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다나 회장 탄경 스님

어둡고 추운 새벽, 부처님께 묻는다

2019-03-27     김우진

부처님 앞에 이불을 깔고 몸을 뉘었다. 멀리 진해에서 올라온 보살님과 네팔에서 온 노동자 한 분은 벌써 잠에 들었다. 우리는 내일 새벽 함께 음식을 나눠야 한다. 동이 트지 않은 거리에서 노숙자들을 만나야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어둡고 추운 길을 나서야 할까? 굳이 이렇게 애써야 할까? 부처님께 묻는다.

사진: 최배문

|    다함께 나누는 세상
탄경 스님이 이끄는 사단법인 다나(다 함께 나누는 세상)의 봉사자들은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종로 거리로 향한다. 길 위에서 바람을 피해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들에게 준비한 음식을 건넨다. 하나씩 묶어 놓은 봉지에는 사발면과 주스, 초코파이 등이 들어 있다.

“3, 4년 정도 되었죠. 매주 같은 시간 이분들에게 음식을 나눕니다. 보통 100~150개 정도 나눠드립니다. 일 년에 네 번, 부처님 오신 날처럼 특별한 때에는 조금 더 많이 준비하지요.”

광화문과 을지로, 보신각과 탑골공원 등지를 돌아오는 길. 캄캄한 하늘 사이로 빛이 갈라져 나온다. 가벼워진 수레만큼이나 마음도 시원하다. 탄경 스님은 나눔을 다하고 돌아올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탄경 스님의 자비행은 2005년 파키스탄 지진 구호 활동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번졌다. 구호 활동을 했던 보름의 시간이 스님의 마음에 큰 서원을 새겼다. ‘도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품고 있던 스님은 삶의 현장에서 자비행의 실천이 그 길임을 통감했다. 

“정말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더라고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 멍하니 있었다는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데 몰두하느라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스님의 자비행은 그렇게 이어졌다.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전하는 일 외에도 함께하는 일들이 많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생활하는 결손 가정 아이들에게 쌀과 반찬, 학용품, 생필품 등 필요한 물품을 나눈다. 또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며, 네팔 이주 여성 쉼터와 네팔 법당 후원, 네팔 현지 교육 지원, 라오스 태양광 발전소 지원 사업 등도 하고 있다. 스님의 활동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향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만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일을 하려는 데도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도 오전에 아는 스님께서 기도를 부탁하셔서 절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에 먼저 도움을 드려야 그분도 제가 필요할 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인연 있는 곳에서 손이 필요하다고 하면 대부분 가는 편입니다. 돈을 마련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죠. 여러 사찰에서 스님과 불자들이 도움을 주셨는데, 계속 도와달라고 말하기가 조금 힘이 드네요.”

|    바람직한 스님의 모습?!
탄경 스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그래서 직접 발 벗고 나섰다. 불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종교가 될 수 있도록,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불교에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서울역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인근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데 한 분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더라고요. 불교 행사에서 스님이 직접 나눠주었는데도 그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우리 불교가 사회를 위해 그간 도움을 준 것이 없었구나 싶었어요.”

하루는 그런 적도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탄경 스님이 박스를 가득 실은 카트를 밀고 가던 중이었다. 종각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보살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스님인가? 스님이 왜 저런대? 저럴 리 없지….”

그 말을 들으면서 ‘스님은 새벽에 카트 끌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스님의 모습은 뭘까? 산속 암자에 앉아 수행하는 스님만 스님인가?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여러 생각이 스쳤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사실 이 일이 많이 힘들어요. 도심에서 생활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절에 있는 스님만 스님인 것은 아니잖아요. 세상에 나와 사는 스님도 있어야 하잖아요. 부처님의 제자로서 어려운 사람을 못 본 체할 수 없잖아요. 가까이서 도와야 하잖아요.”

스님의 마음이 세상에도 통한 것일까? 꾸준한 활동으로 도움을 주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직접 봉사를 돕겠다는 불자들의 연락이 온다. 후원도 늘었다. 사중의 쌀을 보내주는 곳, 학용품을 보내주는 단체, 후원금을 입금해주는 불자 등 스님의 곁에 점점 도움의 손길이 더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해군 장교 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한 달에 한 번 봉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돈 한 푼 없이 출가한 제가 필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날까지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살아온 것 모두 세상 사람들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회향해야죠. 고마운 마음 이 세상 곳곳에 전해야죠.”

사진: 최배문

|    탄경 스님이 바라는 것
탄경 스님이 노숙자들을 돕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한다. 노숙자들 도와봤자 그 사람들 다 구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노숙자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의 존재가 사회의 책임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탄경 스님은 생각한다. 또 그들을 도와서 변하는 게 없다고 하는데, 불교는 늘 불가능에 도전해왔다. 부처님께서 당시에 하셨던 것들도 대부분 그랬다. 우리가 도우면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스님이 하는 활동이, 도움이, 선함이 번질 것이다.

“세상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처럼 거리로 나와 활동하는 스님들도 많아질 거고요. 그때까지 제가 변하지 않고, 초발심 그대로 간직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어둡고 추운 길을 나서야 할까? 굳이 이렇게 애써야 할까? 부처님께 묻는다. 대답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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