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티베트불교는 어떻게 미국 엘리트 사회를 사로잡았나?

2019-03-27     이종복

티베트불교의 힘은 달라이 라마의 개인적인 훌륭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보이는 이들 수백 명의 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카리스마, 깊은 수행과 학식, 자비심, 그리고 유연함이야말로 티베트불교가 가진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티베트불교가 어떻게 미국 사회를 사로잡았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좀 막막하다. 미국 땅이 워낙에 넓은데다 미국에 와서 17년 동안 제일 오랜 시간을 보아온 것이 도서관 책상인 내가 그 질문에 명료한 답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막막한 마음에 지도교수님이자 멘토인, 버지니아대학교 종교학과 인도티베트 분야 명예교수이자 달라이 라마의 통역사로 10년간 일하신 제프리 홉킨스 선생님과 잠깐 통화를 했다. 간단하게 왜 미국에서 티베트불교가 인기가 있는가라고 묻자 잠시 생각하시더니 “나도 모르겠는데?”라고 답하셨다. 미국 티베트 불교학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모른다고 하니 사실 내가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문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고는 우선 리차드 H. 시거(Richard H. Seager)가 말한 미국에 티베트불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세 가지 힘을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학의 1세대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제프리 홉킨스와 로버트 써먼이 티베트불교를 접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필자가 지금까지 현지에서 보고 느끼는 티베트불교의 강점 및 변화에 대해서 주마간산 격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

|    한결같은 달라이 라마의 카리스마
시거는 그의 책 『미국 불교(Buddhism in America)』에서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략 이후로 세 가지 힘이 티베트불교의 미국 전파에 힘을 주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중국의 티베트 무력 침공, 대량학살 및 점령에 대항하는 자유 티베트(Free Tibet) 운동이다. 중국의 반인권적인 행위는 종교를 떠나 미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인권운동에 관심이 있던 영화계 및 유명 인사들의 관심을 받으며 미국의 주류사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두 번째는 동서양의 불교학자들 및 번역가들이 티베트의 불교 서적을 번역하고 전파했다. 시거에 따르면, 이 역시 중국이 티베트 지혜의 보고를 언제라도 파괴할 수 있다는 급박함이 한몫을 했다고 한다. 세 번째 힘은 1960년대부터 라마와 린뽀체들을 따르는 신도들이 만들기 시작해 미국 전역에 설립된 수행 센터라고 한다. 티베트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대중의 지대한 문화적, 지적 호기심 역시 한몫을 했다고 분석한다.

시거는 티베트불교에 대한 미국 주류 사회의 관심은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한 제14대 달라이 라마(뗀진갸쵸, 1933~)의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달라이 라마의 헌신적인 노력, 깊은 지식과 통찰력, 역경 속에서도 빛을 내는 유머 감각 등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을 뿐더러 단 한 번도 굽히지 않은 비폭력적 정신은 인도를 독립으로 이끈 마하뜨마 간디와 비견되며 미국 주류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1973년 첫 유럽 순방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만났다. 그리고 1979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1989년에 달라이 라마의 한결같은 비폭력적 모습이 노벨평화상으로 이어지며 큰 주목을 받게 된다. 달라이 라마가 1989년 2주에 걸쳐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종파와 인종을 막론한 모든 이들에게 깔라짜끄라 입문식●을 행했으며, 그 당시 많은 의사, 과학자, 그리고 철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불교에서의 인간관, 그리고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그의 지속적인 노력은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 단체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1990년대 말에는 할리우드에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이 연출한 『쿤둔(Kundun)』 등 달라이 라마의 일대기가 영화로 나오며 더욱더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이자 티베트불교 신자인 리차드 기어의 1999년 인터뷰는 그가 어떻게 티베트불교에 매료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철학적 관심으로 에반스 웬츠가 처음 서구에 소개한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고 불교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일본 임제종과 연을 맺었으나 몇 년 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배우인 리차드 기어에게 그 자신과 배역의 감정 사이의 괴리를 지적했다고 한다. 리차드 기어는 “그(달라이 라마)는 내 눈을 깊이 바라보고는 웃기 시작하셨다. 히스테리컬하게 말이다. 그는 감정이 실재한다고 믿는 내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달라이 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에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우연한 것이며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설한다. 우울하고 기쁜 감정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가 실재로 착각하는 것이다.) 리차드 기어는 이때의 경험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달라이 라마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는 깊은 수행에서 나오는 허상을 뚫는 지혜와 겸손함, 그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비로움에 있다.

|    스승과 제자들이 쌓아 올린 지적 토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몇몇 조계종 큰스님들을 비롯해 많은 스님들이 달라이 라마만이 티베트불교가 미국에서 각광받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나만 뛰어나면 된다는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지극히 단순한 분석에 불과하다. 달라이 라마 한 분의 개인적인 카리스마, 학식과 인품의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시거가 두 번째의 힘이라고 말한 불교학자들 및 번역가의 활발한 티베트불교 서적 번역 및 보급 역시 티베트불교가 미국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티베트불교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과 많은 서적들이 발간된 배경으로 시거는 1960년대 미국으로 건너온 많은 티베트불교의 라마, 즉 스승들의 역할을 들고 있다. 써먼과 홉킨스를 배출한 게쉐●● 왕겔 스님이 그랬듯이, 많은 티베트불교의 스승들은 그의 미국인 제자들에게 센터에 머물기보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것을 권하였고, 그 결과 티베트불교를 전공하는 많은 학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의 1세대 불교학자 가운데 잘 알려진 두 인물이라면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였던 로버트 써먼과 버지니아대학교 명예교수 제프리 홉킨스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로버트 써먼과 제프리 홉킨스 모두 칼미크 공화국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게쉐 왕겔 스님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삶이 힘들 때 우연히 뉴저지 워싱턴에 있는 티베탄 부디스트 러닝 센터(Tibetan Buddhist Learning Center)를 찾았고 그곳에서 게쉐 왕겔 스님을 만났다. 써먼은 홉킨스와 함께 1960년대 초 왕겔 스님에게 배운 뒤 1960년대 중반 출가, 티베트 승가의 구족계를 받은 최초의 서양인이 되었다가 몇 년 뒤 환속하여 앰허스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후에 컬럼비아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학들을 양성했다. 한국에서는 영화 『킬빌』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우마 써먼이 그의 딸이다. 써먼은 티베트를 “깨달음의 공장”으로, 티베트 스님들을 “깨달음의 엔진”이라고 부르는 등 파격적이고 미국인들에게 단박에 와닿는 생각들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현재 뉴욕의 많은 티베트불교 센터, 특히 달라이 라마의 요청으로 리처드 기어와 함께 세웠다는 티베트 하우스는 써먼이 만든 것이다. 필자가 듣기로, 써먼은 유창한 언변과 카리스마로 많은 유명 인사들을 티베트불교로 이끌었다고 한다.

홉킨스는 몇 년간 왕겔 스님에게 배운 뒤 여러 티베트 라마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위스콘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부터 버지니아대학교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는 달라이 라마 통역사로 활동하며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홉킨스는 버지니아대학교를 티베트불교의 메카로 만들었다. 그는 79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UMA Institute for Tibetan Studies(uma-tibet.org)를 만들어 지금도 필자를 포함한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데풍 고망 사원의 교과서를 영역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학계에서, 강단에서, 티베트불교 센터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게쉐 마이클 로쉬의 Asian Classics Input Project(www.asianclassics.org)가 티베트 삼부인 깡귤[경과 율], 뗑귤[론]을 전산화시켜 티베트불교뿐만 아니라 티베트 문헌의 효용성을 높였으며, 지금도 그의 제자들이 끊임없이 티베트 문헌을 번역해 내고 있다. 또한 고(故) E. 진 스미스(E. Gene Smith, 1936~2010)가 설립한 Tibetan Buddhist Resorce Center(TBRC, tbrc.org)는 각처에 흩어져 있는 티베트 문헌을 모아 스캔하여 보관하고 있어 티베트불교에 관심 있는 많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티베트인들에게도 중요한 곳이 되었다. 여기에 위즈덤, 샴발라, 스노우 라이언을 비롯해 많은 출판사들이 끊임없이 티베트불교의 역사, 문화, 수행법에 대한 책을 매년 발행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인 뒷받침은 티베트불교가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저력이 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 티베트불교의 힘은 달라이 라마의 개인적인 훌륭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시거는 세 번째 힘으로 수많은 티베트불교 센터의 네트워크를 들고 있다. 4대 종파인 겔룩빠, 까규빠, 사꺄빠, 닝마빠의 많은 훌륭한 라마, 즉 스승들을 따르는 많은 신도들이 스스로 센터를 만들어 스승을 초대하여 가르침을 듣고 수행을 한다. 또한 각 종파마다 철학적인 견해가 달라 이를 두고 서로 비판하더라도 서로의 인격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보이는 이들 수백 명의 라마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카리스마, 깊은 수행과 학식, 그리고 자비심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티베트불교의 견고한 토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켄쩨 파운데이션 같은 곳에서는 자신들의 기금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공부하고자 하지만 사정이 안 되는 전 세계 학자들에게 인종과 지역에 상관없이 연구비를 주어 티베트불교를 뒷받침하도록 하고 있다.

|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
필자가 미국에 있으면서 느끼는 티베트불교의 힘은 유연함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달라이 라마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수많은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해 심오한 대답과 해법을 제시해 왔다. 1983년부터 미국의 기업가 R. 애덤 잉글은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의 대화를 주선해왔는데, 1991년 신경과학자 프랜시스코 발레라(1946~2001)와 함께 마인드앤라이프(마음과 삶)이라는 재단을 설립해 과학자들과 티베트불교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서구 세계는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자 기본 수행법인 명상과 자비로운 마음이 어떻게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고, 종교를 넘어 일단 대중이 명상과 자비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달라이 라마는 종종 “나의 종교는 자비이다.”라고 말하며 종교를 넘어 인류의 행복을 말한다. 또한 “불교와 과학이 만났을 때 과학이 옳다면 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티베트불교에는 역사적으로 비구니 승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샨따락쉬따가 티베트에 승단을 세울 때 비구니 구족계 승단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서양에서 출가하는 여성들은 티베트 승단에서 사미니계까지밖에 받을 수 없었고, 겔룩빠에서 승가 교육을 20년 이상 공부하고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쉐 자격 역시 비구들에게 한정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서구 사회의 불만을 수용한 달라이 라마는 1970년대부터 비구니 교육과 승단에 관심을 가지도록 했으며, 비구 승단의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다. 그 결과 2016년 12월 말, 문드가드에 있는 장춥최링 비구니 승원에서 최종 시험을 거쳐 티베트 역사상 최초로 겔룩빠 최고 학승 지위인 게쉐마●●●를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그 역사적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데, 게쉐 스님들은 게쉐마들의 날카로운 논리와 토론, 깊은 지식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또한 2017년 여름에 라싸에 들렀을 때, 필자의 스승 역시 게쉐마의 탄생에 대해 무척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티베트불교는 자신의 전통을 지키는 것에만 급급하지 않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유연함이 라마들을 비롯해 많은 스님들의 깊고 넓은 지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오랜 수행을 바탕으로 한 깊은 지혜, 거기에서 비롯되는 유연함이야말로 티베트불교가 가진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유연한 자세로 대중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불교를 알리고 전하려 했던 노력이야말로 오늘날 미국 사회에 티베트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한다.                             


●       깔라짜끄라 입문식: 밀교, 혹은 딴뜨라 중 상위 딴뜨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입문식을 거쳐야 한다. 이 가운데 깔라짜끄라 입문식은 깔라짜끄라(시륜) 딴뜨라 수행을 하기 위한 입문식으로 달라이 라마는 매년 초에 보드가야에서 대중을 위한 깔라짜끄라 입문식을 거행하신다.
●●     게쉐: 겔룩빠 학승의 최고 지위. 20년이 넘는 학습을 거쳐 최종 시험을 통과한 학승을 게쉐라고 한다.
●●●   게쉐마: 게쉐의 여성형 호칭이다.

이종복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에 입학, 제프리 홉킨스 교수와 데이비드 저마노 교수 아래서 티베트불교를 연구하고 2013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탁턴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서로 『달라이 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 『미국 UCLA 명상수업』, 『달라이 라마, 명상을 말하다』, 『감정 구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