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뜻깊은 5월, 효(孝)의 의미를 생각하다

2019-04-25     도재기

어느새 5월입니다. 기념일이 많은 달이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노동자의날도 있습니다. 불자들에겐 부처님오신날이 있어 뜻깊은 달입니다. 또한 5월은 가정, 가족의 의미와 중요성을 생각해보는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초석인 가정의 가치를 더 절감합니다. 시대 변화로 사회 구조는 물론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크게 바뀌어서죠.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친인척들 관계가 급변합니다. 끈끈하던 공동체적 유대 관계가 조각조각 파편화되는 상황이죠. 그러다 보니 소외, 외로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온갖 사건사고도 일상을 위협해 사회적으로 불안과 불만이 높아지고, 삶은 팍팍해집니다. 가정의 해체는 사회문제화된 실정이죠. 어느 때보다 가족의 유대감, 화목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심, 자녀에 대한 자애입니다. 부모님이 떠나고 나니 더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답사를 즐깁니다. 효심을 언급하다 보니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 삼층석탑’과 석탑 앞의 석등이 떠오릅니다. 각황전 오른편 언덕 위에 있는 문화유산들이죠. 네 마리의 사자가 삼층탑을 이고 있는 석탑은 역사적·학술적·예술적으로 가치가 커 ‘국보’이기도 합니다. 사자들이 둘러싼 중앙에는 불가수행자 조각상이 서 있죠. 그 수행자상 정면에 석등이 있구요. 석등의 화사석(석등의 불을 밝히는 부분) 밑에는 탑을 향해 차를 공양하는 스님상이 있습니다. 석탑의 조각상은 화엄사 창건주인 연기조사의 어머니고, 석등의 스님상은 연기조사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연기조사의 효심이 부처님 품 안에서 석탑, 석등으로 구현된 것이죠. 불교에서의 효 사상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재입니다.(현재 이 석탑은 보수를 위해 해체됐고, 내년쯤 다시 볼 수 있을 예정입니다.)

사실 효심으로 만들어진, 효를 생각게 하는 불교 문화재는 불상, 석탑, 종, 사경 등 참 많습니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시대를 이어 계속 만들어졌죠. 신비한 소리로 유명한 경주의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도 대를 이은 효심의 산물입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위해 조성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자 아들 혜공왕이 아버지 뜻을 이어 할아버지를 위한 종을 완성한 겁니다. 이 종은 제작 때 어린아이를 넣어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설화가 있지만, 과학적 분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역시 국보이자, 흰 닥종이(백지)에 먹으로 쓴(묵서) 고려 시대의 사경 「백지묵서 묘법연화경」도 알고 보면 간절한 효심으로 만들어졌죠. 640여 년 전 하덕란이란 인물이 아버지의 무병장수,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유물입니다. 3월 초 ‘보물’로 지정된 조선 시대 「묘법연화경」에는 명필가 성달생·성개 형제의 효심이 담겨 있죠.

잘 알려진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큰 은혜 열 가지를 설합니다. ‘뱃속에 품고 지켜주신 은혜’,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 ‘자식을 위해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은 은혜’…. 부모님 은혜는 워낙 크다 보니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아버지를 받들고, 살가죽이 닳아 뼈에 이르고 뼈가 뚫어져 골수에 이르기까지 수미산을 돌아도 다 갚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모은중경』에선 그나마 갚고자 한다면 사경, 독경, 허물의 참회, 공양과 보시로 복을 닦으라고 하죠.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고 보시하라는 말이 유독 다가옵니다. 스스로를 늘 참회하고, 자비심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통해 부처님 법 안에서 자신의 삶을 꾸린다면 가정은 물론 이웃, 사회 전체가 더 살만해지지 않겠습니까. 사실 사상적으로 불교에서의 효는 내 부모를 넘어서죠. 일체중생, 우주 만물에까지 확장됩니다. 우리가 아는 효보다 더 넓은 뜻을 내포하죠.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이기적 가족주의를 넘어 사회적 공익, 나아가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까지 챙기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5월 12일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빈자일등’을 내걸며 부모님과 가족, 소외된 이웃, 자연생태계까지도 깊이 생각해 보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이 땅에 부처님이 오신 참뜻을 되새기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에디터. 경향신문 여러 부서 중 주로 문화부 기자로서 취재 활동하고, 문화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문화에디터(부국장)다. 저서로 한국의 국보 문화재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해설한 인문교양서 『국보 역사로 읽고 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