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던 어머니

여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동네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즈음의 학생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엔 지금처럼 누구나 학교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정말 아니었다. 흰칼라에 풀을 빳빳이 먹인 교복을 입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비록 몇 년을 입어야 하는 단벌이라 낡고 닳아서 단단하게 누벼 입었을지라도 그 옷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인생의 중반쯤 남편을 잃은 어머님은 궁한 살림살이에도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유난히 높으셨다. 그 시절에는 농사체가 제법 있는 집들도 딸아이를 모두 공장으로 또는 남의 집살이로 보내던 때였으니, 적은 식구의 식량도 걱정되는 소농가에서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과감한 용기와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동네어른들이 아들도 아닌 딸을 어려운 살림살이에 왜 학교 따위를 보내느냐고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을 어머니는 끝내 무시하고 4남매를 모두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셨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어머님은 벼농사일부터 가축 기르기, 채소 가꾸기 등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닥치는 대로 참고 해내셨다.
내가 살던 옛 고향은 넓은 들판을 지닌 시골농촌이었다. 동네 가운데의 집들과는 달리 우리집은 신작로 도로변에 있었는데 행인들의 쉼터가 될 수 있는 큰 정자나무가 대문 밖 길 양쪽으로 두 그루 있었다. 그것은 아버님께서 먼 읍내장을 보러 다니는 다른 동네의 이웃들을 위하여 내가 아주 어릴 적에 플라타너스를 두 그루 정성스럽게 심어놓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정자나무 옆에는 화장실도 잘 지어 놓으셨다. 시골 화장실치고는 제법 반듯하게 목재를 이음하여 깔끔하게 지으셨는데 그것은 결코 생활이 넉넉해서는 아니었다.
당시 공무원으로 월급쟁이인 아버님께서 진정으로 남을 위하여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으신 것이다. 그 때는 보통 삼십리 길도 걸어서 장을 보러 다녔기 때문에 우물과 정자와 화장실은 길 가는 이에게 고마운,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만큼 필수적인 것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부터 약간의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그렇게 급한 경사가 지지는 않았지만 장날 같은 날은 짐을 많이 실은 우마차는 꼭 밀어 주어야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시골장를 다니시는 짐자전거꾼 아저씨들은 자전거가 뒤로 넘어질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겁고 큰 짐을 싣고 올라가노라면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곳이었다.
지금 이만큼 나이 들어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님의 일은 마냥 고달프고 쉴 틈이 없으셨다. 하지만 가정일이나 농사일에 자식들을 이끌어낸 적은 별로 없으셨다.
그렇지만 길 옆에 사는 연고로 행인이나 우마차가 조금만 짐이 무거운 듯하면 어머님은 반드시 다급한 소리로 자식들을 불러내셨다. 우리 남매들은 어머님의 성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달려 나가 있는 힘을 다해 우마차가 언덕길을 오를 때까지 밀어주곤 하였다.
시골에도 지금은 자동차가 옛날의 우마차보다도 더 많으니 그런 따뜻한 인정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의 어머님은 그 옛날 글을 배우셨지만 학교교육은 전혀 받지 못하신 분이다. 요즈음의 부모님들처럼 비록 소정의 학교졸업장은 없으셨을지라도 늘 직접 이웃사랑 실천을 하셨고, 우리에게도 누구든지 어려운 이를 만나면 성심성의껏 도울 것을 항상 가르쳐 주셨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학부 출신의 부모님이 많고 석사나 박사님도 참으로 흔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교육도 많이 받고 또한 물질도 그렇게 흔할 수가 없다. 부유층의 자녀들이 아닐지라도 옷차림이나 학용품이나 용돈이 지나칠 정도다. 교육도 학교만으로는 충족이 되지 않은지 한 학생이 다니는 학원도 다양하다. 문제는 너무 학력 위주로 이끌고 나가느라 실제로 중요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정부에서는 뒤늦게나마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를 통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청소년으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게 하고 이웃을 위하여 할애한 그 시간을 점수화하여 입시나 취업에 제도적으로 가산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베풀고 그로 인해 청소년들의 심성이 아름다워진다면 그 나름대로 보람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벌써부터 일부 학부모님들은 기부금을 낼테니 자기 자녀의 점수를 달라고 하는 분이 발생했단다. 또 어떤 부모님은 자기가 대신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사례도 있단다. 꼭 그 길만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텐데 왜 지나치게 보호만 하려 하는지 청소년들보다 부모님을이 더 걱정스럽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인데, 어느 선진국의 자원봉사제도가 우리 나라의 실제와 너무 대조되어 한 번 적어본다. 그 나라의 청소년들은 수업을 하다가도 이웃집 할아버지가 목욕할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조퇴를 하고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린 뒤에 다시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웃을 위하여 시간을 내는데, 가령 방학이 되어 여행을 하게 되면 가족 가운데 다른 식구에게 부탁을 하고 떠난다. 그러면 그 부모나 형제는 대단한 책임감을 가지고 꼭 대신 자원봉사를 한다. 만약 그 가족마저 바캉스를 가게 되면 이웃들에게 확실하게 부탁을 하고 다녀오는 모습들이 비록 책으로 접했지만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자기의 부모님도 아닌 이웃 노인을 위하여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을 추구한다. 이제는 행복이 어떤 권력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돈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지식이나 학식에서 오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가슴 아프도록 느꼈을 만도 하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어떤 부모님은 아들이 어질고 현명하여 올바르게 살아가지만 돈을 벌지 못한다고 구박하는 분을 보았다. 반면에 다른 아들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부당하게 돈을 버는데 그 어머니는 그 자식을 자랑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다. 차는 무슨 차를 타고 똑똑해서 집도 몇십 평짜리 큰 집에 산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앞만 바라보고 달리느라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많다. 이쪽 저쪽 살펴보며 이웃을 같이 이끌어 가면서 좀 늦게 목적지에 도착할지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이만큼 성장한 경제와 문화를 더욱 확실하게 정착시키려면 무엇보다 이 땅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학교교육에서 기대하기는 어렵고 모든 부모님들의 생각이 바로 설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나의 어머님께서 나의 청소년기에 이웃사랑실천을 몸소 보여주셨듯이 많이 아는 것보다 한 가지 실천하는 것이 더 소중하리라.

종실 스님은 대전 연화사에 계시며 현재 대전법동사회복지관장 및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운동 대전본부장으로 활동, 특히 청소년·어린이 포교에 큰 원력을 가지고 계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향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