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보살님들이 쥐어 주시던 오색 박하사탕

특집, 나의 청소년기

2007-09-15     관리자


비단결같이 맑고 깨끗한 금강물이 큰배 모양의 옛 도읍지를 감아 흐르고 계룡의 유장한 기세가 넓은 대지를 안아 키우는 백제의 고도 공주.
옛 백제와 백제인들의 삶을 말해주듯 대통사, 동혈사, 서혈사, 남혈사, 주미사, 수원사, 구룡사지 등 옛 사찰의 유적과 마곡사, 갑사, 신원사, 동학사 등 대찰들이 1000년 세월 속의 풍상과 함께 민초들 삶의 애환과 비원을 갈무리하는 곳.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교육의 도시 공주에서 만백성의 모든 괴로움을 모두 건네준다는 뜻을 가진 제민천에 몸을 담그고, 공산성에 올라 정신을 가꾸고 기르던 시절이 엊그제 같건만 벌써 불혹의 나이에 서서 청소년기를 돌아다보며 이 글은 쓴다.
수십년 전의 세월이 꿈같이 흘러간 지금 예나 이제나 내 모습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한데도 거리의 모습이나 마주치는 인상들은 옛 사람의 순박함과 소박함을 찾아보기 어렵고 웬지 모를 건조함과 삭막함으로 채워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고 사람은 유년과 청년과 장년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지만 그 속에서 불변하는 그 무엇을 찾아 꿈을 키운 시절은 돌아보면 근본 바탕 속에 불자라는 자부심으로 삶이 채워져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명호와 형상은 구별할 수 없음에도 가까운 마곡사 포교당에 나아가 부처님께 참배드리고, 스님과 보살님들이 쥐어 주시는 오색 박하 사탕과 과자의 맛에 익숙하게 길들여져서 먼 훗날 오늘의 재 자화상을 그려보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종교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한 반 60명 중 50여 명이 불교라고 손을 들었다. 학교 문앞을 나서면 노점상처럼 자리한 전도사들 이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의 소책자를 가지고 기독교 전도에 열을 올릴 때 흘낏거리며 지나치던 내가 이제는 수행과 포교라는 두 개의 짐을 지고 어린이와 중고등부 청년과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음을 보면 적지 않은 감회를 느끼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이처럼 예전에는 마치 갈퀴로 쓸어 담아도 좋을 만큼의 많은 불자들과 불교의 교세가 있었고 포교하기에도 최상의 여건을 갖추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적인 혼란기를 틈타고 스님들이 잠시 등한했던 것과는 반대로 타종교인들은 대약진을 했고, 불과 2,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마치 사금을 캐는 듯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도 이미 서양 일변도의 사고로 굳어져버린 저들의 사고 속에다 설법하고 가르친다고 하는 행위가 우이독경 마이동풍의 도로(徒勞)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느 날인가 법회를 보고 싶다고 찾아온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만남을 시작으로 고등부 법회가 10여년, 여름불교학교를 시작으로 모여진 어린이법회가 10년, 청년불자들의 법회가 8년에 이르도록 많은 청소년 불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부족한 힘이나마 지역사회의 교화사업과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의 상담자와 휴식처로서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나, 아직도 부족함을 늘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얼마 전 어린이법회를 거쳐 중등부에 들어간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 셋이 절에 올라왔다. 왜 법회에 자주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절에 오면 별로 재미가 없다고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조금은 의외로 조금은 놀란 마음으로 다시 물으니, 절에 오면 법문 듣고 법회에 동참하는 이외의 여가시간의 활용, 즉 선후배와의 만남이나 대화 또는 음악 감상, 게임 등 오락을 통하여 다양한 그들의 욕구를 총족시켜 줄만한 프로그램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학교만 가도 일본제품인 아이와 녹음기와 이어폰이 필수적인 학생용품이 되고 심지어는 삐삐라는 전자제품까지도 친구나 이성간의 연락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소지품이 된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요구하는 재미라는 것이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빠른 템포로 변화해 가는 그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법회 상황은 어떠한가. 예불문, 삼귀의, 찬불가에서 사홍서원, 산회가로 진행되는 법회식순이 어느 사찰 어느 법회를 막론하고 천편일률적으로 고착화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에서 청년회에 이르기까지 법회를 보면서 제일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앞에 말한 회원 모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부재가 제일 큰 것 같고, 또 그런 다양한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해도 그것을 진행, 또는 기획해 나갈 인재의 부재 또한 일선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중의 하나다.
그렇다 보니 자연 스님들의 역할이 팔방미인처럼 다양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욕구를 다 충족시킬 수가 없게 되었다.
또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뜻있는 행사를(예를 들어서 문학의 밤이나 연극제 등) 준비하고자 하나 사찰의 스님이나 신도들과의 마찰이 우려되고, 거기에 공연무대나 공간의 부족 및 경제적인 제약이 함께 뒤따르니 사찰은 사찰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모두 이유 있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제는 학생회 출신의 사회인들이 경찰로 교직으로 세무원으로 회사원으로 연구가로서 각자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불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려움도 조그마한 기쁨이 되었다.
또 매년 연말마다 경내의 유치원 강당을 이용해 문학의 밤 행사를 준비하고 공연하면서 선후배간의 돈독한 정을 재확인하는 것이나,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여 열심히 학문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군입대로 복무하면서도 휴가때면 꼭 후배들 법회에 참여하고자 시간을 맞추며, 그렇지 못한 때에는 구구절절히 사랑과 염려를 담은 편지로 후배들을 격려하는 법우들의 모습을 보면 요즘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자라서 이 나라의 튼튼한 동량이 될 때 비로소 나의 청소년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출가 후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단편적인 몇 가지 이야기를 적은 빚을 갚는 길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는 정진과 노력으로 우리 불자들과 함께 호흡하리라 거듭 다짐하며 이 글을 맺는다.
혜월 스님은 원광대학 한의과를 졸업, 현재 공주 불광한의원 원장. 원효사 원효유치원을 설립하였으며 원효사 어린이·학생·청년 법회와 공주 결핵병원 지도법사로 활동하는 등 포교에 열성이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향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