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을 얻는 방법

빛의샘, 고마운 사람들에게

2007-09-15     관리자

벌써 겨울의 문턱에 접어든 모양이다.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며 코끝을 저려온다. 이맘때가 되면 따뜻한 구들목이 그리워지고 이웃끼리의 훈훈한 인정이 필요할 때다. 그런데 출·퇴근길 전철칸에서 짬짬이 읽는 신문기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전직대통령 비자금 문제로 재계총수들의 검은 돈에 관련한 소환이 이어지고 전·현직 정치인들의 진흙창 싸움으로 국민들의 꽁꽁 얼어붙어 있는 마음은 허무감으로 더 팽배해지고 있다.
지면 한켠에는 몇백만원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목숨을 스스로 끊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면서도 내면은 온갖 더러운 추행을 일삼으며 위선을 떠는 무리들의 기사가 실려있다. 일부러 세상의 더러움만 모아서 방송하고 기사화하나 싶을 정도이다. 참으로 무뎌지고 얼어붙은 우리들 마음을 녹여 줄 따뜻함이 귀한 이때 한 너그러운 사랑을 가진 분이 있기에 그분을 기억하는 일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하다.
두 달 전 초순 때쯤이다. 개인적인 일로 해서 고등학교 스승을 찾아 뵐 기회가 있었다. 학창시절 기억으로는 아주 무섭고 엄하셨지만 빈틈이 없으시고 박학하신 분으로만 알아왔었는데 막상 뵙고 보니 그야말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지성이셨다.
고등학교 교사로는 6∼7년 전 정년퇴임하셨지만 건강하시고, 활기찬 말씀이나 행동은 도시생활의 이기적이고 나약한 젊은이를 주눅들게 하셨고 깊은 감명을 주셨다.
한림학교 생활 22년 째를 꿋꿋이 지켜오신 것은 그분의 신념이셨다. 한림학교는 경주지역을 기반으로 73년에 설립된 야간학교로서 초기에 현역교사, 지식인,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했으나 재정상의 어려움과 장소 등의 문제로 전전하다가 과외의 합법화로 현역교사, 대학생들이 많이 그만둬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종룡 선생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슬기롭게 극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매년 20∼25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현재 총 졸업생 수는 600여 명에 이르며 교육 과정은 초·중·고졸 검정고시 반으로 구성 되어 있다. 연령층도 10∼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현재 뜻있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활성화되어 JC 청년회의소를 교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교재비, 수업료 등은 무료이다. 오히려 검정고시 합격자에게 장학금까지 지급하고 있으며 지금은 현직 교사가 주축이 되어 운영 중이다.
"배움의 기회를 제때에 가지지 못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신념은 나를 지켜온 크나큰 버팀목이었다."라고 이야기하시는 말씀에는 참으로 따뜻함과 신념이 배어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은 마침 야유회 날이었는데 비가 와서 교실에서 모두 윷놀이 중이었다. 누가 학생인지 선생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기야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30이 넘으니 납득이 갈 만하다.
함께 어우러져 벌이는 윷판 가운데 피어나는 웃음꽃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삶의 생동감, 삶의 가치였다. 그분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기 버림의 가르침은 사회를 밝게 아름답게 하고 존중과 신의와 웃음의 꽃을 피우고 또 피웠었다. 50 가까이 된 아주머니가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즐거워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학생, 교사 모두의 승리의 눈물이었다.
한림학교의 학생들은 삶의 지혜와 삶의 기쁨을 얻는 방법을 세상에 제시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력, 재력, 미모보다 초지일관된 신념과 용기 열정이 더 가치있음을 일깨워고 희망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사회는 자성하고 변해야 한다. 자기 희생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그런 사람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말이다.

조규본 님은 67년 생으로 한국항공대학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시스템 운영부에 근무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정귀혜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