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자의 목소리] 실상사 : 한국 선불교의 시원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15     김종학

법화 제일의 근본사상인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떠오르게 하는 방장산 실상사, 이 땅 선불교의 시원을 만날 수 있는 곳.

신라 홍척증각 대사가 구산선문의 하나를 이곳에서 개산했다. 화엄, 천은, 연곡, 쌍계 등 지리산 내 대찰들이 산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실상사는 주변 산들이 연꽃같이 감싸고 있는 고원평지에 가람이 앉아 있는 것부터가 이채롭다.
창건에 얽혀서 전해오는 얘기로는, 남원 출신인 홍척 대사가 당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고 우리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자 했다고 한다(창건 신라 흥덕왕 3년 AD 828년). 풍수지리상 그 길목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란 얘기다.이 절의 역사와 유서는 보광전 앞 3층 석탑(보물 37호)을 비롯하여 12점이나 되는 보물급 유물들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홍척 대사의 실상사문을 비롯한 구산 선문의 개산은 화엄과 법화 등의 교학중심의 신라 불교가 선 수행 불교로 발전하는 큰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실상사 참배길에는 먼저 실상사 못미쳐 대정리 백장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산내 암자 백장암을 찾아야 한다. 차량도 오르기 허우적거리는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면 송림과 대나무 숲이 울창하게 어우러져 옛가람의 흔적이 역력한 자리에 백장암 3층 석탑과 석등이 각각 국보 10호와 보물 40호라는 대한민국 문화재 관리국이 세워둔 석조문패를 앞세우고 참배온 후손을 맞는다.

백장암 3층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높이가 5 미터에 이른다. 신라탑의 전형을 벗어난 이형(이형)탑의 대표적인 것이라 한다. 낮은 단층의 방형기대석 위에 세워진 탑신과 옥개석은 모두 방형 3층으로 쌓아졌고 목탑형을 기본으로 하였다. 탑신 네 면에는 아래층에는 보살상과 신장상이 선 모습으로 양각(돋을 새김)되고, 이층 탑신에는 천인좌상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주악천인상)으로 새겨져 있다. 삼층탑신에는 한 면에 한 분씩 천인좌상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새겨 놓았고, 옥개석에는 보살상과 좌우에 비천상이 방금 내려앉은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에 방형의 노반석 위에 복발, 보륜, 보개, 수연 등의 탑의 상륜부 부재가 정연하게 남아 완전한 옛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탑을 우요(오른쪽으로 도는 것)하면서 자비로운 보살의 설법 자리에 무장한 신장이 호위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저토록 살아있는 표정, 자비한 모습을 어떻게 화강석에 조각할 수 있을까 하는 경이로움이 앞선다. 이층 탑신의 천인들은 하늘의 노래를 주악(奏樂)하며 하계(중생계)로 내려와 탐, 진, 치 삼독심에 찌든 중생의 고뇌를 순화하려는 것같다. 또한 3층 탑신의 면마다 모셔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경지에 이른 듯한 평화스러운 천인의 모습은 바라보는 마음을 무아경에 이르게 한다.

불국사 다보탑은 법화경의 보생여래를 연상케 하면서 간드러진 아름다움에 도취케 하지만 이 탑은 장중하고 단아한 탑신에 부조된 보살, 신장, 천인의 아름답고 자비스러운 모습과 탑 전체의 장중함에 또 다른 감회가 일어나 다보탑에 버금할 정도로 특색을 갖추고 있다.

백장암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와 마천행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실상사 입구 개울 위에 놓인 해탈교에 이른다. 해탈교! 지금까지 오욕에 허우적거리는 사바중생이 피안을 향해가는 마음으로 해탈의 다리를 넘으면 오른쪽으로 큰 눈과 큰 코로 우화적인 위엄을 드러내 보이는 석장승(민속자료 15호)를 만난다. 앞 가슴에 '擁護舍沙逐鬼將軍'이라 음각되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섰다. 주변을 지키고 귀신을 쫓는 장군이란 말인가? 생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마 그 시절의 귀신들은 저런 모습을 두려위 했던가 보다.

한참 웃다가 뒤로 돌아보니 수령 몇 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밑 알루미늄 박스 속에서 사람이 나를 부른다. 대인 500 원….

실상사 천왕문을 지나면 우측에 목탑지 유구가 있다. 근년에 여기서 불타다 남은 신라의 동종 잔해를 찾아 그 모양을 기초로 종을 만들어 조성해 달았다. 목탑지의 초석과 넓이로 보아 5층내지 7층의 상당히 큰 탑이 있었을 법해 보인다. 현존하는 큰법당인 조그마한 보광전 앞에는 통일신라 하대에 속하는 전형적인 신라탑 두 기(보물 7호)가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다. 역시 평지가람의 쌍탑임을 말하고 있다.

이 탑을 바라보면서 머리 속을 스쳐가는 생각, 삼국통일을 완수할 무렵의 감은사지 석조 3층 쌍탑, 원효 스님이 주지로 머무시던 고선사지 3층석탑(유지는 덕동호수에 수몰되어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있음)은 장중하고 당당해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실상사 탑은 작고 가냘프게 조성되어 통일신라 하대의 국력이 쇠잔해지기 시작하던 시대상을 보는 듯하다.

오른편 약사전에 모셔진 철조여래불(보물 41호)은 조성 모습부터가 이채롭다. 높이 2.69미터, 무게 2.6 톤이라 한다. 이 부처님은 실상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돼(지맥의 유전함을 막겠다는)음미해 볼 만한 모습이다. 우선 그 우람한 크기나 무게가 그렇고, 여느 부처님 같이 좌대에 안치한 것이 아니고 바닥에 그대로 모셔진 것이 그렇다.

실상사의 자료에 의하면, 1985년 11월 7일 오전 9시 불상 보수(없어진 손을 보수)를 위한 현상 변경 신청을 위하여 사진 촬영을 하던 중 방광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하며, 1985년 3월 25일에는 오전 10경부터 오후 3시까지 상반신에 땀을 흘리는 장면이 많은 신도의 참배중에 일어났다. 그후로도 수 차례(사찰 자료만 6회) 변화하는 모습을 나투셨다고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무정물인 철조의 부처님 상이….

불가사의한 이런 일들은 신앙이라는 높은 차원이 아니고는 믿기 어렵지만, 실상사가 흥하면 나라도 흥한다는 전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국운의 새 지평을 예견하는 듯하여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일이다.

나도 지심귀명의 마음으로 삼배를 드리면서 나와 주변 모두의 중생이 몸과 마음으로 일어나는 병고를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십사하고 축원하면서 부처님 모습을 우러르니 마치 들은 대로 생기가 도는 것 같다. 마음이 만드는 조화런가? 화엄경에서 마음은 조림장이라 했던 부분이 생각난다.

서편에 있는 조선 순조 11년(AD 1831)에 건립되었다는 조그마한 목조건물(지방 유형문화재 45호)인 극락전을 참배한다. 아미타 삼존불의 회상인 법당 가득 온갖 중생이 조각된 모습, 그려진 모습으로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회상에서 무량수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듯하다. 정교하게 조각된 목각 좌우협시 보살은 오래 전에 망실되어 기록으로만 알 수 있다.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극락전 옆에는 증각대사응료탑(보물 38호)이 탑비와 함께 마주 서 있다. 실상사 창건주이고 실상사파로 불리는 선문의 개산조 홍척 스님의 묘탑이다.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으로 조성된 당시의 대표적인 부도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신라 하대의 다른 조각들과 같이 힘찬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은 보는 이의 선입견일까? 나란히 서 있는 탑비는 비신을 잃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이수 속에 새겨진 '증각탑비'란 비명(碑銘)이 스스로 정체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밖에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33호)와 탑비(보물 34호) 그리고 보광전 앞 특이한 모양의 석등(보물 35호) 등을 돌아보고 실상사 앞들을 가로질러 전신주를 따라 송림이 우거진 가파른 오솔길을 40여 분 동안 오른다. 거기에 또다른 산내 암자인 약수암이 있다.

이 약수암에는 목각탱이 있는데 보기 드문 뛰어난 솜씨로 조각되어 있다. 조성연대가 명문으로 남아 있는(AD 1782년 ) 현존 목각탱으로선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목각탱을 바라보면 중앙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고 광배를 등진 여래본불이 거의 입체로 조각되고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을, 그 양쪽 좌우에 관음·대세지보살을 배열하여 주존불을 중심으로 위 아래로 두 줄로 여섯 보살과 두 존자가 조각되고, 테두리는 꽃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관음보살은 화불과 보병을, 지장보살은 민머리에 석장을 짚고 계시고 합장하고 있는 두 존자는 아난과 가섭이라 한다.
목각탱의 보살 한 분 한 분을 배견하고 환희심을 가득 담고 법당을 나오니 절 식구들은 밤송이를 까느라 나그네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조금 전 실상사 극락전을 나와 스님께 약수암 가는 길을 물으니 산길이 꽤 멀다는 말과 함께 점심공양을 권하던 모습이 인상깊게 뇌리를 스쳐간다.

오늘날 우리 불교의 흐름이 선수행에 있는 만큼 선불교의 발상지인 실상사를 참배하는 것은 참배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근년에는 선우도량의 중심도량으로 새로운 결사가 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선우도량에서는 화엄학림을 열어 지방승가교육의 요람으로 만들어 가려 한다.

또한 옛 가람의 중창을 발원하여 잃어버린 사지를 다시 구입하고 되찾기 위한 큰 불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호국사찰의 현장을 참배하면서 모든 불사가 원만히 성취되어 참된 모습 진정한 호국의 얼이 깃들고 부처님 정법을 구현하는 도량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정귀혜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