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워크 위드 미 : “당신은 이미 그곳에 이르러 있다”/ 김천

“당신은 이미 원하는 그곳에 이르러 있다”

2019-03-27     김천

이 영화는 고요하다. 별다른 기복 없이 틱낫한 스님과 그 상가의 모습을 담담히 영상에 담았다. 내용이나 기법이 말 그대로 기록 영화에 충실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영화 ‘워크 위드 미(Walk with Me, 2017)’는 마크 프랜시스와 맥스 퓨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영화적 재미나 틱낫한 스님의 깊은 가르침을 바라고 이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만큼 잔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이들의 평도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을 깊이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에겐 잊지 못할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만나는 틱낫한 스님의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은 작년 10월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하여 당신의 출가 본사인 베트남 후에의 절로 돌아갔다. 2014년 심각한 뇌출혈을 겪은 후 작년부터 외부 활동을 삼가고 있다. 아마도 생애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프랑스 플럼 빌리지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님의 모습을 이 필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틱낫한 스님, 한자 이름은 석일행(釋一行). 1916년 베트남 중부 후에에서 태어나 16세에 임제종 승려로 출가했고 1951년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베트남전 당시 전쟁 당사국인 미국으로 건너가 반전운동을 펼쳐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반전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의 기수 킹 목사는 스님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지만, 틱낫한 스님은 남쪽 베트남 정부로부터 귀국 불가 처분을 받았다. 뜻하지 않게 망명자 신분이 되어 프랑스에 정착하여 수행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만들었다.

통일 이후에도 귀국 불가 방침은 풀리지 않았고, 고국을 떠난 지 38년 만인 2007년이 돼서야 방문이 허락됐다. 50여 권 이상의 책을 펴냈으며 국내에는 『평화로움』, 『화』, 『법화경 이야기』 등의 책으로 잘 알려졌고 수차례 방한하여 대중들과 함께 걷기명상을 한 바 있다. 『화』는 IMF 금융위기 시절 100만 부 이상이 팔려 국내에 스님이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상이 틱낫한 스님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틱낫한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플럼 빌리지의 숲길을 걷는다. 느린 발걸음으로 호흡에 집중하여 걷던 스님이 잠시 걸음을 멈춰 나무 둥치를 쓰다듬자 뒤따라 걷던 제자가 빙긋 웃는다. 새소리가 들리자 스님은 눈을 돌려 나무 위를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이어간다. 마치 『금강경』 첫머리에 부처님께서 고요히 슈라바스티 거리로 나가 탁발을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짧은 첫 장면에는 틱낫한 스님의 평소의 가르침이 축약돼 있다. 영화 속에서 틱낫한 스님이 소개하는 플럼 빌리지의 ‘수행의 노래’에는 “당신은 이미 원하는 그곳에 이르러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가려 할 때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더 빨리 도착하려고 한다면,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감동은 잊고 지나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요히 걷는다는 것은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만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며 수행도 그러하다고 스님은 말한다. 돈을 빌리려고 급히 찾아가는 은행보다 우리 삶에서 더 값진 것은 그 길가에 피어 있는 장미꽃 한 송이, 꽃잎에 반짝이는 이슬 방울, 대지를 축복하는 태양의 햇살을 느끼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때문에 틱낫한 스님이 더 천천히 걸으며, 들이쉬고 내뱉는 숨결에 집중하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내내 등장하고 있다.

영화의 중간쯤 플럼 빌리지 수행 캠프를 찾은 소녀의 질문이 눈에 띈다. “사랑하던 강아지가 세상을 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스님은 “눈을 들어 하늘의 구름을 보면 어느 사이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구름은 없어지지 않았다.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그 물로 차 한 잔을 끓여 마시면 구름은 다른 형태로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답한다. 인연과 연기,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설명한 것이겠지만 소녀의 눈빛은 별로 납득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틱낫한 스님의 이런 화법은 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지?” 하는 반응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실 명상이 만병통치약일 수도 없고 종교적 수행이 세상 모든 일을 해결하는 비책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중들은 무언가 신비한 답을 원하고 진실은 그런 것이 없다는 점을 일깨운다. 스님은 영화 내내 수행을 통해서 “갈망을 멈추고 잠시 지켜보라.”고 권한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이미 얻은 것을 지나쳐 더 바라고 더 빠르게 달려가지 말라고 한다.

틱낫한 스님은 임제종에 뿌리를 둔 접현종(接現宗)이라는 종파를 창종했다. 말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을 그대로 만나자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 스님은 법문 중에 “과거는 지나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지금 내 앞의 현실만을 여실히 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강조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플럼 빌리지의 스님들은 출신도 배경도 다양하다. 감독은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속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베트남 방문 당시 틱낫한 스님의 첫마디는 “나는 홀로 고국을 떠나야 했지만, 이제 승가를 이루어 돌아왔다.”는 말이었다. 당시 동행했던 베트남 출신 스님들 대부분이 보트피플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그 말의 울림은 컸다. 스님의 신념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었고 함께 걷고 수행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영화 속의 스님이나 재가자 모두 스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여백이 많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갈 때 뜬금없이 만개한 꽃이나 숲의 안개, 떠오르는 태양이 비춘다. 영화 속에서 연주하던 스님들은 종소리가 들리자 잠시 악기를 내려놓고 깊은숨을 쉰다. 플럼 빌리지 명상캠프 접수를 하던 스님들도 종소리를 듣고 침묵에 잠긴다. 영화는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도 잠시 멈추고 침묵할 수 있기를 바라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 영화는 느리고 비어있고 더러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도 스님은 우리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나와 함께 걸읍시다(Walk with me).” 하고 권하고 있다.                                                       
 

●  이 영화는 비메오(Vimeo.com)에서 영어 자막판을 유료로 볼 수 있다.
●  틱낫한 스님의 38년만의 귀향에 대한 국내 다큐멘터리는 ‘틱낫한의 귀향’이 있고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