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어리석은 마음, 기울임과 자만

화의 원인

2019-04-25     일묵 스님

화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꿰뚫어 알았다면 화의 원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화의 원인을 알아야 화를 소멸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올바른 처방전이 나올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    어리석은 마음 기울임 때문에 화가 일어난다
부처님께서는 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대상에 어리석게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마음 기울임(ayoniso manasikāra)’은 지혜롭지 못하게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날 때 대상을 탓합니다. 남편 때문에, 직장 상사 때문에, 세상의 부조리 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대상이 있어도 화를 내는 사람이 있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상 때문에 화가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상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 기울임 때문입니다. 어리석게 마음을 기울이면 대상에 대해 화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화가 멈추지 않고 그 대상에 대한 화는 계속해서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화에 완전히 압도되어 자신이 쌓은 공덕을 모두 태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반면 대상 때문에 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조건으로 내 마음에서 화가 일어난다고 본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yoniso manasikāra)’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이면 화에 휩쓸리지 않고 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면 화는 지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화를 꿰뚫어 아는 지혜가 계발됩니다. 결국 화가 저절로 버려지게 됩니다. 화 자체는 불선업이지만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을 통해 지혜를 계발하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볼 때 세상이나 나에 대해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내가 아니라고 보는 것(無我)이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이며, 어떤 것을 영원하고 행복한 것이며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 기울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 상황은 지금 순간의 일일 뿐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하므로 이 또한 지나가는 것임을 이해하면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도 마음을 지혜롭게 기울이면 인내심과 지혜를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에 현명하게 대처하다 보면 사람은 성장하게 되고, 이 괴로움이 어떤 과거의 원인에 의해 일어났는지 깨닫게 되면 자기 문제를 고치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나에게 이렇게 괴로운 일이 생겼는지 한탄하고 분노하면 상황의 부정적인 면에만 마음이 어리석게 기울어질 뿐 지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나 있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싫은 점과 불만만 계속 떠오르고 화는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나 화가 가라앉았을 때는 그 사람과 행복했던 경험이나 좋은 면이 생각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화가 나 있을 때는 말, 행동, 생각, 모든 것을 잠시 멈추는 게 좋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거칠고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나무랄 때 다 자식 잘되라는 좋은 의도로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 하는 훈계는 상대에게 거부감과 상처만 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하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 되기 쉬워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낳을 수 없고 문제만 더 키우기 때문입니다. 대처 방안을 찾으려 한다면 화가 가라앉아 마음이 차분해진 후에 생각해야 합니다.

|    자만 때문에 화가 일어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만이란 내가 남보다 낫다거나, 나와 남이 동등하다거나,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이렇게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도 화의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집안, 학벌, 부, 외모, 지능, 성격 등에서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우월감을 갖고 상대방을 무시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하거나 더 성공한 사람을 보게 되면 열등감이나 자괴감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같이 기뻐해 주기보다는 질투하고 험담하고 깎아내리기 십상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해코지하려는 악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모자란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불만을 가지고 자신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장점마저 사장시키고 우울함이나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이처럼 자만은 화가 일어나게 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묻고 답하기

관점의 전환이 해결의 실마리가 됩니다!

[질문] 저는 지금 마음에 드는 집을 놓치고 서둘러 다른 집을 계약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 얻은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과 후회로 하루하루가 매우 괴롭습니다.

후회와 불만족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일종의 화입니다. 

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하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만족을 못하니 계속 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상황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인데 계속 화를 내고 불만을 일으키면 삶 자체가 고통스러워집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그렇게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순간적인 판단도 작용했으니 이런 집을 만난 것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일단 마음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과거의 결정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계속 화를 내며 지내는 삶과 나의 판단이 미숙했음을 인정하고 지난 일에 대한 불만을 내려놓고 지내는 삶, 이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 봅시다. 한쪽은 그나마 내가 좀 덜 괴롭게 살 수 있지만, 다른 한쪽은 괴로운 그 마음을 계속 끌고 가면서 살아야 해요. 현실적으로 어느 쪽이 더 이익인지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께서 불만을 가진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마음만 자꾸 괴로울 뿐이지요. 내가 원하는 어떤 상황이 100퍼센트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좋은 상황이 오기도 하고 나쁜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영원한 것은 아니니 사는 동안 덜 괴롭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한 태도이지요. 이런 것이 관점의 전환입니다. 더욱이 후회하고 괴로워하면 그 자체로도 힘들지만, 그것에서 파생되는 생각들로 스스로를 더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니 질문자께서 생각을 바꾸시는 게 좋아요. 과거에 잘못한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또 의미가 있는 것이거든요.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