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반야심경의 핵심 용어들

2019-07-24     전순환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5온, 그리고 6근과 6경의 12처, 12처에 6식을 더한 18계에만 머물지 않는다면, 번뇌로 이끈다는 이러한 법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수보리 장로가 말하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수련해야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일까? 사실 경전에서 보면, 이와 같은 문제는 소위 보살의 경지 이상의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화두이기에 우리와 같은 일반 중생들에게는 난해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상식의 선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에 대한 답에 접근해 보고자 이번에는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소본(小本)과 대본(大本)을 살펴보기로 한다.
방대한 반야부의 경전들에서 정수(精髓)가 되는 것들을 모아 놓았다는 『반야심경』에서 정수에 해당되는 표현은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 표현은 ‘마음’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흐르드(hṛd)에 접미사 아야(aya)가 붙은 흐르다야(hṛdaya)이고, 이는 ‘마음에 해당하는 것, 본질(적인 것), 핵심(core, essence)’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야심경을 산스크리트 식으로 번역하면, ‘반야바라밀다의 핵심에 관한 경’이 된다. 범본 『반야심경』의 소본과 대본은 현재까지 각각 6종과 7종이 알려져 있으며, 각 사본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 가운데에서 필자가 들여다볼 사본은 여러 사본을 참고하여 재구성했다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71)본이고, 이 텍스트들은 각각 130여 개와 290여 개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수련 방식에 대한 앞선 질문의 해답은 정작 잘 알려진 소본에서가 아닌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져 있는 대본에 제시되어 있다.

| 자성과 공성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성관자재보살과 사리자 장로이다. 소본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대본에는 사리자가 보살에게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하고 싶은 선남자나 선여인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묻자 보살이 “사리자야, …성취하고 싶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5온의 자성이 공하다고 꿰뚫어 보아야 한다”라며 수련의 방식에 대해 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본이나 대본 모두에서 그 유명한 문구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라는 보살의 말들이 이어진다.
보살이 언급하는 첫 번째 공(空)은 원어가 슌야(śūnya)이고, 그 이후의 공은 슌야타(śūnyatā)이다. 공이란 산스크리트 단어는 ‘비어있음, 공(空, emptiness)’을 뜻하는 명사 슈나(śūna)가 기본 형태이며, 여기에 속성의 형용사를 만들어내는 야(ya)가 붙어 ‘비어있음에 속하는, 비어있는(empty)’의 슌야가 된다. 이 형용사에 다시 상태의 명사 전성 접미사 타(tā)가 붙어 ‘비어있는 속성의 상태, 공성(空性)의 상태'를 의미하는 슌야타가 된다. 따라서 색즉시공(色卽是空)에 해당하는 ‘루팜(rūpam)슌야타’를 번역하면, ‘색(물질)은 공성의 상태이다’가 된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비어있다는, 즉 공하다는 공성이라는 것일까? 관자재 보살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5온을 포함한 모든 법이 갖고 있다는 자성(自性)이 공성이라는 것이다. 자성은 ‘자신의’를 뜻하는 형용사 스와(sva)와 ‘존재’를 의미하는 명사 바와(bhāva)가 합성된 ‘자존(自存)’이란 뜻의 스와바와(sva=BHĀV-a)에서 유래하는 단어이다. 여러 불전에서 공성이란 단어가 단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매우 빈번한데, 이는 자성의 공성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공성이란 표현하는 의미 그대로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일까? 필자가 오랫동안 가져온 개인적 소견이지만, 공이란 단어의 개념은 인도의 인드라에 버금가는 희랍 최고의 신 카오스(χαος)를 떠올리게 한다. 이 단어를 차용한 현대 영어의 ‘chaos’는 ‘무질서, 혼돈’을 의미하지만, 정작 카오스의 의미는 원래 ‘아직 정해지거나 구분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청정 상태’를 의미한다. 불전에서 공성 또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 또는 청정성을 의미하는 프라크르티(prakṛti)나 파리슛디(pariśuddhi)로도 표현되고 있기에, 앞서 언급한 5온의 자성이 공하다는 관자재보살의 말은 5온의 자성이 순수/청정하다라는 뜻이라고 해석해 볼 수있다.

| 12연기
이어서 “모든 법은 공성을 특성으로 갖고 있기에 생겨나지도 소멸되지도 않고, 오염의 상태에 있지도(a-mala) 오염이 없는 상태에 있지도 않으며(a-vi-mala), 감소되지도 증대되지도 않는다”는 관자재보살의 말이 이어지며, 이후 공성에서는 그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들이 나온다. 『반야심경』에는 법과 관련하여 5온, 6근, 6경, 6식 외에 번뇌에서 고통으로 이르기까지의 인관 관계를 나타낸다는 12연기(緣起) 용어들이 등장한다.

12연기의 원어는 드바-다샤-앙가-프라티탸-삼웃파다(dvā=daśa=aṅga=pratītya=samutpāda)로서 드바-다샤는 ‘12’를 나타내는 수사이고, 앙가는 ‘(신체의) 팔이나 다리, 가지, 종류’이며, 프라티탸(prati-I-tya*)는
‘의존’을 의미하고, 삼웃파다(sam-ud-PĀD-a*)는 ‘일어나거나 생겨나는 것, 생기(生起)’를 뜻한다. 이를 종합해 보면, 12연기는 ‘의존을 통해 생겨나는 12종류의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열두 가지는 어떠한 것들일까?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노사이다.

무명 → 행 → 식 → 명색
무명(無名)은 부정의 접두사 아(a-)가 ‘앎’이라는 윗야(vidyā)에 붙은 아윗야(a-VID-yā)에서 유래하는 ‘알지 못하는 것, 무지’란 의미의 단어로서 번뇌의 근본이며 미혹의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한다. 행(行)과 식(識)은, 5온에 대한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각각 상스카라(sam-SKǠR-a*)와 비즈냐나(vi-JÑĀ-ana*)에 해당하며, 전자는 지향(志向)작용으로서 어떤 일이 그렇게 된다는 업(業)을 나타내며, 후자는 좋고 싫음, 선별(選別) 및 차별의 근원으로서 식별 작용을 가리킨다. 명색(名色)은 ‘이름과 물질’을 의미하는 나마루파(nāma=rūpa)란 합성어를 번역한 것으로서 물질적 현상계를 나타낸다. 이 용어들의 각각을 음미해 보면서, 하나의 연결 고리로서 바라볼 때 그 전체적인 풀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대략적인 의미는 “무지함에 의존하여 정신적행위들의 업이 생겨나고, 만들어진 이 업에 의존하여 그러한 행위들을 식별하는 인식이 일어나며, 결국 이 식별의 정신적 작용에 의존하여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집착의 대상인 물질적 형상이 생겨난다”이다. 이러한 풀이는 범본 『팔천송반야경』 1장에 나오는 사리자와 세존의 법에 대한 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리자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5온과 같은) 법들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사리자야, 법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하는 것들이니라. 그렇기에 이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 법들은 무명이라 불리느니라. 배우지 못한 범부(凡夫)와 일반 중생들이 법들에 집착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모든 법을 세우고, 세운 후에는 두 개의 극단(極端)에 사로잡혀, 그법들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느니라. 그렇기에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모든 법을 세우고, 세운 뒤에는 두 개의 극단에 스스로를 집착시키고(지향), 집착시킨 후 이러한 행동의 원인인 인식(식별)에 의존하여 과거의 법들을 만들고, 미래의 법들을 만들며, 현재의 법들을 만드는데, 이러한 법들을 세운 후 그들은 명색에 집착하게 되느니라.”

육처 → 촉 → 수 → 애
육처(六處)는 사드-아야타나(ṣaṣ=ā-YAT-ana*)를 번역한 단어로서 12처 가운데 처음 여섯 개인 6근,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감각 기관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촉(觸)은 스파르샤(SPARŚ-a*)에 유래하는 용어로서 여섯 개의 감수 기관을 통해 감수 대상들이 느껴지는 것, 즉 물질계의 접촉을 의미한다. 수(受)는 감수 작용, 즉 12처의 나머지 6처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을 나타내는 베다나(VED-anā*)를 번역한 용어이다. 이 용어들의 어원적 분석 및 의미는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하였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애(愛)란 용어는 ‘갈증이 나다’의 어근 트르스(tṛṣ)에 접미사 나(nā)가 붙어 만들어진 ‘목마름, 갈증, 갈애(渴愛)’의 트르스나(TṚṢ-ṇā*)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종합하여 풀이해 보면, “물질적 형상에 의존하여 여섯 개 감각 기관의 제 기능이 발현되고, 이 기능에 의존하여 세간의 감수 대상들이 생겨나며, 이 대상들에 의존하여 6경의 감수 작용이 일어나고, 이 작용들에 의존하여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갈애하게 되는 망집(妄執)이 생겨난다”가 된다.

취 → 유 → 생 → 노사
취(取)는 지난 칼럼의 5취온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착’이란 의미의 우파다나(upa-ā-DĀ-ana*)를 번역한 용어이고, 유(有)는 ‘존재하다’의 어근 부(bhū)에 접미사 아(a)가붙어 형성된 ‘존재(함)’의 바와(bhava)에서 유래하는 용어이다. 생(生)은 ‘태어나다’라는 어근 잔(jan)에 접미사 티(ti)가 붙어 ‘태어나는 것, 출생’을 의미하는 자티(jāti)를 번역한 용어이며, 노사(老死)란 용어는 ‘나이가 들다, 늙어가다’란 어근 자르(jar)에 접미사 아(ā)가 붙어 만들어진 ‘늙어감’의 자라(jarā)와 ‘죽다’의 어근 마르(mar)에 접미사 아나(ana)가 붙어 형성된 ‘죽음’을 뜻하는 마라나(maraṇa)의 합성어 자라=마라나(JAR-ā=MAR-ana*)에서 나온 것이다. 이 네 개의 용어를 하나로 묶어 풀이하면, 대략 “망집에 의존하여 집착이 일어나고, 집착에 의존하여 어떤 존재
함이 생겨나며, 존재함에 의존하여 무엇인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태어남에 의존하여 늙어감과 죽음이 일어난다”가 된다.

| 생략의 표현 yāvat
그런데 『반야심경』은 12연기를 구성하는 용어 모두를 열거하고 있지는 않다. 열두 개의 용어들 가운데 시작의 단어인 무명과 마지막 단어인 노사만이 언급되어있을 뿐이다. 불전에서는 기본적으로 열 개 이상의 단어들로 길게 나열되어야 하는 12연기와 같은 경우 보통 첫 단어와 끝 단어만이 주어지고, 중간의 나머지들은 생략되는 방식이 취해지는데, 이러한 생략을 표현하기 위해 ‘(…에서)…에 이르기까지’를 의미하는 야왓(yāvat)이란 단어가 사용된다. 이에 따라 『반야심경』은 12연기에 대해 ‘무명 yāvat 노사’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기까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경에서는 18계도 ‘안계(眼界) yāvat 의식계(意識界)’로 표현되고 있다. 단, yāvat을 바로 뒤따르는 단어가 부정사인 나(na)이
기에 yāvat na는 산디가 적용되어 실제 텍스트에서는 yāvan na로 나타난다.

| 고집멸도
『반야심경』에는 사제(四諦), 더 정확하게는 사성제(四聖諦)로 불리는 고집멸도(苦集滅道)가 12연기를 바로 따라 나오며, 이것 또한 공성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현되고 있다. 불교가 설하는 4종의 기본 진리라는 사성제의 원어는 챠투르-아르야-사탸(catur=ārya=S-at-ya*)이고, 그 네 가지는 산스크리트로 두흐카(duḥkha), 두흐카-삼우다야(duḥkha=sam-ud-AY-a*), 두흐카-니로다(duḥkha=ni-RODH-a*), 두흐
카-니로다-가미니(duḥkha=ni-RODH-a=GĀM-min-ī*)이다. 이를 순서대로 번역해 보면, 고(苦)·고생(苦生)·고멸(苦滅)·고멸도(苦滅道)이고, 각각은 ‘고통’, ‘고통의 생기(生起)’, ‘고통의 소멸’, 그리고 ‘고통의 소멸로 이끄는 것’이 된다. 여기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두흐카는 ‘나쁜, 좋지 않은’을 뜻하는 접두사 두스(duṣ)가 ‘관, 통로’의 카(kha)에 붙어 만들어진 단어로서 그 어원적인 의미는 ‘잘 뚫려 있지 않은 관/통로, 기(氣)가 막혀 있는 상태’이며, 이후 ‘불편함, 고통, 문제, 어려움’의 뜻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소위 고집멸도로 알려져 있는 이 용어는 ‘미혹의 세간은 고통 그 자체이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고통으로 이끄는 번뇌나 망집이 생겨나며,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집착을 끊어내어 소멸시키는 깨달음의 진리가 존재하며, 이러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은 실천의 도, 즉8정도이다’로 풀이된다.

이번 칼럼의 마무리는 『반야심경』에서 나오는 성관자재보살의 말로 대신한다.
“ 모든 법의 자성이 공한 것임을 꿰뚫어 보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는 (이와 같은 공성의 상태인)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하여 무상의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을 터득한 것이다.”


● 대문자 알파벳은 어근을 나타내고, 밑줄은 산디가 일어나는 작용 범위를 나타낸다.
●● 다음 어원 여행의 대상은 8정도와 관련하는 용어들이다.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2005, 한국문화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
반야바라밀다심경』(2012, 지식과 교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