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이름 병, 이름 감옥

2019-04-25     김택근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만난 여성 가이드는 자신을 ‘꼬망’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미소가 맑은 아가씨였다. 꼬망이란 집안의 셋째 딸을 뜻했다. 발리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름이 있긴 하지만 첫째 둘째 셋째 넷째로 부른다고 했다. 발리 사람들의 오래된, 그래서 녹슨 관습이려니 했다. 그러나 곰곰 새겨보니 발리 주민들의 행복한 미소가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는 ‘둥근 삶’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미국 역사학자 존 브롬필드가 지은 『지식의 다른 길』을 보면서 확신을 가졌다.

“그들은 좀처럼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순환하는 주기에 이름을 붙인다. 발리에서는 태어난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도 네 단계밖에는 없다. 즉 다섯 번째 자식에게는 맏형과 같은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아홉 번째 자식을 또 낳으면 그 역시 큰아들과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문화가 다르면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도 다르다. 서구인들은 물질의 덧없음을 강조함으로써 시간의 급류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러나 발리인들은 친숙한 형태의 반복을 통해 생의 지속성을 강조함으로써 영원한 현재에서 살 수 있다.”

발리 사람들은 대순환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뀌어도 여전히 지구는 지구인 것처럼 그들은 ‘현재의 특별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발리에서 첫째라고 부르면 많은 이들이 돌아볼 것이다. 이방인들은 혼란스럽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편견일 뿐이다. 100번을 돌아보면 또 어떤가. 첫째임을 확인하며 서로 씨~익 웃을 것이다. 그들은 다르면서도 같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비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야 안심한다. 이름은 태어나 줄곧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이름을 얻으면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죽으면 나는 떠나가고 이름만 남을 뿐이다. 『숫타니파타』는 이렇게 이른다.

“나는 ‘아무개’라고 제법 목에 힘을 주던 사람도/ 가을 잎 지듯 그렇게 죽고 나면/ 그 이름만이 뒤에 남아 홀로 떠돌 것이다.”

결국 이름도 내 것이 아니다. 내 이름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이름의 감옥’을 벗어나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썩고 부러지고 말라비틀어진 막대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최잔고목론(摧殘枯木論)’이다.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낙오자가 되어야만 공부를 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버림받고 멸시당하여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는 이가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바로 평생 달고 살아가는 이름이다. 성철 스님은 이름병의 무서움을 이렇게 설파했다.

“실제로 재물병과 여자병은 결심만 단단히 하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름병에 걸리면 남들이 다 칭찬해주니, 그럴수록 이름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책을 좀 보아서 말주변이나 늘고 또 참선이라도 좀 해서 법문이라도 하게 되면 그만 거기에 빠져버리는데 이것도 일종의 명예병이다.”

이름에 금칠을 하려고 날뛰는 시대이다. 다들 명예를 얻으려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세상에 나와 제 이름 하나 남기려고 먼지를 피우고 있다. 그러다 되레 먼지를 뒤집어쓰고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이도 있다.

주어진 모든 힘을 흙 속에 풀어내고 흙으로 돌아간 자연인들.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고도 공치사(功致辭) 한번 안 했던 어머니들. 그들의 삶은 고단했지만 영혼은 맑았고, 온통 주름투성이였지만 그 속에 욕심이 붙어 있지 않았다. 아주 먼 옛날에, 아니 우리 시대에도 이름을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무아(無我)의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있다.

보이지 않게 쌓은 공덕이 뗏목이 되었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이 노가 되어서 저 언덕으로 넘어간 사람들. 그들이 부처였다. 그래서 부처님이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