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적당함에 관하여

2019-05-28     양민호

●    꽃이 피는가 싶더니 이내 신록이 푸르렀다. 봄기운 좀 누려볼까 했더니 깜빡할 사이 여름 쪽으로 무게의 추가 성큼 기울었다. 어느덧 일 년 열두 달의 중간에 와 있다. 만약 6월이 몹시 더운 한여름이거나(물론 지금도 덥지만 아직은 참을 만하다), 매서운 추위의 한겨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한해의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 지난날을 돌아보는 마음에 시름이 더 깊지 않았을까. 헛헛한 마음에 추스르기 힘든 몸이 한 술 거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날이 더없이 고맙게 여겨진다. 산과 들을 타고 흐르는 상쾌한 기운이 몸을 생동하게 하는 시기. 아침저녁 아직 좀 남아 있는 선선한 기운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오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아직은 견딜 만한 한낮의 온기가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6월, 한해의 중간, 참 적당한 시절이다.

●    적당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적당함이란 지나침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지나치게 많거나, 지나치게 적거나, 지나치게 빠르거나, 지나치게 느리거나…. 어느 쪽이든 정도가 심하면 불편하다. 넘치고 부족한 것에 마음을 쓰다 보면 몸이 축난다. 어쩌면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지나침이 많아져서, 일상이 지나침의 연속이 되어서.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 봐야 할 것, 들어야 할 것, 먹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자신의 필요와 목적에 상관없이 바깥으로부터 쉴 새 없이 밀려든다는 점이다. 제대로 소화하기도 전에 다른 것을 집어 삼킨다. 그런 가운데 남는 게 없다. 달리는 열차의 창밖 풍경처럼 많은 것이 빠르게 스쳐만 간다. 단편적이고 쪼개진 것들뿐이다.

●    월간 「불광」은 6월호 특집으로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조금 특별한 지혜>를 다뤘다.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기술, 널린 정보와 지식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드는 체득의 기술, 온라인에서 무한히 확장되는 교류와 그 속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편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말한다. 말하자면, 최첨단 시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매지 않고, 자기 삶에 꼭 필요한 것만을 가려 취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지혜의 눈이 생기면, 불필요한 데 눈길이 가지 않는다. 과감히 걷어내고 버릴 수 있다. 더하거나 덜함이 없으니 삶에 균형이 잡힌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특집은 적당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한편 적당함은 유동적이다. 한 곳에, 한순간에 영원히 귀속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수준과 정의가 달라진다. 지난 세대의 적당함이 다음 세대엔 부족함일 수 있고, 오늘의 적당함이 내일의 지나침일 수 있다. 또한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누군가이게 적당해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쉽게 강요할 수 없으며, 그저 스스로 알 뿐이다. 매 순간 적당함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미리 그려보기에도 맞춤인 한해의 중간. 삶의 적당함에 대해 생각해 보기에 이보다 좋을 때가 있을까. 부족했던 것을 채우고, 넘쳤던 것을 비워내는 적당한 삶을 향한 출발점에 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