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조계사의 아이언 천왕

2019-04-25     주수완

조계사 앞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다. 조계사를 방문하는 불자나 관광객, 혹은 그와는 상관없는 근처의 직장인들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은 달라도 조계사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만큼 조계사 앞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다. 조계사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일주문 앞을 정성스레 꾸며놓는다. 그래서 이 앞을 지날 때면 도심 속임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읽을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일주문을 통해 조계사 경내로 들어가다 보면 독특한 철붙이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사천왕상이다. 그런데 그 사천왕상들은 평소 절에서 보던 사천왕과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원래 사찰 경내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라는 세 개의 문을 지나야 하는 것이 법식이다. 그러나 조계사에는 일주문만 있다. 법식에 따라 금강문, 천왕문도 들이고 싶지만, 아마 현재 상태에서는 그럴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천왕을 천왕문이 아닌 일주문에 모심으로써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일주문에 사천왕을 세우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사천왕은 보통 그 크기가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상인데 그것도 네 분이나 세우려면 일주문이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도들이 드나드는 데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는 천왕문이 좁아 조각상으로 봉안하기 어려운 경우 사천왕을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걸거나 혹은 문짝에 그려 넣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계사 일주문은 개방된 형태의 문이기 때문에 사천왕을 그릴 만한 문짝도 없고, 만약 종이나 비단에 그려 건다면 금방 비에 젖을 것이다.

이런 경우 가장 간단하고 초보적인 해결로서 비에 젖지 않는 가벽을 만들어 대충 그려 넣는 방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계사는 어느 분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매우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얇은 철판을 겹겹이 세워 평면도 입체도 아닌, 퍼즐 조각 같은 독특한 사천왕을 세운 것이다. 언뜻 현대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전위적이다. 평소 조계사를 드나들거나 지나면서 이 사천왕을 뵐 때마다 그 기발한 발상에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이런 현대적 감각의 사천왕을 만든 분도, 그리고 조계종의 센터인 조계사 정문에 이런 전위적 사천왕을 세우도록 계획하고 허락하신 분도 모두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로 된 조계사 일주문 사천왕을 보면 왠지 아이언맨이 생각난다. 만약 사천왕을 어벤져스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로 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상 사천왕의 바이슈라바나(북방 다문천), 드리트라슈트라(동방 지국천), 비루다카(남방 증장천), 비루팍샤(서방 광목천)는 모두 고대 인도의 어벤져스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수퍼 히어로들을 부처님의 호위신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현대의 슈퍼 히어로들이라고 부처님의 호위신중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게 구성한다면 또한 재미있지 않을까?(물론 실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등의 복잡한 문제가 있긴 하다.)

종교는 흔히 전통을 고수하고 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부처님도, 그리고 예수님도, 사실은 전혀 보수적인 분이 아니었다. 그분들이야말로 기존의 전통을 철저히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신 분들이었다. 물론 그분들이 그랬다는 것과 그분들의 가르침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잘 지킨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의 근본은 관습에 젖는 것이 아니라 그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생각할 때 불교 미술이라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변화의 모색이 필요하다.

근래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종교 신자는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와 같은 때에 종교가 원래 성인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마치 조계사 사천왕상이 관습을 대신해 새롭고 혁신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변화를 모색한다면 다시금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위안과 멋을 찾게 되지 않을까.(참고로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조계사 사천왕상은 이근세 작가의 작품이며, 이처럼 주문을 한 분은 도문 스님이라고 한다.)    

주수완
미술사학 박사. 고려대 세종캠퍼스 초빙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불교 미술을 통해 동양 미술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논문으로 『대승설법도상의 연구』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