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내면에서 울리는 소망의 소리 : 대불플러스大佛普拉斯, 2017 / 김천

세상의 불의와 거짓과 부조리를 향해 우리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망의 소리

2019-04-25     김천

어떤 영화를 불교 영화라 할 수 있을까. 우선 부처님 혹은 스님, 불자의 삶을 다룬 영화가 있을 것이고 경전이나 불교 설화를 담은 영화도 불교 영화로 부를 수 있다. 영화 싯다르타, 동승, 티베트에서의 7년, 쿤둔, 컵, 리틀 붓다, 만다라, 서유기 월광보합-선리기연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 의외의 영화에서 불교적 가르침을 찾을 때도 있다. 매트릭스, 파이트 클럽, 인투 더 와일드, 천년을 흐르는 사랑, 루시, 동사서독 등이 불교 영화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다. 겉보기에 부처님도 스님도 나오지 않지만 이 영화들은 대체로 불교의 세계관과 가르침을 뼈대로 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 후앙신야오 감독의 대불플러스(大佛普拉斯, 2017)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이다.

영화 제목이 대불플러스인 것은 후앙 감독의 전작인 단편 영화 대불(2014)에 이야기를 덧붙여 장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크기가 커진 아이폰을 아이폰 플러스라 부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영화에도 대불플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대불플러스는 2017년 대만 금마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과 촬영 등 다섯 개의 상을 휩쓸었고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해 대만 금마상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은 양아저 감독의 혈관음(血觀音)이다. 이 영화도 불교적 가르침을 숨기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현실 비판적인 블랙 코미디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대불플러스의 무대는 대만 타이난의 불상 제작 공장이다. 사장인 케빈은 누가 봐도 잘나가는 성공한 사람이다. 외국 유학파에 가족 모두는 이민 가 있고, 지역 사회의 유지로 기부도 아끼지 않으며 정치인은 물론 유력 인사와 두터운 인맥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차이푸와 두차이는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산다. 영화 속에서 차이푸와 두차이의 현실은 줄곧 흑백 화면으로 전개되고, 케빈의 세상은 컬러 영상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무색과 유색으로 현실과 비현실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차이푸는 케빈의 공장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낮에는 장례식 악대에서 망자를 위해 북을 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다. 그의 모친은 병들고 그의 삶은 무료하다. 두차이는 재활용품을 주워 팔고 더러는 경찰로부터 이유 없이 구타당하며 인형 뽑기만이 유일한 낙인 사회의 낙오자이다. 그들은 두차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성인잡지를 공장 경비실에서 함께 보는 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고장 나자 볼거리를 찾다가 케빈의 차량 블랙박스를 훔쳐본 일로부터 문제가 일어났다.

부처님은 일체개고(一切皆苦), 우리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고 가르치셨다. 고통의 본질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더해 채울 수 없는 욕망으로부터 깊어진다고 하셨다. 차이푸와 두차이의 고통은 가난과 굶주림과 늙고 병든 모친이며, 케빈의 번뇌는 채울 수 없는 육욕과 성공의 욕망이다. 그 둘은 서로 다른 강변에 서 있지만 어둡고 무거운 고통의 강물에 발을 담근 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동일하다.

차이푸와 두차이는 케빈을 부러워하다가 한순간 끔찍한 현실과 마주치게 됐다. 케빈이 옛 애인을 타살하고 주문받은 불상 안에 감추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성공의 이면에는 악행이 있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불행으로 이끌었다. 케빈은 그의 옛 애인 실종 사건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권력의 비호로 풀려났다. 케빈은 차이푸와 두차이가 블랙박스를 훔쳐본 사실을 알게 되고 차이푸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협박을 했다. 두차이는 교통사고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경찰은 만취 상태로 사고를 냈다며 덮어버리고 말았다. 차이푸는 그가 입에 술 한 모금 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화는 흑백 화면보다 더 어둡고 비정하게 흘러간다. 불행한 이는 불행 속에 남아 있고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책 속의 말뿐이다.

후앙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다. 그는 영화의 극적인 전개보다 현실을 보는 그의 시선을 깊이 개입하고 있다. 영화의 대목마다 자신의 목소리로 장면들을 설명해 간다. 관객의 해석에 앞서 그의 해설로 영화를 끌고 가며 영화 속 모호한 내용을 확실히 재단하고 있다.

두차이의 초라한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대불은 완성돼 차에 실려 법당으로 이운되고 있었다. 평생 사진 한 장 찍어둔 일이 없는 두차이의 영정 사진은 경찰의 폭행을 보도한 뉴스 화면에서 따온 사진이다. 삶의 마지막 길에서까지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영화가 끝날 때쯤 거대한 법당 중앙에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불상이 모셔지고 스님들과 신도들이 염불을 시작한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불상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영화는 이 장면에서 끝난다. 후앙 감독은 그 소리를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이야기한다. 불의에 대해, 세상의 거짓에 대해, 진실이 묻히기를 바라지 않는 간절한 바람. 죽은 것이 깨어나고 현실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인과의 여실함을 드러내는 소망의 소리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은 마음속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현실에서 흔히 마주치는 악한 자가 이기고 착한 이는 불행에 빠지는 부조리를 영화 속에서도 반복해 보아야 하는 것일까 답답한 것이다. 불상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무엇인가 거짓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를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제작자 자막이 올라가는 사이 잠깐 보이는 짧은 화면에서 감독은 관객의 바람에 대답한다. 불상은 해체돼 있고 엉망이 된 공장에서 경비실은 기울어져 있는데 차이푸는 그 속에서 두차이가 가져다준 잡지를 찾아 펼친다. 세상의 불행이 영원할 것 같아도 언젠가 우리는 진실을 마주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교는 세계를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三界)로 표현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욕계란 충족될 수 없는 욕망으로 고통받는 세상이다. 법화경은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로 세상이 욕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욕망의 끝에는 또 다른 욕망이 있고 그 굴레를 끊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고통의 바다를 헤매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출발점이다.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한 그 고통은 거듭될 뿐이다. 대불플러스는 바로 그런 욕망의 고통, 애욕에 가려진 삶의 고통과 본질을 드러내 이야기하고 있다.    

* 대불플러스는 아마존 비디오 프라임에서 영어 자막판을 유로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