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일상다담] 나 아닌 것을 위해 고민한다는 것, 그거 철 든다는 거예요!

2019-08-22     양민호

서울 조계사 지현스님

법종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1년 사미계를, 1975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12~15대 중앙종회의원,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조계종 총무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조계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 등이 있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절, 한국불교 1번지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를 찾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머물고 지나는 곳, 그만큼 많은 사연과 바람이 서려 있는 공간. 그곳에서 주지 지현 스님을 만나 차 한 잔 얻어 마시며 이야기 나눴다. 평소 사람 사는 얘기 들어주는 데 관심이 많다는 스님께 한 고민 더 던져볼 요량이었다.

 

| 조계사는 감동이 많은 절이에요! 

"스님, 이 차는 무슨 차인가요? 향이 은은하고 좋습니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무더운 날. 지현 스님이 내어준 따듯한 차 한 잔이 급하지 않게 천천히 몸 온도를 바로잡아 준다. 열로써 열을 다스린다는 이치가 이런 거구 나 싶다. 요즘은 차 대신 커피로 전향(?)한 스님들 이 많아서 절에 가더라도 차 한 잔 얻어 마시기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커피와 상극인 몸으로 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래서일까. 작은 찻잔에 담긴 향긋함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선운사에서 직접 재배해서 보내온 발효차 예요. 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좋아한답니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까 이제 스님들도 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대략 중간쯤 됩니다. 원래 차를 마실 때 커피콩을 열 알 정도 넣어 마셔요. 그러면 아주 연한 커피향이 감돌면 서 마시기 딱 좋습니다. 오늘은 깜빡하고 안 넣었네요. 그냥 드세요(웃음).”

스님은 따르고, 나는 마시고… 홀짝홀짝 몇잔인가 들이켜고 나니 몸 따라 마음도 덩달아 풀 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큰절 살림을 담당하고 있 는 스님을 만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조금 긴장 했던 걸까. 좋은 차 한 잔에, 유쾌한 스님 웃음소리에 굳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 제야 말문이 트여 스님께 조계사는 어떤 절인지 물었다. 간단히 소개 정도 들려주십사 하고 던진 말인데, 돌아오는 스님 답이 아주 인상적이다.

“조계사는 감동이 많은 절입니다. 한번은 겨 울에 일주문을 지나는데 앞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서 물이 뽀글뽀글 샘솟는 거예요. 관리자가 분수 스위치를 내리지 않은 거죠. 그런데 그 덕에 물이 얼지 않아서 목마른 새들이 와서 물을 마실 수 있 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래서 앞으로도 쭉 스위치를 내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조계사 에는 담장이 없잖아요. 사방으로 뚫려 있어서 언 제든지 오갈 수 있죠. 그 덕에 많은 사람이 점심 때나 밤에 경내를 산책하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친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힐링 공간이 되어주는 거죠.” 지현 스님이 절 곳곳에서 목격한 감동의 순 간은 이뿐 만이 아니다. 추운 겨울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유모차에 의지해 탑 앞에 서서 합장 기도를 올리는 모습, 매번 초하루가 되면 부처님 전 에 올렸던 떡을 받아가기 위해 몇 시간이고 긴 줄 을 서는 사람들, 도량석이 울릴 때부터 늦은 밤까지 법당에 앉아 정진하는 불자들 모습에서 진한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신이 아 닌, 다른 누군가를 향한 그들의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란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어요. 궁 금해서 한 분 한 분 만나봤죠. 떡 받으려고 줄도 서 보고요.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아, 이것이 조계사의 참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 어요. 하루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 경내에 앉아 법 당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중년 남성을 만난 적이 있어요. 명예퇴직한 분이더라고요. 가족들 보기 미안해서 매일 아침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데, 조용한 밤에 경내를 한 바퀴 돌고 가면 마음이 탁 트인다는 거예요.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겠어요. 이곳 조계사가, 그런 마음의 소 리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행복합니다.” 바람이든 고민이든, 가슴 속에 할 말 가득한 사람들이 찾는 곳. 그래서 감동이 깃든 절. 스님 얘기를 듣고 보니 새삼 조계사라는 절이 새롭게 다가온다.

삭막한 이 도심에 오아시스 같은 절이 있다는 게 고맙다. 이제 누가 조계사에 관해 물으면 스님 말씀 고대로 들려줘야지 속으로 생각하 면서 “앞으로 사람들이 너도나도 얘기 좀 들어달 라고 찾아오면 어떡합니까?” 하고 실없이 물었더니 “아, 나는 다가갈 용기도 말주변도 부족한데… 노력해볼게요” 하며 스님 크게 웃으신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민 

“어떤 얘길 나누고 싶으신가요?” “그냥 이런저런 사는 얘기요.” 지현스님과 차담 약속을 잡으며 주고받은 말이다. 스님이 더는 묻지 않기에 따로 덧붙이진 않았는데, 실은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약속한 날이 오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 에 꺼내든 주젯거리는 ‘부담감’이었다. 나이가 들 수록 커지는 삶에 대한 걱정,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데서 오는 중압감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물었다. 스님 답은 거침이 없었다. “철 든다는 거예요. 책임감을 느낀다는 거 말 이죠. ‘어떻게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내 가족,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자칫 삶의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민입니까. 내가 아닌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애쓴다는 게요. 그러니 무작정 내려놓겠다는 생각보다 현실을 잘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만약 걱정이 넘쳐서 도저히 이대로 는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두 가지를 활용해 보세 요. 신앙과 사랑하는 사람(아내, 남편, 가족). 신앙의 힘 중 하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 바르게 보 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에요. 정확히 볼 수 있으면 지혜가 생기는 법이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함께함으로써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서 정작 그 사람 생각을 들 어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진솔하게 이야기 나눔으로써 함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과 사랑하는 사람. 두 가지 모두 곁에 있 지만, 스님 말씀처럼 이들을 대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라도 스님 말씀 따라 신앙심도 키우고, 사랑하는 이와 대화도 자주 하겠다고, 그래서 제 길 한번 잘 찾아보겠노라 큰소리쳤더니, 스님 한 말씀 덧붙이신다. “평소에 잘하세요.” 갑자기 쑥 하고 화두가 날아든다.

문득, 스님도 삶의 무게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스님께 물었더니, 당연한 소리! 스님도 사람인데 왜 그런 고민 안 해봤겠느냐며 속 얘기를 들려주신다. “어려서 출가해서 멋모르고 살다가 크게 두 번 사춘기(스님은 고민이 많던 시기를 사춘기라 표현한다)를 겪 었어요. 한번은 일타 스님 다비식장에 갔다가 한 노보살님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내가 죽으면 누가 저렇게 울어 줄까?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중압감이 확 밀려오는 거예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좌선을 하고, 법당에서 밤새 절도 하고 그랬죠. 또 한번은 서른 살 중반쯤 되었을 땐데, 어렸을 때 제가 소천스님 시봉을 했거든요. 매일 아침 밥상을 가지고 가면 스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지현이 머리 만져봤냐?’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어느 날 세수하다가 퍼뜩 스님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스님이 왜 그러셨을까? 아, 나는 속인이 아니고 출가수행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거구나’ 하 고 그 뜻을 알았죠. 그때부터 스님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늘 고민하며 삽니다. 지금도 머리 만지는 게 제 화두예요.” 수행자로서의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이 들 때마다 스님은 명상하고 절을 하며 수행에 매진 한단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고뇌가 환 희심으로 바뀐다고. 누구나 그런 자신만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스님 말씀이다.

한편 스님은 스스로 눈물이 많은 편이라고 고백하신다. 마음이 여려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수행해서 마음이 맑아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법회 때 난치병 아이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눈물이 날 뻔한 걸 겨우 참으셨다고(조계사는 생명살림방생법회 때마다 난치병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부금을 모아 전달하고 있다).

그 말을 듣고 “스님은 저한테 부족한 공감 능력을 가지신 것 같아요, 부럽네요”라고 했더니 “그래요? 난 스스로 굉장히 냉정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며 또 한 번 큰소리로 웃으신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지현 스님과의 차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겁고 유쾌했다. 풍미 좋은 차에, 그보다 깊고 진한 스님 말씀까지 들으 니 마음속까지 든든해진 기분이다. 찻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천천히 들이켜며 스님께 한 말 씀 부탁드렸다. 아쉽게(?) 오늘 함께하지 못한 수 천만 대한민국 고민자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린다고.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어요. 멀리 보지 말고 자기 발밑부터 먼저 살피라는 말인데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또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관조하는 자세를 가져보세요. 없어 보여도, 곧 길이 보일 겁니다.

글. 양민호 사진. 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