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의 참행복] 수유역 포장마차 주인 양권석 씨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수유역 포장마차 주인 양권석 씨

2007-09-15     김명환
"장사는 영 못할 사람" 양권석 씨,그의 영업비결은 '많이 벌지 않는 것,큰 욕심 내지 않는 것' 그리고 조금 가진 것을 넉넉히 나누는 마음이다.

오후5시, 여느 사람이라면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즈음이지만 양권석 씨(39세)의 조그만 가게는 그때쯤 문을 열기 시작한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여덟이나 아홉사람 정도만 들어서면 꽉 찰 공간에 지붕도 낮고, 백열등 하나의 밝기에 팔고 있는 먹거리라고 해보아야 한 대접에 4,000원 하는 홍합, 노릇노릇 구운 닭꼬치, 따끈하게 먹을 수 있는 소라, 그리고 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편인 6,000원짜리 크고 싱싱한 굴이 그가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의 전부이다.
그러나 그의 가게에 들르는 사람들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월급쟁이는 물론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간단한 술 한 잔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씻어내려는 사람, 내일이면 다시 만날 연인과 헤어지는 아쉬움에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또는 하루의 일과가 고단하고 힘들어서 또 어떤 사람은 세상의 무겁디 무거운 고민을 떠맡고 있어서, 또는 5만원의 복금에 당첨이 되어 하루종일 희희락락하다 그 공돈에 영 마음이 편치 못해 '에라 그날 다 쓰는 게 공돈이지' 하고 친구를 불러내어 거하게 술 한 잔 사는 운수대통한 사람 등등…. 그야말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사람들은 그의 가게를 찾는다.
물론 사람들이 쉬이 마음 속에 간직한 말들을 풀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골손님으로이거나 그저 우연히 이거나 그의 가게에 들르는지도 모른다.
양권석 씨는 이곳 수유역 한쪽에서 벌써 5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단골 손님도 꽤나 많다. 우연히 자리를 함께 했던 그의 오랜 친구인 김전모 씨나 후배된다고 하는 이도 멀리서 예까지 그가 '보고 싶어서' 올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장사수완은 그다지 신통치 못한편이다. "저 친구 장사는 영 못할 사람". 이라고 단번에 얘기하는 친구 김전모 씨의 말에 그저 멀쑥하니 웃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조금 전 들어온 인근의 허름한 벙어리 노인에게 소주와 홍합국물을 아무 말 없이 그냥 내어주는 그의 손품도 그러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엄연히 그는 포장마차 5년차의 이곳 수유역 터줏대감이다. 수유역 인근 노점상 연합회의 총무로서 갖가지 궂은 일을 맡아 보고 있으면서도 술 한 잔 못하는 양권석 씨가 지켜온 그 오랜 영업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간단히 "많이 벌지 않는 것, 먹고 살 만큼만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많이 벌어도 좋고 적게 벌어도 좋은 그야말로 큰 욕심 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난 위로 보고 살지 않아요, 아래를 보고 살지요. 노력을 안하고 못 살면 쳐다보지 말아야지요. 노력한 만큼 벌고 노력한 만큼 살아가는 것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걸음 양보하면서, 상대편을 생각하면서 더불어 의지하고 살면 어느 누가 못살겠습니까."
이 한가지만이 그가 들려줄 수 있는 전부라고 이야기 한는 양권석 씨.
5년여 전까지만 해도 그 자신을 비롯 그의 친구, 그의 부인 최경진 씨까지도 그가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대구의 모 식품회사에서 일하면서 일본에 기술 연수까지 다녀온 그였고 타 회사에 스카웃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회사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던 중 회사 노동조합원들의 임금과 생활여건 향상을 위해 노조일에 함께 하게 되었고 회사측과 대립하게 되자 큰 마찰이 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번듯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조금씩 양보하고 살고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는 곳, 그런 이랴기들로 훈훈한 양권석 씨의 가게 안 풍경

큰 살림을 줄여 생활하기란 더 어려운 법이라 당시 세 살이던 딸 보윤이와 부인 이렇게 세식구가 단칸방에서 시작한 서울생활은, 부인 최씨가 지금은 우수갯소리로 말하지만 그때는 살림살이도 그대로 버리고 올라와 마련한 그 단칸방이 너무 비좁아 잠잘 때 식구들이 자리가 불편해 뒤척이는 소리만 들려도 모로 누워 자게 되었고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온 이틀만에 양씨는 손수 제작한 수레에 도자기를 싣고 나가기 시작했고 하루벌이가 여의치 않아 길거리에서 인형을 팔기도 했다. 그리고 외사촌 중의 한 분이 하던 포장마차가 생각나 열심히만 하면 세 식구야 못 살까 하는 각오로 포장마차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 년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하루 일을 못하면 일요일 '대체근무'를 해서라도 일주일에 6일은 일하는 부지런함으로 집 장만하기 힘들다는 서울에서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을 마련해 놓았다.
"한달에 한 번 정도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다니는데 얼마 전 TV 에서 소쩍새 마을이 방영된 후 그 아이들과 그곳 봉사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까 하는 마음에 한 번 가보았습니다. 몇몇 젊은 스님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에 발길이 끊겨서 그런지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곳을 다녀보면 아직 우리사회에는 소쩍새 마을보다 더 어려운 곳이 많습니다. 많은 도움은 못돼드리고 그냥 다녀오는 형편이지요. 세 식구 안 굶고 먹고 살 정도 되고 제가 그들보다 좀더 가지고 있으니까 조금 나누는 것뿐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생활이라고 하는 포장마차 일임에도 한달에 한 번 조금씩 나눌 수 있는 기쁨에 오히려 자신은 부자라고 말하는 양권석 씨다. 그리고 이건 부인 최경전 씨가 들으면 뜨악해 할 일이지만 양씨는 지난 6월 친구, 후배 4명과 함께 앞으로 생활이 어려운 소년소년 가장의 후원자가 되어 앞으로 그 아이가 커서 한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돌보아줄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이 달쯤이면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뜸해 준다.
그는 또 나이가 들면 지방에 조그만 양로원을 짓고 텃밭을 일궈 양로원이 나름대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살았으면 한다. 물론 최씨도 이다음 이다음 형편이 닿으면 하고 싶은 일이라고 그동안 남편이 하던 일에 못마땅해온 미안한 마음을 드러낸다.

며칠 전에도 온 것 같은데 또 그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오랜 친구 김전모 씨와 함께

장사도 잘되고 좋은 일만이 있을 것이란 기분 좋은 믿음 때문에 오른 손목엔 항상 염주를 차고 생활하는 양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리산에서 2년여를 생활할 때 법계사의 월해 스님으로 부터 받은 도식(道植)이라는 법명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불교를 그저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이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인근의 도선사나 연화사를 찾아 법당 안에 그냥 무심히 앉아 있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응어리진 그 마음이 어느새 다 풀어져 있더라고.
그의 영업시간은 보통 새벽 3시나 4시까지다. 그리고 20여 분 거리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질좋고 싱싱한 안주를 위해 직접 새벽수산물 시장에 나가 다음날 장을 본다. 그러면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던 부인 최씨가 그 안주거리를 다듬고 이것 저것 일이 다 끝나면 오후 3,4시 까지의 시간을 빌어 뒤늦은 잠을 청한다. 그런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중에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고 많지 않은, 아니 그가 너무도 많이 가진 넉넉한 마음을 나눈다.
양권석 씨의 고단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하는 삶, 그리고 조금 가진 것을 넉넉하게 나누는 삶. 이들 부부가 우리 보통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향기로운 삶이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는데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 소란스러워 귀가 솔깃솔깃하다. 그 이야기를 게워내기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마음을 낼 겨를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사회 곳곳에는 그런 만큼 아니 세상살이가 변한 만큼 더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실상 이 겨울은 고아원이나 양로원, 복지원의 그네들에게는 다음 봄을 그리고 다음해를 날 수 있는 살림과 예산을 마련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일회성의 큰 도움이 아닐 터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따뜻한 마음과 그런 사람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이 그들이 바랄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이 겨울 그 길고도 소란스런 소문(所聞)을 밀어내고 따뜻한 마음 나눌 수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소리나지 않는 발걸음에 귀기울여 본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정귀혜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