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어머니의 기도

삶의 여성학

2007-09-15     관리자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 그리고 나로 이어지는 우리는 여자인생을 살아가면서 서럽고 감당하기 힘든 고비를 만날 때마다 어떤 종류의 믿음이 됐든 신앙에 의지하여 힘과 용기를 얻어 숨을 되돌리며 살아왔다.

불자들은 지나가다가 길에서 쥐나 강아지가 치여죽은 것을 볼 때에도 곧잘 '나무아미타불' 을 염송한다. 알지는 못하지만 불쌍하게 죽은 영혼에게 위로의 마음을 보내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부정이라도 타서 해를 입지 않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염불을 한다. 끔찍한 일을 당하여 당황할 때 염불을 송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쉽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

한 이태 동안 여기 저기서 발생한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나무아미타불을 수없이 염송하며 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 추락사고, 열차 탈선사고, 지하철 공사장의 가스폭발사고, 성수대고 붕괴, 그리고 삼풍백화점 참사 등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은 너무 놀라 말을 잃어 버렸다. 영문도 모르고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죽어간 그 많은 사람들, 사랑하는 아들딸과 남편을 잃고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답답하고 아픈 가슴을 어쩌지 못해 '나무아미타불'을 속으로 염송하며 다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보통사람은 상상도 못할 몇 천억이란 비자금을 긁어 들여 감추어 놓았다가 그 죄상이 드러나 구치소에 가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면서 참담하고 허탈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어 '나무아미타불'이 한숨처럼 저절로 새어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우리 나라 어머니들에게는 가족을 위하고 집안의 안녕을 위해 또는 여성들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출산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안에 여러 가지 가택신을 모시고 살아가는 토속적인 신앙이 있었다. 켄달이라는 종교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토속적인 가택신앙을 주재하는 사제역할을 하는 사람은 살림을 담당하고 있던 여성들 자신이었다고 한다. 삼신할머니는 여성들의 출산이란 것이 예나 지금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안고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또한 아들을 낳아야할 절박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위력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청수 한 그릇 받들어 놓고 삼신할머니께 비는 어머니들의 정성이 얼마나 지극했을까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집에 얽힌 이러한 신앙도 사라져가고 있지만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 중에는 한해의 무사를 빌면서 고사를 지내는 집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에도 새로 이사를 온 사람은 붉고 팥고물을 넣은 시루떡을 돌리는데 이런 풍습도 이사를 들고나면서 올지도 모를 액운을 미리 때우자는 민간신앙의 흔적이 있다고 보여진다.
지금 사오십대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동지 팥죽을 끓이면 변소며 담벼락 여기 저기에 흩으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시면서 액막이를 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행여 동티가 나서 집안을 해할지도 모를 집귀신들로부터 남편과 자식 등 집안식구의 안녕을 구하고 집안의 융창을 위해 성주단지, 터줏대감을 모시고 식구가 아프다든가 나쁜 일이 있다든가 하는 때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집안을 무사히 지키고자 했던 것이 지난날 여성들이 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담당했던 이같은 집안을 다스리는 사제적인 역할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기도처는 아들딸의 대학입시기도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으며 밥을 거르면서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어머니 - 여성들이다.

남편이 사업이 잘 안 되어도 기도를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기로에서 결정기도를 하고, 출생기도, 생일기도, 가족의 무사귀가기도, 병중인 가족의 쾌유를 비는 기도 등 가족과 집안일을 위해 사제적인 역할까지는 아니라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은 많다.

일은 당한 사람이 직접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인 집안식구를 대신해서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성주단지를 모시고 아침저녁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연신 손을 부비며 절을 하는 옛조상들을 떠올리게 된다. 시대를 가로질러 이들이 올리는 기원과 정성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부처님을 믿는 어머니들이 이러저러한 일마다 부르는 '나무아미타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머니도 그러셨는데 딱한 일을 보고도 염송하시고, 험한 일 보면 가슴을 손으로 내리 쓸면서 나무아미타불을 더 여러 번 염송하시는가 하면, 남이 잘못하는 꼴을 보실 때도 그러셨고, 자식들이 당신이 가르치는 말을 제대로 안 들을 때도 야단하는 대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시곤 했다. 그저께 전직 대통령이 합천에서 강제구인되는 텔레비젼을 보시면서 어머니는 '죄를 지었으면 받긴 해야지, 나무아미타불' 하시는 것이었다.

인과웅보의 이치가 털끌만큼도 틀림이 없다고 한 부처님의 말씀대로 죄가 있으면 받을 것이고 없으면 안 받을 것이긴 하다. 어머니는 염불을 하시면서 죄는 미워도 사람은 측은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일어나는 미움을 스스로 다스리면서 부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묵은해가 가고 다시 새해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아내이며 주부이며 어머니이고 딸 며느리인 여성들 중에는 돌아오는 해를 맞이하며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 친지들을 위해 또한번 간절한 마음으로 액막이 기원을 하며 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며 상대를 돕고 잘 되기를 빌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훈훈하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인가. 옆에서 보고 듣는 사람도 따뜻해진다.

그런데 자신이 잘되는 것을 기도 속에 넣고 기도한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로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든가 한 사람의 독립된 불자로서 올바로 판단하고 바로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추어 나가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불교신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은 남을 해하고 나만 좋게 하는 이기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불성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자신을 함부로 두기보다는 부처님의 주신 잠재력을 개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원하는 시간이야말로 참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머니들이 너무 자식과 가족에게 헌신하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친구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들 아침밥을 먹여 보내려고 몸이 불편한 것을 무릅쓰고 일찍 일어나 밥을 해놓았더니 안 먹고 그냥 나라더란다. 하도 괘씸해서 회사에 전화를 해서 "에미가 일찍 일어난 수고도 없이 그러면 못쓴다"고 넌지시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그 아들은 "엄마가 화가 나서 다시는 하시지 마시라고 일부러 안 먹고 나왔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먹으면 매일 어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하실 것 아니냐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할 때가 있다. 육체적·물질적으로 해주던 어머니 역할이 필요없는 시기가 올 때도 있다. 그때가 오면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따뜻한 사랑을 키우면서 다시 돌아온 귀중한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서 쓰자.

자식이 성장하여 잔손질 가는 어머니 노릇이 필요없는 시기가 오면 젖을 떼듯 홀로서게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찾아서 홀로서는 힘을 길러 보자. 홀로서기란 참나를 찾아가는 불교신자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 아닌가!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향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