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벨기에 한식 요리가 애진 허이스

지구 반대편에서 이뤄낸 한식 요리 전문가

2019-05-28     김우진

벨기에에서 온 한 외국인이 김천 청암사로 향했다. 한국의 맛을 찾아온 그의 이름은 애진 허이스(42). 사찰 음식을 배우려는 그녀에게 한국의 여러 인연들이 도움을 주어 청암사와 연결이 됐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기에 통역을 통해 스님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지도하던 스님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색하던 첫 만남은 경내를 돌아보고 사찰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함께 음식을 조리하면서, 음식을 사랑하는 서로의 마음이 통했는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사진:최배문

|    고향에서 고향으로, 기억을 되살리는 한식
한국에서 벨기에로, 다시 한국으로 긴 인연을 이어가며 살아온 애진 씨. 그녀는 입양아다. 애진 씨가 벨기에로 입양된 시기는 한창 궁금증 많을 일곱 살 정도였다.

“많은 것들이 기억이 나요. 서울 마포구에 살았어요. 아버지가 있었고 재혼한 새어머니가 세 명의 자매를 데리고 와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집에는 늘 새어머니와 저만 남아있었습니다. 장독대를 열어 장을 맛본 기억이나 동네에서 또래들과 뛰어놀던 기억이 나요. 오래된 기억이라 조작되거나 왜곡됐을 수도 있지만, 뱀을 구워 먹은 기억도 있어요. 더듬어 보면 장면과 분위기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진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새어머니는 어린 딸을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다. 탁아소로 향하던 날, 모든 것이 생경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비행기를 타게 됐고 먼 세상에 던져졌다. 벨기에였다. 새 부모님이 자신을 끌어안았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낯선 세상에서 그녀는 고립되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자신 안에서 긴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런 시간을 견뎌 지금의 단단하고 강한 내면의 힘이 완성됐다. 돌아보면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한 새어머니의 상황도 이해가 갔다. 급작스럽게 사랑하는 이가 죽고 보살펴야 할 네 명의 딸이 자신을 쳐다볼 때, 얼마나 겁이 났을까.

사진:최배문

“새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없었습니다. 원망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당장에 펼쳐진 상황 자체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벨기에 새 부모님의 딸이 되는 과정들이 한순간에 닥쳐왔습니다. 그 상황만으로 감당이 힘들었어요.”

애진 씨는 서서히 벨기에 문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가끔 가족들과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먹긴 했지만, 한국과 다른 연결고리가 있지 않았다. 한국어도 잊어버릴 정도로 주어진 운명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랬던 그가 한국 음식에 빠지게 된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한국에서 유학을 온 고영주라는 친구가 있어요. 초콜릿 공예가인 그를 우연히 알게 된 후에 그의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국 음식을 먹었습니다. 흔한 한국식 밥상 요리였습니다. 그 평범한 한국의 맛이 입양되기 전 먹었던 김치의 맛, 옹기의 장맛, 고유의 감칠맛 등의 기억을 되살렸어요. 잊어버리고 있던 한국으로 저를 다시 안내한 거죠.”

2000년대 초, 다시 찾은 한국은 많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기억 속 분위기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다시 와서 맛본 한식은 더욱 특별했다. 다양한 맛들이 미각을 자극했고, 또 같은 음식이라도 지역마다 다른 맛들이 재밌었다. 한국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벨기에로 다시 돌아갔을 때, 애진 씨의 마음속은 온통 한식 생각으로 가득 찼다.

자신의 진로와 가정을 생각하던 애진 씨는 한식을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의류 디자인 일을 그만두고 2013년 벨기에 겐트 지역에 팝업 레스토랑 ‘먹자(Mokja)’를 열었다. 한국식 바비큐 삼겹살을 주 메뉴로 음식점을 열어 벨기에에 한국식 불판 테이블을 가져다 놨다. 처음 보는 한국식 바비큐 문화에 벨기에 사람들의 호응이 좋았다. 애진 씨는 ‘먹자’를 통해 한국 음식과 문화를 벨기에에 전파했다. ‘먹자’ 운영 이후 한식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거의 매년 한국을 찾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한국의 음식을 맛보고 배우게 됐다.

사진:최배문
사진:최배문

|    사찰에서 배운 한국 음식의 철학
지난 3월, 벨기에 국왕 내외가 한국을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양국 간 우호 증진과 실질 협력 강화 등을 논의했으며, 때맞춰 국내에서 처음 벨기에 문화 축제가 열렸다. 이날 양국 정상들의 만찬을 준비한 이가 애진 씨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식 전문가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초청됐다. 애진 씨의 한국 음식에 대한 애정은 점점 깊어져 사찰 음식까지 닿았다.

“사찰 음식에는 고유의 철학이 있어요. 상에 차려지는 음식만이 아니라 그 음식에 사용된 식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부터 조리하고 먹는 과정까지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을 생각하는 불가의 태도, 식사의 법도. 그 과정 모두를 통틀어 사찰 음식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닌, 음식의 기운으로 힘을 얻어 삶을 구성하고 자신을 완성한다는 의미가 스님들 발우에 담겨 있다. 애진 씨는 스님들이 재료를 구하고 손질하며 발우에 덜어 먹는 과정을 가까이서 찬찬히 지켜보며 나름의 생각과 소회를 밝혔다. 그녀에게 사찰 음식을 배우는 것은 큰 기회이고 행운이었다. 한국 음식의 다양한 맛을 찾아 종종 한국을 방문하는 그녀에게 사찰 음식 체험은 한국 음식 ‘끝판왕’인 셈이었다. 스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대중이 몰리는 맛집을 탐방하거나 지역의 특산물을 찾아 시장을 체험하는 것과는 달랐다.

“한국에는 특별한 음식이 많습니다. 조리법도 다양하고 만드는 과정도 독특한 음식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단순한 음식이 좋더라고요.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이나 재료 본연의 맛을 드러내는 음식 말이죠. 사찰 음식들이 그랬습니다.”

한국 음식 중에서도 애진 씨가 좋아하는 것은 나물이라고 했다. 철마다 저들의 향을 뽐내는 나물 반찬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음식이다. 보기보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반찬이지만, 공양을 준비하는 스님들의 손길 몇 번이면 뚝딱 완성된다.

“한국에 와서 창의적인 것들을 많이 봤습니다. 특히 된장 하나로 다양한 맛을 내고 많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재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르고, 다른 재료와 조합하여 다양한 맛을 내는 게 재밌었습니다. 청암사에 장독대가 많더라고요. 다른 음식점에도 장독대가 여럿 있는 것을 봤습니다. 한국은 그런 장맛을 중요시하고 잘 활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식 밥상은 준비는 단순한데 반해 식탁 자체는 다채롭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조화가 있었다. 제철 재료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그 고유의 풍미를 즐기는 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건강하게 느껴졌다. 애진 씨는 청암사에서 사찰 음식을 체험하며 한식에 대한 애정을 더욱 쌓았다. 스님 개개인의 인상과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으며, 그러한 선한 마음이 음식에서도 나타났다. 함께 음식을 만들던 내내 애진 씨는 많은 것을 물으며 진지하고 유쾌하게 사찰 음식을 배웠다.

“고마운 인연들의 소개로 사찰에서 음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찰이 가지고 있는 비전과 철학이 세계 만방에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맛있는 사찰 음식이 한류와 함께 소개된다면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리움 같은 감정이 아닌 오직 한국 음식이 방아쇠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온 애진 허이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벨기에와 유럽 곳곳에 적극적으로 한식을 알리고 있다. 여전히 한식에 대해 배울 게 많다는 그녀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손맛과 전통 시장의 음식 맛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더욱 한국적인 맛을 찾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쩌면 한식이 가지고 있는 진짜 가치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