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과 동물이야기] 사랑이, 멍순이, 멍돌이, 점돌이, 멍청이, 안 멍청이

여섯 마리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백 가지 즐거움

2019-03-27     조혜영

모처럼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었다. 며칠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을 이정표 삼아 강원도 홍천 백락사로 향했다. ‘주음치리’라는 낯선 지명의 표지판을 따라 몇 분을 더 달려 백락사(百樂寺)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정말 백 가지 즐거움이 있는 사찰일까(백락사 홈페이지 주소가 www.100-happy.org라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아마 그 백 가지 가운데 하나는 분명 고양이일 것이다. 그렇다. 백락사에는 고양이가 산다. 성민 스님과 함께 살고 있는 백락사의 여섯 마리 고양이는 TV에도 소개된 적 있는 유명 인사다.

기대감을 안고 작은 다리를 건너 절 입구에 막 다다르자 대웅전 앞에서 작고 하얀 동물 하나가 반기듯 뛰어왔다. 순식간에 대웅전 앞 계단을 내려와서는 낯선 방문객 앞에서 배를 보이며 드러눕기까지 했다. 하는 짓을 보고는 처음엔 강아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고양이였다. ‘이건 내가 알던 고양이가 아닌데? 고양이라면 낯선 방문객 따위 오거나 말거나 도도하고 기품 있게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혹시 말로만 듣던 개냥이?’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오고 가는 사이 성민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아!” 자신의 이름을 듣고 강아지를 닮은 고양이가 스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이름이 청이? 효심 많은 고양이인가?’

“하도 멍청해서 이름을 멍청이로 지었어요. 부를 때는 그냥 ‘청아!’라고 불러요. 원래 동물들이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하기 마련인데, 처음 보는 기자님을 반기는 걸 보니 기자님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청이가 사람 관상을 볼 줄 알거든요.”

사람 관상을 볼 줄 아는 고양이라니, 그렇다면 이름을 잘못 지어준 게 아닐까. 멍청이가 아니라 ‘똑똑이’ 같은 이름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관상 좋은 사람으로 고양이에게 합격점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백락사 고양이와의 첫 만남, 시작이 괜찮다.

그림: 봉현

우연, 그리고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

백락사 고양이를 소개하면 이렇다(주지이신 성민 스님 소개도 하기 전에 고양이부터 소개하자니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차피 오늘의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닌가!). 백락사의 최고참 고양이 사랑이(7세 ♀), 까칠한 성격에 수컷 고양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멍순이(5세 ♀), 순하고 차분한 멍돌이(5세 ♂), 나 홀로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점돌이(4세 ♂), 자신이 강아지인 줄 착각하는 멍청이(2세 ♂). 이렇게 다섯 마리 고양이가 성민 스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새 식구가 하나 늘었다. 작년 10월에 태어난 안(1세 ♀)이다.

“멍순이가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낳았어요. 네 마리는 신도들에게 분양하고, 아쉬운 마음에 한 마리를 더 키우게 됐죠. 그런데 얘가 멍청이보다 더 멍청한 거예요. 오라면 가고, 가라면 오고…. 그래서 멍청하지 말란 뜻으로 이름을 ‘안 멍청이’라 지었죠. 줄여서 ‘안’이라고 불러요.”

멍청이와 똑같이 곱고 하얀 털을 가진 막내 안이는 낯선 객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님이 아무리 불러도 이내 계단 아래로 숨어버렸다. 이렇게 여섯 마리 고양이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지만, 엄연히 족보를 따지자면 사랑이가 다른 고양이들의 고조할머니쯤 된다고 한다.

“오래전,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고양이 이름도 사랑이었어요. 근처 시장에 과일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인연이 되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죠. 이름을 사랑이라고 짓고 정을 주며 키웠는데 제가 한 달 정도 외국에 가 있는 사이, 그만 사랑이가 극락에 갔다며 전화가 걸려왔어요. 절 앞 도로에서 차에 치였던 모양이에요. 제가 없는 동안 떠나게 돼서 많이 안타까웠죠.”

그렇게 첫 번째 사랑이를 극락으로 보내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성민 스님은 방 앞에서 뜻밖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방문을 열어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 젖을 막 뗐을 법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문 앞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나중에 한 신도님이 그 고양이를 보더니 자신이 방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갑자기 없어져서 어디 갔나 했더니 백락사에 있다고. 그 신도님 집에서 백락사까지 6km나 떨어진 거리인데, 새끼 고양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신기하죠.”

성민 스님은 그렇게 인연이 된 새끼 고양이에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문득 얼마 전 보았던 <베일리 어게인>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몇 번의 환생을 거쳐 처음의 주인을 다시 만난 ‘베일리’라는 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어쩌면 먼 길을 달려 백락사를 찾아온 새끼 고양이도 첫 번째 사랑이의 환생이 아니었을까(현재 백락사의 최고참 고양이 사랑이는 세 번째 사랑이다).

그곳이 어디든 함께라면 복된 자리

배가 불룩한 사랑이와 멍순이는 현재 임신 중이란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꼬물거리는 새끼 고양이들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백락사 고양이는 신도들에게도 인기가 많은데, 임신한 고양이를 위해 곰국을 끓여다 주는 신도들도 있을 정도다. 마침 초하루 법회가 있던 날이라 신도 몇 분들과 차담이 이어졌다. 맷돌로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시는 성민 스님의 솜씨가 전문 바리스타 못지않았다. 쌉싸름하면서 고소한 커피 맛도 일품이었다. 맑은 풍경 소리가 들려오는 고요한 사찰, 그곳에서 맷돌을 돌려 커피를 내리는 스님, 그리고 고양이. 멋진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질 것 같은 상상에 빠져있는 찰나에 보살님 한 분이 휴대폰 사진을 성민 스님께 보여드리며 말을 건넸다.

“스님, 이것 좀 보세요. 그때 분양받은 새끼 고양이가 지금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왕 대접받으며 삽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백락사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아 보살님의 동생이 키우고 있는데, 동생네 부부가 108배를 하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끝날 때까지 그 앞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있는단다. 아마도 그 고양이는 부잣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모양이다.

“스님, 그런데 말이에요.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고양이가 복 받은 겁니까? 아니면 여기 백락사에 사는 고양이가 복 받은 겁니까?” 보살님의 촌철살인 같은 질문에 귀가 쫑긋해졌다. 성민 스님의 대답이 궁금했다. “거기도 복 받은 거고, 여기도 복 받은 거죠.” 스님의 현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루에 한 번 성민 스님은 고양이들과 뒷산에 오른다고 한다. 산책을 준비하며 스님이 고양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마리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혹시 방문객과 함께 하는 산책은 내키지 않는 걸까. 괜히 스님과 고양이들의 오붓한 산책을 방해한 건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게 당연한 건데, 30년 한 곳에 살다 보니까 지치기도 하고 여태 난 뭐하며 살았나 싶으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듭니다. 특히 봄에 밭에서 혼자 일할 때 멍청이가 발밑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재롱을 떨어주면 노동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아요.”

성민 스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겉으로는 표현을 아끼는 것 같아도 고양이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밝아지는 스님의 모습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그림: 봉현

하나가 즐거우면 백 가지가 즐거운 법

요즘 반려묘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지만 그와 함께 펫로스(pet loss)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고양이들과 TV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보고는 어떤 분이 찾아오셨더라고요.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는데, 절에 고양이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등을 달아줄 수 있냐면서. 그래서 달아드렸죠. 요즘 세상 살기가 많이 삭막하잖아요. 눈물도 메마르고…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듯이 동물을 키우면서 정도 들고 눈물도 흘려보고, 슬픔과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인생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에게 사랑을 줘본 사람은 사람에게도 함부로 못 합니다. 자비심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스님과 뒷산에 오르는데 나무들 사이에 마치 자연의 일부분처럼 전시되어 있는 미술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백락사에서는 2006년부터 매년 강원환경설치미술제가 열리는데 그때 전시되었던 작품들이었다. 역시나 그 이름만큼이나 백락사에는 즐거움이 많다.

“처음에 절을 짓고 백락사로 이름을 붙이고 나서 혼자 뿌듯했어요. 절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러다 해미읍성을 지나는 길에 표지판을 봤는데, ‘일락사(一樂寺)’라는 절 이름이 딱 보이는 거예요.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나가 즐거우면 다 즐거운 건데, 나는 백 가지나 찾고 있었구나.”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니 그제야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밥을 먹을 시간이란다. 

“이것 좀 보세요. 우리 사랑이는 대답해 보라면 ‘야옹’하는데, 멍청이는 불러도 대답도 못해요.” 역시나 고양이 얘기에 성민 스님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스님의 일락(一樂)이 마치 백락(百樂)처럼 느껴졌다.                                              
조혜영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추계예술대 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 BBS불교방송 및 KBS 라디오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며, 대학에서 영화,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