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아나율 존자1

2019-04-25     이미령

|    ‘없다’라는 말을 모르는 어린 왕자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 천안제일 아나율(Anuruddha)은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아나율은 석가족 감로반왕의 아들로, 석가모니 부처님과는 세속 인연으로 따지자면 사촌지간입니다. 귀족이나 왕족 태생들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따르겠지만 아나율은 더욱 특별합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부족, 결핍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요. 아나율이 어려서 왕가 친구들과 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시녀들이 부지런히 과자를 나르고 있었는데, 워낙 원기 왕성하게 뛰놀던 어린 왕자들은 금세 과자를 다 먹어치웠습니다. 아나율이 시녀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에게 가서 과자를 조금 더 내어달라고 말하려무나.”

하지만 내오는 족족 과자를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과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시녀에게 일렀습니다.

“아나율에게 가서 ‘없다’고 말하여라.”

시녀는 아나율에게 가서 이 말을 그대로 전했지요.

“왕비님께서 ‘없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나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그럼, 어머님에게 가서 그 ‘없다’라는 과자를 달라고 하렴.”

이 정도면 그를 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도련님이라 하는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아예 ‘없다’라는 말을 모를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일러줘야 이제는 먹을 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시녀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과자를 담아서 내가던 황금 접시를 빈 채로 들려 보내면서 이 빈 접시를 아나율에게 보여주라고 일렀습니다. 하지만 시녀가 빈 접시를 들고 아나율 앞에 당도하기 전에 접시가 묵직해졌습니다. 어느 사이 과자가 수북하게 담긴 것입니다. 그러니 아나율에게 있어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의 사전에는 없는 말인 셈입니다. 그야말로 먹을 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난 사람입니다. 이 놀라운 복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불본행집경』)

|    그가 마시면 감로수가 된다
아나율이 아버지와 함께 농장을 감독하고 생업을 살피러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목이 말랐습니다. 아나율은 근처 물가로 가서 물을 떠 마셨습니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청량하고 달콤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물가에서 물을 떠먹는 모습을 본 아버지 감로반왕이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얘야. 그 물을 마시면 안 된다. 함부로 마시다가는 큰 탈이 난다.”

하지만 어린 아나율은 말했습니다.

“아버님, 이 물은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걸요.”

감로반왕은 아들이 마신 물이 얼마나 혼탁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맑고 시원한 감로수라도 마신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아나율은 손으로 물을 떠서 아버지에게 올리며 말했지요.
“자, 이 물을 한번 맛보세요. 그럼 제 말이 맞다는 걸 아실 거예요.”

아버지는 주저하면서 아들의 손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머금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 혼탁한 웅덩이의 물이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달콤하기까지 할 줄이야….

“정말 그렇구나, 아나율아. 네 말이 맞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달고 시원한 물을 마셔본 적이 없구나.”(『불본행집경』)

아나율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해 부족한 적도 없었고, 또 그 음식물이 맛없던 적도 없었습니다. 왕자여서 훌륭한 음식을 먹은 까닭도 있겠지만 이렇게 길가에 버려진 어떤 것을 먹어도 아나율이 먹으면 최고의 맛과 향기와 빛깔을 띠었던 것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다 보니 그는 이 세상 모든 사람도 다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먹는 음식물은 다 그렇게 처음부터 최고의 맛과 향과 빛깔을 띠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요. 

어느 날 석가족 왕자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주제는 ‘밥’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왕자들다운 주제입니다. 언제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최고의 맛을 갖춘 밥을 황금 그릇에 담아 먹다 보니 이런 게 궁금해진 것이지요.

왕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 그 밥이란 건 말이지, 곡물 창고에서 오는 거야.”

그러자 다른 왕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냐. 넌 아직도 그걸 몰라? 밥은 요리 기구에서 나오는 거야.”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아나율이 말했습니다.

“너희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말해주지. 밥은 말이야, 보석이 박힌 황금 그릇에서 나오는 거야.”(『대불전경』)

앞서 과자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빈 황금 접시를 아들에게 내밀었지만, 어느 사이 맛난 과자가 저절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는 걸 기억한다면 아나율의 이 말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    5백 가마의 밥을 부처님에게 올리다
아나율에게 먹을 복이 넘치는 걸 증명한 다른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석가족 왕자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나아가 수행자가 된 뒤의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녹야원에 머무실 때입니다. 비가 너무나 많이 내려 탁발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전에 한 끼만을 먹는 출가자 입장에서 하루 탁발을 하지 못한다면 너무 오랜 시간 허기에 시달려야 합니다. 부처님 시자인 아난 존자가 걱정이 되어 달려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저 많은 스님들이 어떻게 오늘 하루를 지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아나율 비구에게는 큰 복이 있어서 그가 우리 모두를 굶주리지 않게 해줄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나율 스님이 부처님을 찾아와 절을 올리고서 말했지요.

“세존이시여, 제가 변변찮으나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스님들도 오늘 하루를 잘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허락을 받은 아나율 장로는 마을로 탁발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집집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마을에는 아나율 스님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던지 탁발에 나선 스님을 맞는 거리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나율 스님이 마을로 들어가 몇 발자국을 옮기기도 전에 그 앞에 5백 가마의 밥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아주 자연스레 그 밥을 녹야원으로 가지고 와서 부처님과 모든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님이 되고 난 뒤에도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니 정말 아나율은 전생에 무슨 선업을 지었을까요?(『불본행집경』)

그런데 아나율에게 벌어지는 이런 행복한 기적은 음식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태어나자 그의 집안은 엄청나게 재산이 불었다고 합니다. 땅에서는 5백 개의 보물 창고가 저절로 솟았고, 아나율이 잠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하늘의 신들이 5백 가지 값진 보석을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감탄을 하면서 말했지요.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이 어린아이가 잠잘 때 하늘의 신들이 온갖 귀한 보석들로 그 위를 덮어주네. 이 아이를 ‘마니루타’라고 부르자.”

한문 경전인 『불본행집경』에는 아나율을 ‘마니루타’라고 부르면서 옛 번역에서는 ‘아니루타’라고 되어 있다고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나율은 참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누룻다, 아니룻다, 마니루타, 아니루타….

몸에는 건강하게 혈색이 돌고 피부에는 윤기가 흘렀으며, 코가 앵무새 부리처럼 높았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아나율입니다. 태생만 좋은 줄 알았더니, 타고난 복도 어마어마하고, 게다가 생김새도 훌륭하니 아나율은 금수저의 끝판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이런 아나율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으며, 지금은 대체 무엇을 더 원해서 스님이 되었을까요. (계속)    

이미령
불교강사이며, 불교칼럼리스트, 그리고 경전이야기꾼이다. 동국역경위원을 지냈고,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고, 불교책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을 이끌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붓다 한 말씀』,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수행입문』, 『이미령의 명작산책』,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볼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