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네 가지 고귀한 마음

화의 소멸 1

2019-07-01     양민호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는 풀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답이 분명히 있다고 알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버려질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가 버려질 수 있으며, 화가 버려지면 네 가지 고귀한 마음이 드러나고, 네 가지 고귀한 마음을 계발하면 화가 버려진다고 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화의 속성, 화의 원인, 화를 버리는 방법을 분명히 알아 화를 소멸하면 네 가지 고귀한 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화가 버려지면 네 가지 고귀한 마음이 드러난다
화의 반대는 화 없음[不嗔, adosa]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화 없음과 자애[慈愛, mettā]는 둘 다 대상을 ‘싫어하지 않는’ 특성이 있으므로 법으로 같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자애는 주로 생명체에 대하여 화를 내지 않는 마음을 뜻하고, 화 없음은 좀 더 일반적으로 생명체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하여도 화를 내지 않는 마음을 뜻합니다. 어쨌든 화를 버린다는 것은 자애심을 계발한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애심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중생이 행복하고 안락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애심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설사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남과 다투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애심을 다른 말로 ‘다툼이 없다’라는 의미의 ‘무쟁(無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애심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의 가르침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무량심은 자(慈)·비(悲)·희(喜)·사(捨)를 말합니다. 자(慈)는 자애심, 비(悲)는 연민심, 희(喜)는 함께 기뻐함, 사(捨)는 중립적인 평온입니다.
우리가 보통 자비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애와 연민을 합친 개념입니다. 자애심은 남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타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고, 연민심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해서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함께 기뻐함은 남이 잘되거나 성공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이고, 평온함은 자애·연민·함께 기뻐함을 실천하지만 자신의 공에 집착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중립적인 마음을 말합니다.
부연하여 설명하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애심입니다. 자애심이 있으면 주위에 고통받는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그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마음, 즉 연민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연민의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존재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그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좋아하고 행복해할 때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서 존재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고통이 사라짐으로써 존재들과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것을 내가 했다’라고 자만심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자업자득이다’, ‘스스로 선한 업과 공덕을 지은 것이다’라고 숙고하면서 자신의 공덕에 집착하거나 불만이 없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애심은 네 가지 고귀한 마음, 즉 자애·연민·함께 기뻐함·평온의 사무량심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사무량심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기억하라
사무량심에 대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자애심과 탐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탐욕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자애심은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타적인 마음입니다. 자애는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상대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에게 너무 집착해서 그 사람을 구속하고 무조건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애심과 탐욕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또 연민과 슬픔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연민은 동요가 일어나지 않고 깨어 있는 유익한 마음이고, 슬픔은 내 마음도 상대의 감정에 휩쓸려 버린 일종의 화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 감정에 동조하여 함께 울면서 마음이 휩쓸리는 것은 화의 한 형태이지, 연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연민은 자기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평온한 상태에서 고통에 처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살펴서 그 상황에 적절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묻고 답하기]

무관심이나 무시는 자애심이 아닙니다


Q. 직장 후배가 어느 날부터 무례하게 굽니다. 누구보다 잘 대해 주었는데 제게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를 내는 건 바른 길이 아니니 그 친구에게 자애심을 갖고 무시하는 것도 화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A. 그것은 자애심이 아닙니다. 원래 자애심이라는 것은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너는 나한테 이렇게 갚아야 해’와 같은 보상 심리 없이 그냥 베푸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했으니 너는 나에게 이렇게 갚아야 해’라는 것은 욕심이 있는 마음이지요. 만약 집착 없이 자애심으로 잘해 주었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더라도 질문자에게 원망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자신이 편하기 위한 탐욕을 기반으로 한 무관심이지 자애가 아닙니다. 더구나 탐욕을 바탕으로 한 무관심은 평온과도 다른 개념이지요. 무관심은 자신이 편하려고 하는 욕심을 바탕으로 어떤 사람과 관계하는 것을 피하고 외면하는 것이고, 평온함은 그 사람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화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립적인 마음이지요. 그래서 무관심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평온한 마음은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상적인 상태로 말하자면, 먼저 상대의 반응에 대해서 화를 낸다거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자애심을 가지고 꼭 해야 할 말은 하면 됩니다.


글_ 일묵 스님
서울대 수학과 졸업,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수료한 후 봉암사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미얀마와 플럼빌리지, 유럽과 미국의 영상센터에서도 수행했다. 현재 제따와나 선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