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불복장 작법 전승자 경암 스님

부처님의 복과 지혜의 성품을 불어넣는 일

2019-05-28     양민호

4월 30일 문화재청이 불교 의식인 불복장 작법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하고, 대한불교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이하 불복장 보존회)를 보유 단체로 인정했다. 일반인은 물론 불자들에게도 생소한 불복장에 대해 들어보고자 불복장 보존회 회장 경암 스님(서울 경국사 주지)을 만나러 이른 아침 경국사로 향했다.

사진:최배문

|    누이도 배우기 싫다는 불복장을 어찌할까
불복장이란 사찰에서 불상이나 불화, 탑 등을 만든 뒤 여기에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거행하는 불교 의식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오랜 한국불교의 전통이지만, 스님들 사이에 비밀스럽게 전승되고 진행된 의식이다 보니 아직까지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긴 세월 소리소문없이 전해지던 불복장 의식을 세상에 드러내 보인 것이 바로 경암 스님이다.

“불교는 크게 행교와 밀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에는 이 두 가지가 섞여 있는데요. 그중 가장 밀교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불복장과 점안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불복장 작법은 개별적으로 스님들 사이에서 전승돼 왔습니다. 또한 복장 의식은 세간에 공개하는 것이 불경스럽다고 여겨 일반인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죠. 더욱이 여성은 아예 의식에 참여 자체가 불가능해서 비구니 스님조차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암암리에 진행되던 것을, 2000년대 초반 경암 스님이 해인사에서 시연회를 열면서 비로소 불복장 전통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님이 불복장 의식을 공개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오랜 세월 의식을 설행(設行, 베풀어 행함)하면서 보존과 전승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불복장 보존회를 설립한 것도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통을 오롯이 지켜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수십 년 해오다 보니까 안타까운 점이 많았습니다. 의식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우후죽순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관련 연구나 설행자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러다가 전통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겠구나 싶어서 일단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알리고자 마음먹었죠. 책도 만들고 시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의식을 설행할 수 있는 스님들을 한데 모아 불복장 보존회를 만들었는데, 고작해야 저를 포함해 네 분이 전부입니다. 한국불교의 규모를 생각하면, 정말 얼마 안 되죠?”

불복장 보존회 설립 후 스님은 전승자마다, 또 전승 전통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의식 절차를 비교 연구하며 종합적인 틀을 마련하는 등 보존과 전승을 위한 작업을 착실히 해나갔다. 그 결과가 최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해나가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다는 게 스님 말씀이다.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서 어느 정도 인식이 잡히긴 했지만, 여전히 불복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심지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불복장에 담긴 의미를 잘 전하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전승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알리고 해왔는데, 선뜻 나서서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제 누이가 비구니 스님이라 알려주겠다고 배우라고 했더니, 그 스님마저 싫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진:최배문

|    부처가 되는 열세 가지 길을 담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건, 그만큼 일이 복잡하고 힘들다는 얘기다. 불복장 의식이 그렇다. 챙겨야 할 물목(복장에 들어가는 물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의식을 진행하는 데도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짧으면 3시간, 제대로 하면 8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물목 하나하나를 정성껏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절차에 맞게 봉안하는 일까지 빠짐없이 배우려면 눈대중으로 몇 번 보아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경암 스님 말씀이다.

“얼핏 보면 여러 물건을 그냥 집어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크게 보면 복장은 부처님의 복을 상징하고, 점안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즉 무정물인 나무나 돌에 부처님의 성품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죠. 그리고 복장을 할 때 후령통(候鈴筒)이라고 해서 물목을 담는 통이 있는데, 마치 길쭉한 호리병 같이 생겼어요. 이는 여래의 법음이 부처님 입으로 흘러나온다는 의미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때 통이 갖는 의미는 만법을 포섭한다는 의미고요. 또 후령통 안에는 오보병이라고 해서 다섯 방위(동·남·서·북·중앙)에 부합하는 물목 13가지를 납입하는데, 오곡(五穀)·오보(五寶)·오약(五藥)·오향(五香)·오황(五黃)·오개자(五芥子)·오채번(五彩幡)·오색선(五色線)·오시화(五時花)·오보리수엽(五菩提樹葉)·오길상초(五吉祥草)·오색산개(五色傘蓋)·오금강저(五金剛杵)입니다. 여기도 각각의 의미가 있어서, 첫 번째 오곡의 경우 보리심의 씨앗을 의미하고, 열 번째 오보리수엽은 정각을 이룸을 말합니다. 즉 차례대로 부처가 되는 열세 단계를 상징적으로 담는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치에 따라 사물을 배정하는 일이라고 하여 그 내용이 『조상경』에 나와 있습니다. 상당히 복잡하죠?”

기본적으로 불복장 의식은 조선시대 간행된 『조상경』을 의례 저본으로 삼고 있지만, 한 가지 정해진 방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각 사찰에 깃든 역사와 전통을 담은 물목이 추가되기도 하고, 의식의 순서와 설단(의식을 하기 위해 차리는 단)을 조성하는 방법, 후령통의 모양 등에도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 역시 불복장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남아 있는 과제 중 하나다.

“복장 의식에는 중기 밀교의 형태와 후기 밀교의 형태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라 방위를 나타내는 색이 달라지고, 방위를 상징하는 불상도 위치가 달라지는 등의 변화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죠. 또한 불복장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전통이 사라졌고, 한국과 티베트에만 존재하는데 서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를 비교 연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    스님의 꿈, 의례를 넘어 무대에 오르는 날까지
한창 경암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여러 번 전화벨이 울렸다. 불복장 의식을 준비 중인 절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가 끝나고, 스님은 조만간 몇몇 절에 가서 불복장 의식을 할 예정이라며 이를 위해 준비해 둔 물목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여주었다. 다양한 크기의 후령통, 경전 등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건 한지에 새긴 다라니였다. 수천 장은 돼 보이는 다라니들, 모두 스님이 손수 찍은 것이라고 한다.

“옛날 방식으로, 경판을 만들어 가지고 찍은 거예요. 한지에 찍을 때 마렵이라고 해서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솔 같은 걸 이용합니다. 요즘은 기계로 인쇄한 것을 많이 쓰지만, 예전에는 다 이렇게 했습니다.”

스님이 만든 물목들을 하나하나 직접 보니, 새삼 스님이 달라 보였다. 장인의 풍모가 느껴졌다랄까. 문득 경암 스님이 불복장 의식을 설행한 곳이 어디 어딜까 궁금해졌다. 스님께 물으니 “자, 보자….” 하고 숨 한번 고르며 생각하시더니 일러주신다. 조계사 대웅전 삼존불, 장곡사 상대웅전 국보 불상, 해인사 쌍둥이 부처님, 대흥사, 동국사, 신계사, 청암사, 동학사, 봉녕사 … 정말 많다.

어느덧 사시마지(巳時摩旨, 오전 9시・오전 11시에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스님과의 차담도 끝을 맺었다. 남은 차를 마저 기울이며 스님께 앞으로의 일을 묻는데,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려주신다.

“전통을 그대로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게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불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부족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도록 애쓸 생각이에요. 『조상경』의 여러 판본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야 하고 기타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도 해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할지는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리고 불복장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복장 의식을 현대화해서 극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해요. 종교의례를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불복장이 알려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게 현대적 계승의 한 방법 아닐까요.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불복장 의식을 주제로 한 무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스님의 바람이 현실이 될 그날이 오래지 않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