, 사찰이 다가가기 힘든 이상적 공간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사는 현실 속에서 함께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서 운암의 아름다운 도량에 오셔서 새들과 함께 기쁨을 느끼고 힐링을 하고 가셨 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게 진짜 불교 아닐까요?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차별도 다 중생놀음일 뿐. 다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자연 그대로, 본성 그대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서운암 도량이야말로 부처님의 이런 가르침을 현실화하는 곳이죠.”
 

함께하되 간섭하지 않기, 마음대로 살기

효범 스님이 공작새를 보러 가자며 앞장을 서신다. “가둬놓고 키우는 게 아니라 애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으니 한번 가보시죠.”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길가에 청공작 한 마리가 윤기 나는 푸른 꽁지를 펼치고 앉아 있다.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사람을 보고도 날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신기하다.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공작인가보다 생각이 들 때쯤 효범 스님이 안타까움을 토로하신다. “요즘 이 녀석 꽁지가 많이 빠졌어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거죠. 사찰 에 와서 공작새가 있으면 그냥 편안하게 보면서 즐기면 되는데, 가끔씩 만지고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세속의 음식을 주는 경우도 있고요.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들기도 하고 성격이 포악해지는 녀석들도 있죠. 동물은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먼저 달려들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몰라서 괴롭힐 수 있 는데, 함께 온 어른들이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잘 지도해주 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숲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저만치 칠면조 한 마리가 관상용 닭과 함께 뒤뚱대며 걸어오는 게 아닌가. 역시 사람을 보고 도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고 자연스레 움직인다. 앞서가는 작은 닭을 커다란 칠 면조가 뒤따라가는 모습이 마치 동물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 같다. 칠면조는 닭과 친구가 되고 싶은가보다. 어쩌면 둘은 이미 친구 사이인지도 모 르지만. “닭장은 있지만 문은 항상 열어둡니다. 닭도 따로 사료를 주지 않아요. 숲 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죠. 달걀도 낳지만 꺼내먹거나 하진 않습니다. 어차피 사찰에서는 육식을 하지 않으니까요. 닭이 알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나기도 해 요. 알을 품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것도 모두 닭 마음입니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 비좁은 닭장과 비교하면 이곳 서운암은 닭들에게 극락 세상이 아닐까. 어느 곳도 막힘없는 넓은 공간에서 마음대로 살고 있는 새들을 보니 내 마음까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사람의 기 척을 느낀 거위들이 밭고랑에서 일제히 고개를 내민다. 거위 대여섯 마리가 일 제히 꽥꽥 울어대니 소리가 요란하다. 밭 가까운 곳에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 서 헤엄치다 잠깐 산책을 나왔나 보다.

“가끔은 거위들이 차가 다니는 길가에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지나가던 차가 클랙슨도 누르지 않고 거위가 지나갈 때까지 멈춰서 기다려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더라고요.” 길 끝에 오르니 나지막한 언덕 아래 서운암 도량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눈앞에 푸른 하늘과 녹음이 넓게 펼쳐진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한여름의 땀을 식혀준다. 효범 스님이 장경각을 보여주시겠다며 안내를 하신다. “서운암 장경각에는 16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30여 년 전, 성파 대종사께서 흙을 구운 도자기 판에 실크 인쇄로 제작하신 겁니다. 16만대장경 이라고 해서 해인사 장경각의 팔만대장경보다 내용이 더 많은 건 아니에요. 팔 만대장경은 앞뒤로 경을 새겨 넣은 것이고, 16만대장경은 한쪽 면에만 넣은 것 이 차이죠. 쭉 한번 둘러보세요. 다 보고 나오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드실 겁니다.” 미로처럼 좁은 길을 따라 16만대장경을 둘러보고 나니 효범 스님의 말씀 대로 심신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장경각을 나와 다시 내려다본 시야 끝에 둥근 산줄기가 포근하고 정겹다. 순간, 새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공작새 우는 소리예요. 생각보다 소리가 아름답진 않죠? 특히 새벽녘이 랑 저녁때 많이 우는데, 요즘 같은 안거 중에는 선방에 계신 스님들에게 방해 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공작새가 스님들의 수행을 돕고 있는지 도 모르죠. 들려오는 소리에 끄달리지 말고 화두를 일념으로 붙잡고 있으라 고….” 서운암에서는 매년 4월 들꽃축제가 열린다. 봄이면 도량 곳곳에 300여 종 의 야생화가 피어난다고 한다. 야생화 속에서 공작과 칠면조, 거위와 닭들이 함께 할 모습을 상상하니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효범 스님의 작은 원(願) 이 있다면, 아름다운 도량 서운암에 숲속 웨딩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렇게 되면 사찰이 좀 더 대중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봄 날, 야생화 속에서 공작과 거위들이 들러리가 된 숲속 결혼식을 꼭 한번 보고 싶다. 효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는데, 아스팔트 위에 거위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투샷 으로 멋있게 걸어오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면 과장일까). 오른발 왼발, 마치 구령을 맞춘 듯이. 역시 사람을 보고도 놀란 기색 없이 당당히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아스팔트 위 의 거위와 산비둘기라니…. 둘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한참 을 바라보았다. 서운암의 자연 속에서 그렇게 나 또한 그들과 친구가 된 기분 이었다.

● 매월 <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에 소개되는 이야기를 불광미디어 유튜브 채널(‘불광미디어’ 검색)과 불광미디어 공식 사이트(www.bulkwang.co.kr)에서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_ 조혜영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추계예술대 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 BBS불교방송 및 KBS 라디오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며, 대학에서 영화,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림_ 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