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과 동물이야기] 군산 동국사 종걸 스님과 고양이, 강아지

동물보살 만냥이와 동백이 보러 동국사에 놀러 오세요!

2019-05-28     조혜영
그림:봉현

군산으로 향하는 길은 푸르렀다. 쭉 뻗은 고속도로 양옆으로 햇살을 머금은 초록빛 잎사귀들이 봄의 절정을 지나 이른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은 초행이라 마치 관광객인 된 듯 골목을 걸었다. 동국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잘 알려진 동국사는 일제강점기 36년간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었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니 저만치 ‘평화의 소녀상’이 방문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가 또 있었는데, 바로 동국사의 명물 고양이다. 경내로 들어가니 이미 몇몇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우리 만냥이는 사람을 잘 따라요. 아침 10시에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면 대웅전 앞마당으로 나와서 먼저 애교를 부립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예뻐한다는 걸 스스로 아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으면 모델처럼 포즈도 취해주다가 관광객들이 사찰 문을 빠져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니까요.”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은 첫 만남에 ‘만냥이’부터 소개했다. 만냥이는 동국사 여덟 마리 고양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고양이다(참고로, 동국사에는 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개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만냥이가 동국사로 오게 된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미있게도 만냥이가 태어난 곳은 절이 아니라 성당이었다. 종걸 스님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와 친분이 있어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이어왔다고 한다.

“2015년 가을, 김인국 신부가 계시는 충북 옥천 성당을 방문했는데 새끼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얻어 왔죠. 혹시나 절의 보살님들한테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봐 제 방 이불 속에서 한 달간 몰래 키웠어요.”

그 전까지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 없던 종걸 스님은 사람이 먹는 우유를 먹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들을 위해 고양이 우유까지 사다 주며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절에서 일하는 보살님한테 결국 들키게 됐지만 스님이 생각하셨던 것처럼 큰 우려는 없었다. 그제야 스님은 고양이 세 마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게 됐다. 얼룩이 제일 많은 고양이가 만냥이, 두 번째로 많은 고양이는 천냥이, 얼룩이 많지 않은 고양이는 백냥이가 되었다.

“셋 중에 가장 약했던 백냥이는 한 달이 지나서 자연사했어요. 사찰 뒷마당에 있는 나무 밑에 묻어줬죠. 천냥이도 사람을 잘 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CCTV를 확인해보니 어느 관광객이 데려갔더라고요. 사랑으로 키우던 고양이었는데 그렇게 헤어지게 되어 많이 속상했죠.”

그렇게 성당에서 데려온 고양이 세 마리 가운데 만냥이만 동국사에 남게 됐고, 만냥이는 두 번에 걸쳐 열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다 분양이 됐는데, 제일 못난 놈 한 마리만 분양이 안 돼서 절에서 키웠어요. 걔가 ‘땅콩이’예요. 땅콩이가 낳은 새끼 중에 ‘새우’를 키우게 됐고, 새우가 이번에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아서 어쩌다 보니 현재 고양이가 여덟 마리가 되었네요.”

만냥이와 달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땅콩이의 모습은 만날 수가 없었다. 사찰 뒤쪽으로 대숲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유로이 노닐고 있는 모양이었다. 출산한 지 한 달 보름 정도 지난 새우와 새끼들도 볼 수가 없어 아쉬웠는데,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새우가 새끼 다섯 마리를 사찰 천정에 숨겨놓았기 때문이란다. 새끼들을 낳은 곳과 사찰 천정까지의 거리를 따져보면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새끼 한 마리씩 목덜미를 물어서 다섯 마리를 천정까지 피신시킨 걸 보면 고양이의 모성애도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종걸 스님이 고양이를 키우게 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2005년으로 기억하는데, 절 천정에서 길고양이들이 밤마다 뛰어다녀 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은사스님도 고양이를 싫어하셨고요. 어쩔 수 없이 철물점에서 덫을 사다 유인해서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았죠.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절에서 가능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리고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금강을 건너서 충남 보령까지 가게 됐어요. 보령댐을 돌아가는데 산자락에 절이 하나 보이기에 그 앞에 차를 세우고 고양이를 풀어줬죠. 고양이가 한참 동안 저를 쳐다보는데 그 눈빛에 원망인지 분노인지 살기가 어려 있었어요. 그러곤 산으로 휙 올라가 버리더라고요.”           

그날 이후, 스님은 고양이의 그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부처님의 자비 사상으로 비춰 보더라도 잘못된 행동이었죠. 마음의 짐이 컸어요. 아무리 길고양이였더라도 동물을 함부로 내버리면 안 되는데, 없는 번뇌를 내가 만들었구나. 그런 업으로 제가 고양이들을 키우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의 법칙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습니다.”

그림:봉현

또 다른 동국사의 마스코트 동물 가족은 견공 ‘동백이(동국사의 흰 강아지란 뜻, 마침 군산의 시화가 동백꽃이기도 하다)’와 ‘오키’다. 엄밀히 말하면, 동백이와 오키는 같은 혈통은 아니지만 9살인 동백이가 2살 오키를 자식처럼 데리고 잘 만큼 사이가 좋다고 한다.

“동국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방범 차원에서 개를 키워볼까 생각하던 차에 신도 한 분이 눈이 이상한 개가 태어났다면서 절에서 키워달라고 데려왔어요. 동백이 눈이 오드아이(Odd-eye)라고, 백만 마리 가운데 한 마리 태어날까 말까 한 변종이에요.”

동백이의 눈을 자세히 보니 흰자의 윗부분이 까맣게 보였다. 어쩐지 내 눈에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는데,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가끔 동백이 눈을 보고 있으면 희로애락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여요. 동백이가 슬픔에 잠겨 있구나, 화가 났구나, 신이 나는구나, 하는 걸 눈을 통해 선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스님이 동백이를 쓰다듬어주자 옆에 있던 오키가 스님 주위를 맴돌며 질투를 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점잖은 동백이에 비해 철없이 방방 뛰어다니는 오키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 오키를 동백이가 특유의 깊은 눈으로 품어주듯 바라보고 있었다.

종걸 스님뿐 아니라 동국사 신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만냥이와 동백이에게도 위기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동물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게 아프고 무서웠는지 두 번이나 도망갔던 만냥이를 동물병원 근처에서 애타게 찾았던 일. 그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기적처럼 만냥이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님의 눈에 작은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만냥이가 사라졌다가 보름 만에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싸움을 했는지 꼬리가 잘리고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채로 제 방문을 두드리더라고요. 한 시간에 1미터밖에 못 가는 몸 상태였는데,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기어서 제방까지 왔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팠죠. 만냥이가 아주 예뻤는데, 그때 이후로 인물이 좀 달라졌어요.”

다행히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깁스를 한 만냥이는 관광객들에게 요염하다는 칭찬을 들을 만큼 인물도, 건강도 좋아졌다. 요즘도 만냥이는 몸이 안 좋을 때면 스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스님 이불 옆에서 같이잔다고 한다.

비슷한 일이 동백이에게도 있었다. 절 밖을 나간 동백이가 혀가 쑥 빠지고 입에서 피가 나는 채로 일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스님을 보더니 죽어갈 것처럼 간절한 표정을 짓더란다. 스님이 물 두 바가지를 먹이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절뚝거리며 제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스님이 안아서 데려가려 했는데도 동백이는 괜찮다는 듯 몸을 빼며 꿋꿋이 제 발로 걸어갔다고 한다).

“제가 부모님 임종도 못 보고 자식 된 도리를 못 했는데, 부모 모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동물들이 나에게 간접 경험으로 교육을 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만냥이와 동백이는 종걸 스님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동물보살이 아닐 수 없다. 매일 동물들 똥 치우고, 우리 치우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스님은 고양이들과 강아지들 덕분에 절 분위기가 더 화목해지고 웃을 거리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동국사가 있음으로 내가 있게 됐고, 내가 있음으로 고양이, 강아지가 오게 됐고, 그럼으로 해서 관광객들과 신도들이 편하게 찾는 절이 되고… 이 모든 것이 인과죠. 말 못 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면 그것이 결국 부처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걸 스님이 예불을 할 때면 스님 옆 방석에 앉아 예불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는다는 만냥이. 재미있는 것은 종걸 스님이 출타 중일 때는 자기가 스님 방석에 떡하니 앉아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신기한 게 개나 고양이나 불단 위로는 절대 안 올라가요. 자기들도 뭔가를 아는 건지….”

만냥이, 동국이, 오키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걸어 나오는데 사찰의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빛나고 있었다.    

 

조혜영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추계예술대 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 BBS불교방송 및 KBS 라디오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며, 대학에서 영화,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