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일상을 명상하다] 달리기가 저절로 되는 순간

2019-07-01     양민호

타다다 타다다다…. 발이 땅에 3번 닿는다. 코로 숨을 들이쉰다. 발이 땅에 4번 닿는다. 코로 숨을 내쉰다. 다시 3번. 코로 숨을 들이쉰다. 다시 4번. 코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숨에 온전히 집중하며 달리기가 저절로 되게 내버려 두면, 달리기는 움직이는 명상이 된다.

달리기를 통해 명상하고, 이러한 유용성을 알리기 위해 명상 달리기, 맨발 달리기 수업을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기를 통해 명상을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다. 명상의 세계는 2011년 겨울에 발견했다. 당시 나는 딕킨슨대학교(Dickinson College) 2학년으로 물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불교 개론 수업을 들으며 저명한 물리학자들과 스님들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리 실험이나 검증 없이, 스님들은 불경 공부와 명상을 통해 물리학자들이 이해하는 세상의 이치를 발견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명상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겨울 방학 때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위빠사나(Vipassanā, 불교 수행 중 현상을 관찰하는 명상수행법) 명상 캠프에 참여하였다. 10일 동안 묵언 수련을 하면서 ‘있는 그대로 충만한’ 상태를 처음 경험했다. 인중에 주의를 집중해 들숨과 날숨을 계속 그

대로 바라보다 보면, 그저 존재함을 인지하는 데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차원의 만족감이 내 안에서 우러나왔다. ‘생산적’이라고 불리는 일을 해내는 데에서 느끼는 성취감이나, 남과의 경쟁으로부터 승리했을 때 느끼는 흥분과는 다른 깊은 충족감이었다.

한편 2013년 여름의 내 상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에 휩싸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고,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했다. 2년 전에 배운 명상 수련은 그만둔 지 오래였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마침 맨발 달리기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고, 당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살고 있던 곳 뒷마당의 넓은 풀밭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오랜만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위빠사나 명상 캠프에서 느꼈던 그 충만함을 달리면서 느낄 수 있었다. 달릴 때면 비에 젖은 축축한 옷처럼 내 존재에 달라붙어 있던 불안과 슬픔이 깨끗이 씻겨져 사라졌다. 물론 달리는 중에도 우울한 생각들과 걱정들은 내 안에서 솟구쳤다. 하지만 달리기에 집중하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니, 지금껏 내 반응을 먹으며 커져 온 부정적 생각들은 갈수록 힘이 없어졌다. 맨발이 풀밭에 닿는 느낌과 리듬에 집중하며 따뜻한 햇볕을 만끽하다 보면, 살아 있음의 희열에 빠진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렇게 매일 달리면서 삶에 대한 감사함과 자신감은 점점 커졌다.

한때 기록에 집착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억지로 달린 적도 있다. 다행히도 2015년 여름, 케냐에서 4주 동안 머문 경험은 내게 소중한 깨달음을 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케냐 마라토너들과 함께 생활하고 달리면서 그들로부터 천천히 달리기의 중요성을 배우고, 숨과 감사함에 집중하며 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올해 4월, 다시 케냐로 와 3개월 동안 체류 중이다.

충만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달리기는, 아주 천천히 시작한다. 걷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기의 리듬이 드러나도록 천천히 기다린다. 가슴이 열려 있는지, 견갑골이 적당히 수축되어 있는지, 복근에는 적당한 힘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한다. 척추가 길게 늘어져 있고, 어깨와 목은 이완되어 있음을 느낀다.

팔과 어깨는 다리 움직임을 주도하며, 몸 전체를 달리는 리듬 속에 둔다. 몸의 상태를 점검하고, 집중했던 에너지를 잠시 내려놓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새벽녘 해는 조금씩 그 얼굴을 보여주면서 이텐 마을의 이곳저곳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있다. 해발 2,400m 고지대의 하늘은 무척 가깝다. 조금씩 보이는 구름 과자들이 두 손에 잡힐 듯하다.

이른 아침인데도 학교에 가는 학생들과 일터로 나가는 케냐 사람들이 보인다. 어린 학생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나는 작은 미소로 답한다. 달리고 있는 케냐 선수들이 천천히 지나간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각자의 달리기를 이어 나간다. 주변을 바라보다가, 달리기로 돌아온다. 의식적으로 코로 숨을 쉰다. 발이 땅에 3번 닿는 동안 코로 숨을 들이쉬고, 4번 닿는 동안 내쉰다.

그렇게 코로 숨을 쉬며, 달리는 내 몸 이곳저곳을 인지하고, 다시 주변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명상 수련을 할 때 느낄 수 있던 충만함과 몰아지경을 경험하기도 한다. 달리기하는 나의 존재는 옅어지고, 달리는 행위만이 짙어진다. 욕심을 내려놓고 달리기에 온전히 집중이 잘되는 날에는 달리기 자체가 저절로 된다. 의식적으로 힘을 사용하여 시작된 달리기는 어느새 저절로 되며, 충만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물론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 의식적으로 힘을 더 쓰거나 아예 집중하지 않는 순간, 명상에서 벗어난다.

그럴 때면,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타다다 타다다다….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낀다. 3번 닿는 동안, 코로 숨을 들이쉰다. 4번 닿는 동안, 내 몸을 채우고 있는 숨을 내쉰다. 주변을 바라본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다시, 숨에 온전히 집중하며 달리기가 저절로 되게 내버려 둔다. 그렇게 달리는 나는 조금씩 옅어지고, 달리기 행위 자체는 더 짙어진다. 감사하고 충만한 순간이 이어진다.


글_ 김성우
숨과 감사함에 기반하여 잘 달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달리기를 더 깊게 경험하고, 잘하고 싶어서 2015년에 케냐에 다녀 왔고, 올해에도 4월부터 6월 말까지 체류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서울 체류 중에는 에어비앤비 트립 호스트로서 석촌호수와 서울숲에서 명상 달리기, 맨발 달리기 수업을 운영하며, 룰루레몬 엠버서더로서 달리기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