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도, 돈, 돌

열린 상담실

2007-09-15     박진생

얼마 전에 지난 7월호까지 글을 썼던 전현수 선생과 차를 타고 오면서 돈과 정신건강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결론은 돈과 도(道)와 도는 것(즉 노이로제나 정신병)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단어의 모양새로 보아도 '돈'에서 받침을 떼면 '도'가 되고 받침을 바꾸면 '돌'이 된다.

그런 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만 완전히 극복을 할 수 있다면 범부(凡夫)도 도인(道人)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아무리 도인(道人)을 자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돈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를 보면 거짓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날 때가 있다.

돈이란 존재는 참 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돈이 바로 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왜냐하면 돈을 받고 환자를 치료해주는데, 만약 돈만 받지 않고 그런 행위를 해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금방 성인(聖人)으로 소문이 자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달여 동안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파동으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과연 노태우 대통령이 열린 상담실에 환자로 찾아온다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대로 한 번 추측을 해보았다.

"잠이 통 오지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5000억원의 비자금이 탄로가 났습니다. 온 국민이 나에게 욕을 하고, 감옥에 보내려고 합니다. 가족들이나 친척들까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려고 했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삼촌집에서 눈치밥을 먹으면서 자랐습니다.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굶을 때도 있었고, 학교도 못 다닐 형편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을 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군인이 되었어요. 군인은 전쟁터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한다는 것을 몸에 배도록 배웠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대통령까지 되었지요.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양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한(恨)이 졌던 돈을 마음껏 모았지요. 그래서 퇴임 때에는 몇천억 원의 돈을 모으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돈이 생기자 오히려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뒤부터는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고 불안해서 잠을 도저히 못잘 형편이었어요. 차라리 이렇게 모든 것이 터지고 나니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까지 하군요. 이제 감옥을 가든 망명을 가든지 간에 두발을 뻗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군요."

대통령이 일그러진 얼굴로 망명을 이야기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문득 어릴 때에 할머니께서 일러주시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대통령에게 그 이야기를 꼭 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일제가 막바지에 다다렀던 1945년 경이었지. 우리 마을은 남쪽 해안가에 있는 섬이었는데, 그 고을에 모리시마(森島)라는 일본인 경찰서장이 있었지. 그 놈이 어떻게나 악랄하던지, 조선사람들 치고 그 놈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 죄없는 사람을 가두었다가 뇌물을 가져다 주면 사람을 풀어주고는 했거든. 아마 그렇게 모은 재산이 엄청났을거야.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항복을 하게 되니까 후환이 두려워서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배를 타고 도망을 치게 되었거든. 그런데 어디 얻어타고 갈 배가 있어야지. 그래서 경찰서장인 모리시마(森島)와 세무서장, 그리고 세 명의 일본인 유지들이 힘을 합쳐서 겨우 배를 한척 전세를 내었던 거야."

"그래서 할머니! 그 놈들이 모두 무사히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조바심이 나서 나는 할머니에게 바짝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마침 배가 떠나는 날은 깜깜한 그믐날 밤이었지. 일본인 유지 5명과 그 식솔들을 합치니까 한 30명쯤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갓난아기를 업은 모리시다(森島)의 며느리도 있었어. 그 경황이 없는 와중에 모두들 큰 가방들을 하나씩 들었는데, 그 안에는 지폐와 금은붙이들이 꽉 차 있었다고 그래."

일본인 가운데에 배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4명의 선원은 모두 조선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일행을 일본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기만하면 큰 돈을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면서 배가 출발을 하자 일본인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틀이면 무사히 일본에 도착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후에 동네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4명의 선원들은 갑자기 시퍼런 칼과 도끼를 든 강도로 변해서 30명의 일본인들을 남녀노소할 것 없이 잔인하게 죽였고, 그 시체는 남김없이 바다 속으로 던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소문은 전혀 알려지지 않을 뻔 했는데, 4명의 선원들이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공을 주장하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싸움이 났기 때문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급기야 그 중의 한 명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서 밤마다 귀신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가 정신이 돌게 되었고, 나중에는 목을 매어서 자살을 하게 되었다.

또 나머지 3명은 뿔뿔이 헤어져서 객지로 나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 많던 재산도 잠시뿐이었고 나중에는 날품팔이나 막노동으로 어렵게들 살아갔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그들의 자식들 가운데에 그렇게 정신이상이나 불구자가 많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노태통령에게 해주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많은 이야기를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는 스위스 은행의 비밀구좌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그것마저 다 털어버리고 국민들의 용서를 빌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은 그것만은 어렵다고 하였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문득 아프리카의 원숭이 사냥이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원숭이 사냥을 할 때에 우리나라의 단지 모양의 작은 항아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만한 주둥이를 가진 이 단지 속에 먹이를 넣어두면, 원숭이는 그 속에 손을 집어 넣어서 먹이를 꼭 쥔다. 그러면 손이 빠지지가 않게 되는데, 손에 쥔 먹이만 놓으면 빠져나올 수가 있겠건만, 원숭이는 그것이 탐이 나서 결코 놓지 않기 때문에 사냥꾼의 손에 잡히고 만다는 것이다.
어디 미련한 것이 원숭이뿐이겠는가.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고 인간의 욕망을 다 채울 수 없다'는 『법구경』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정귀혜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