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오후불식의 한의학적 고찰

2019-07-25     김산

부처님은 출가하신 이후에 탁발로 끼니를 해결하셨다. 보통 오전에 탁발을 하면 오전 중에 그 음식을 다 드시고 이후에는 더 이상 드시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실천하셨다. 이 또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신 듯하다. 그런데 한의사의 눈으로 오후불식을 바라보면, 건강을 지키며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로 보인다.

인간의 몸 안에는 태양과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에 부합하는 시간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다. 지구의 자전에 의해 낮과 밤이 생기며 태양이 지구를 비추는 일조량에 따라 계절이 생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순환 주기에 따라 생체 리듬을 맞추고 살아갈 때 가장 생존 가능성이높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 지혜를 유전자라는 정보 속에 저장해 자손 대대로 전달해 왔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장기와 외부를 연결하는 가상의 선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이를 경락이라고 한다. 경락을 통해 기혈이 끊임없이 순환하는데, 이 경락의 근본을 이루는 12가닥의 선이 있어 마치 전철역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타듯 인체 구석구석에 물자를 실어 나른다. 하루 24시간을 12로 나누면 2시간이다. 즉 인간의 몸 안에 장기가 12개가 있다면 각 장기가 활성화되는 시간은 약 2시간이 된다. 인체의 경락
은 폐(肺)로부터 출발하여 간(肝)에서 끝나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폐경이 활성화되는 시간은 새벽 3시에서 5시며, 간이 활성화되는 시간은 새벽 1시에서 3시로 하루를 나누는 기준이 자정이라는 개념은 그냥 우리가 정한 약속일 뿐 인체 시계는 해의 위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경락의 활성화 요건으로 따져보면, 해가 중천에 떠서 지구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시간인 오후 3시까지 음식물을 소화 분해하는 장기가 활성화된다. 이후에는 분해된 음식물을 저장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세포를 만들고 오래된 세포를 없애는 장기의 기능이 활성화된다. 이러한 시간대로 생활하면 인체는 효율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그와 반대로 생활한다면, 언젠가는 항상성이 깨지면서 건강을 잃고 병을 얻게 된다. 지금 현대인들이 가진 병 중에 많은 부분이 이와 연관된다. 특히 성인병이라 불리는 비만, 고지혈, 당뇨, 고혈압 등은 생체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한 이 시대에 부처님의 수행법인 오후불식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부처님 시대나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이나 인간의 몸이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여전히 오후불식을 실천하고 생체 리듬에 따라 사는 일이 인간의 영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좋은 방편임을 알 수 있다.
생명의 시계는 항상 종착점을 향해 달려간다. 언젠가 종착역에 도달하면 생명의 시계는 멈출 것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이 생명의 시계를 천천히 움직이게 하거나 혹은 더 빨리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보다 천천히 그 시간이 흘러가기를 원한다면, 오후불식과 같은 간헐적 단식이 작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글. 김산

 

김산

2006년 원광대학교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년째 한의원을 운영하며 아픈 이들을 보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