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나도 모르는 이 감정, 어떻게 할까?]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감정

2019-07-25     송민령

많은 사람이 감정을 불편하게 여긴다. 사회생활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겨지며, 들쑥날쑥한 감정은 일에 집중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어떤 상황이건 평온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회사에서만이라도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뇌과학(혹은 신경과학)은 뇌를 비롯한 신경계의 구조와 원리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신경계가 마음과 가장 밀접한 신체 조직이기에, 신경계를 연구하다 보면 감정을 비롯한 마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몸과 마음

흔히들 감정을 비롯한 정신 활동은 신체와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감정과 신체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멍게류이다. 멍게류는 어렸을 때 올챙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돌아다닌다. 이 시기에는 몸 안에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곳에 정착하고 나면 모양이 변해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며, 신경계도 몸속의 지방처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서 없애버린다. 이는 신경계가 움직임과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동물에게는 왜 신경계가 필요할까? 근육을 사용하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만 식물보다 빨리 움직여서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이란 천적이 없는 안전한 환경이면서 신체적 필요(수분 보충, 에너지 공급 등)를 충족하는 환경이다. 유리한 환경으로 이동하려면, 어느 쪽으로 가면 어떤 환경이 펼쳐질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신체의 필요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예측이 어긋났을 때 (예: 갑자기 천적이 나타났을 때) 상황에 맞게 움직여 살아남아야 한다. 이처럼 주변 상황과 신체 상태를 예측하여 적절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려면 복잡한 정보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는 신경계가
생겨났다.

 

감정은 상황에 대한 나의 입장과 대응 양식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면서, 상황에 맞게 몸의 반응을 준비시키는 것이 감정이다. 그래서 감정은 몸의 반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이나 중요한 시험에 합격했을 때처럼 기뻤던 순간을 생각해보자.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만 ‘기쁘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기쁨이 아니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 웃음이 나오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는 상태가 기쁨이다. 마찬가지로 ‘무섭다’라고 생각하는 데서 그칠 수 있으면 공포가 아니다. 몸이 굳고 냉정하게 생각하기 힘든 상태가 공포이다. 우울한데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우울하면 침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뇌 속에서도 감정은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몸의 반응을 준비시키는 부위들과 관련된다. 예컨대 감정 처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는 감정에 따라 신체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양쪽 편도체가 손상된 환자들은 무서워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식은땀이 나는 등의 신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감정과 이성의 통합에 관여하는 안와전두엽은 상황이 나에게 좋은지 나쁜지 알려주고 그에 맞게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안와전두엽이 손상되면,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지처럼 간단한 결정도 대단히 힘들어진다고 한다.
감정은 대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기 때문에, 아무 감정도 일으키지 않은 사건보다는 호기심과 재미를 느꼈던 것, 두려웠던 것, 슬펐던것, 설렜??것들이 나에게 중요한 사건이 된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든 일으키는 대상에 주의가 집중되고 더 잘 기억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준 내용보다는 선생님의 농담이 더 잘 기억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감정의 현명함

흔히들 이성은 현명하고 감정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물론 감정이 틀릴 때도 있지만 감정이 없으면 현명하기도 어렵다. 감정은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요약해서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오와 도박 과제’라는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 참가자에게 4개의 카드 묶음을 제시하고, 한 번에 한 묶음을 골라 카드를 뒤집게 한다. 네 묶음 중 두 묶음은 뒤집다 보면 돈을 얻고, 나머지 두 묶음은 뒤집다 보면 돈을 잃게 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대개 20번쯤 뒤집고 나면 어떤 카드 묶음이 좋은지 몸으로 알기 시작한다. 나쁜 묶음을 고를 때면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땀 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50번쯤 뒤집고 나면 ‘어째선지 이 카드 묶음은 좋고, 저 카드 묶음은 싫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며, 80번쯤 뒤집고 난 후에야 이성적으로도 어떤 카드 묶음이 좋은지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 덕분에 좋은 카드를 일찍부터 더 자주 고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편도체나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나쁜 카드 묶음을 고를 때도 피부에서 땀 분비가 늘어나지 않으며, 좋은 카드 묶음을 더 자주 고르지도 못한다.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심지어 어떤 카드 묶음이 좋은지 이성적으로 알고 난 후에도 좋은 카드 묶음을 더 자주 고르지 않았다.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 나에게 좋은지 나쁜지 알려주고, 그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 감정인데 이 환자들은 감정을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하의 이성도 감정이 없으면 쓸모가 없는 셈이다.

 

이성과 감정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성은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좋아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를 찾도록, 미워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미워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를 찾도록 동작하는 등 감정에 좌우될 때가 많다. 실제로 이성과 감정은 뇌과학이 생겨나기 전부터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 생겨난 구분일 뿐, 뇌 속에서는 이성과 감정을 명확하게 나누기가 어렵다. 예컨대 편도체는 감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지만 주의 집중이나 학습처럼 흔히 이성이라고 간주되는 기능도 수행한다.
또 뇌는 여러 부위들이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네트워크이다. 발이 넓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두루 영향을 끼치듯, 뇌 속 네트워크에서도 마당발 부위들이 널리 영향을 끼친다. 이와 같은 마당발 부위 중에는 편도체처럼 감정에서 중요한 부위들이 포함된다. 더욱이 뇌 전체의 활동 양식이 감정 상태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조절물질의 분비가 늘어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면 신경세포들이 활동하는 양상과 뇌 부위들이 상호 작용하는 양상이 달라진다. 노르에피 네프린뿐만 아니라 세로토닌, 도파민 등 다른 신경조절물질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 따라서 감정에 관여하는 뇌 부위와 이성에 관여하는 부위가 무 자르듯 구별된다기보다는, 뇌 전체의 활동 양식이 감정 상태에 따라 변한다고 봐야 한다.

 

감정 사용법

이제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감정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이지만은 않으며, 살아가는 데 불필요한 부차적인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감정은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그로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감정은 신체는 물론 살아가는 일과도 깊이 얽혀 있다.
감정의 특징을 알면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유추할 수 있다. 첫째, 감정은 신체 상태와 관련되므로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한 식생활, 적절한 운동은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최근에는 약 대신 운동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원리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호흡도 감정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 등에서는 명상을 심리 치료와 안정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둘째, 감정은 상황을 인식하는 방식이므로 상황 인식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 상황 인식은 내가 무엇을 보고 듣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화나고 선정적인 내용을 접하면 마음도 요동치고, 편안한 내용을 접하면 감정도 차분해진다. 상황과 감정을 인식하는 방식도 습관화되므로 (예: 대체로 긍정적인 사람과 늘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모르고 끌려가지 않도록 깨어 있는 것도 필요하다. 깨어서 한순간에 일어나는 온갖 감정과 상황의 이모저모를 살피다 보면 상황 인식과 감정도 바뀔 수 있다. 물론 방법을 안다고 당장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현재 모습이 있기까지 오랫동안 그럴만한 이유들이 쌓였고, 뇌 속에 있는 860억 개 신경 세포들의 연결에 그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신경세포들이 바뀌자면 시간이 걸린다. 단숨에 변하면 좋겠지만, 천천히 변화하는 덕분에 사람은 갑작스러운 나쁜 일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이 인생의 첫날인 것처럼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두 발 앞으로 나아가고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글. 송민령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며 도파민이 감정과 학습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라는 책을 출간하여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 올해의 과학 도서로 선정된 바 있으며, 경향신문과 매일 경제에 뇌과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