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연등회보존위원회 김백상 씨

큰 서원과 정성으로 밝힌 등이 거리를 가득 메울 때까지

2019-03-27     양민호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5월 12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상의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준 부처님이 나투신 날. 불자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이날을 기념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 중이다. 그중 메인 이벤트는 단연 ‘연등회’. 지난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제122호)로 지정된 연등회는 이제 종교와 국적을 넘어 전 세계인이 즐기는 한국의 대표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남몰래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연등회보존위원회를 찾았다. 2019 연등회 막바지 행사 준비가 한창인 그곳에서, 나이는 젊지만 웬만한 이들보다 이 바닥(?)에서 잔뼈 굵은 김백상 씨를 만나 불교와의 인연과 연등회보존위원회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진: 최배문

|    처음도 재밌고 지금도 재밌는 일
종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그 종교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든 크든 어떤 계기와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김백상 씨 역시 그렇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다녔다. 유치원 때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어린이법회부터 청소년법회를 거쳐 법회 교사까지, 그야말로 절 생활 풀코스를 밟았다. 그리고 그 인연이 계속 이어져 지금의 연등회보존위원회까지 이르게 됐다고 한다.

“6-7살 때쯤으로 기억해요. 제가 잘 따르던 지도법사 스님이 조계사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그때 함께 이쪽으로 따라 왔어요. 그 후로 쭉 조계사에서 법회 생활을 하며 컸죠. 그러다 어느 날 청소년법회 선배 한 분이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어요. 연등회 때 율동할 사람이 한 사람 비는데 하겠느냐고요. 그때가 연등회보존위원회와의 첫 인연이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그 후로도 자원봉사며 아르바이트며 기회 닿을 때마다 함께하면서 연을 쌓아 왔죠. 그러다 보니까 지금 여기에 있네요.”

연등회보존위원회에 발을 들이고 처음 주어진 업무는 자질구레한 잡무들이었다. 서류 정리에서부터 창고 정리까지 손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맡아 했다고 한다. 누군가 “백” 하고 부르면 나타나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언뜻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떨까. 멋 모르던 시절에 비해서 해야 할 일과 책임감이 늘어난 지금도 그때처럼 즐거울까 싶어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역시 “재밌어요.”였다.

|    정성으로 밝힌 등불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날까지
<삼국사기>에 보면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에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잘 알려져 있듯,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가 국가적인 행사로 치러졌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연등회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전통문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연등회는 단지 하나의 종교 행사 정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고, 점차 연등회가 세계인의 축제로 발돋움하기까지 연등회보존위원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조계사와 종로 일대에서 펼쳐지는 전통등전시회, 연등행렬, 전통문화마당에는 수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모이는데, 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을 연등회보존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백상 씨 역시 일원으로 매년 성공적인 연등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연등회 행사는 단 며칠로 끝나지만, 이 짧은 행사를 위해 연등회보존위원회는 한 해를 꼬박 새웁니다. 단발성 이벤트와는 달리 연등회는 전통이고 문화재다 보니까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워낙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보니까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요.”

연등회에 사용할 음악 만들기, 기념품 개발, 행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 등 연중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 연등회보존위원회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은 바로 전통등 만드는 법을 대중들에게 전수함으로써 등 만드는 문화를 널리 보급하는 일이라고 한다.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 하나. 연등회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처님 당시에 가난한 한 여인이 그랬듯, 우리도 정성껏 등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마음이어야 할 겁니다. 매년 연등회가 끝나고 다음 연등회를 준비하기까지, 연등회보존위원회에서 하는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이런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일입니다. 전국 사찰에서 연령별로 전통등 만들기 강습을 실시하고, 불자들이 자연스럽게 전통등에 대해 배우고 제작할 수 있도록 사찰 내 공방 만들기에 관해 공감대를 쌓아나가고 있죠.”

연등회의 본질이 부처님께 정성을 담아 공양 올리는 일임을 상기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다행스럽게도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점차 전통등 만드는 사람들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연등행렬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손수 제작한 전통등을 들고 온다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밝혔기에 사그라지지 않았던 한 여인의 등불처럼 환한 빛이 5월의 밤하늘을 가득 메울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    함께하는 모두가 주인공인 연등회
큰일에는 그만큼의 부담과 어려움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수만 명이 참가하는 대형 야외 축제, 한국불교계 연중 최대 행사, 한국의 유구한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시간, 이렇게만 놓고 봐도 연등회를 준비하는 사람들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런 힘듦도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 앞에서는 별 대수가 아닌가 보다. 일하면서 힘든 점이 없냐는 물음에 되레 보람차다고 웃으며 말하는 김백상 씨다.

“힘든 점? 힘든 점…. 없는 것 같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마음 가서 하는 일이라 그런가 봐요. 매년 행사를 마칠 때,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늘 최선을 다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작년에도 그랬어요. 예상치 못하게 비가 많이 와서 준비한 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할 상황에 놓였는데,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즐기는 모습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매년 연등회는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꾸려가지만, 연등회를 만들어 가는 건 비단 자신들만이 아니라고 김백상 씨는 말한다.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는 대한불교조계종과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안전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는 서울시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들, 연등회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연등회를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그 힘이 더 커지도록, 더 많은 사람이 연등회의 존재와 의미를 공유하고 한데 모여 우리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힘써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개인적 바람이자 연등회보존위원회의 목표라고 말한다.

“연등회가 한국의 대표 문화로서 더 많이 알려지고 더 오래 유지되길 바랍니다. 종교 행사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문화로 만들어 가는 게 꿈입니다.”

근로자의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날(15일) 등 5월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챙겨야 할 일이 많은 시기다. 그런 달에 열리는 행사이니만큼 연등회보존위원회에서는 전 연령이 더불어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19연등회. 밤하늘을 수놓을 수많은 불빛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그들이 내뿜는 즐거운 웃음과 함성이 벌써부터 눈가와 귓가에 아른댄다.            

연등회 홈페이지 www.ll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