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 ‘단순함의 미학’

2019-02-26     유권준

●    얼마 전 취재차 해남 미황사에 들렀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아침공양을 했다. 외국인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있어서인지, 토스트와 간단한 샐러드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침공양의 백미는 단연 떡국이었다. 얼핏 보기에 희멀건 국물에 담긴 떡이 전부인 떡국이었다. 하지만, 맛은 달랐다. 자리를 함께했던 사진작가 이갑철 선생은 “이런 떡국은 처음 맛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식사를 마치고, 공양간에 들러 떡국의 비법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다시마 우린 국물에 잣을 갈아 넣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했을 뿐이라는 대답이었다. 레시피는 단순함 그 자체였다.

●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을 함께 했던 켄 시걸은 그의 책 『미친 듯이 심플』에서 단순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설명했다. 그는 ‘심플’해지기 위해 냉혹할 정도로 솔직해 져야 하고, 최소로 생각해야 하며, 상징을 알아야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뒤집어 보고, 의심하고, 대세를 좇지 말고, 단순해 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채우기보다 덜어내고, ‘심플’해지기 위해 ‘복잡’해져야 한다는 역설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진 것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팟이었다. 단순함을 칭송하는 동서양의 격언은 셀 수 없이 많다. ‘단순함이야말로 궁극의 세련됨’(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도 그중 하나다. 노자의 도덕경 45장에 나오는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졸렬해 보일 수 있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도 동양적 사유로 풀어낸 단순함의 미학이다.

●    단순함을 칭송하는 말이 이처럼 많은 것은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일 게다. 관계가 얽히고, 셈법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집중한다. 대중미디어가 보여주는 화려한 세계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끝없이 무언가를 채우라 말하는 것 같다. 욕망의 과잉을 조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허기를 느끼는 모순에 빠진다. 몸은 기름진 포만감에 젖지만, 마음의 허기는 갈수록 더한다. 단순함을 찾게 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붓다가 설한 가르침은 응병여약應病與藥이요,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백미다. 붓다는 눈앞의 욕망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삶에 고통을 주고 있는 독화살을 뽑는 것이 우선이라는 단순한 비유를 든다. 빈 곳을 채우려 하지 말고, 차고 넘치는 것을 비우라 말한다. 모든 고통은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되므로 그것을 버리라 한다.   

●    미황사를 다녀오는 길에 해방촌에 새로 문을 연 사찰음식점 ‘소식’을 들렀다. 젊은이들이 문을 연 사찰음식 전문식당이다. 식당이라고 해야 예닐곱 명이 앉으면 만석이 되는 좁은 공간. 이들은 자신들의 음식철학을 동물권 보호와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자발적으로 육식을 피하고, 음식에 담기는 의미를 더 중요하게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음식을 시켜 맛을 보았다. 재료는 단순했다. 말린 당근, 두부, 흑보리, 채소와 버섯. 재료는 단순했지만, 정성이 깃든 맛이었다. 화려한 양념보다 재료에 담긴 성질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무언가 더하기보다, 재료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식당 앞에는 추운 겨울 길냥이들을 위해 준비한 작은 식탁도 마련했다. 살아 있는 어떤 존재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씀씀이다. 해방촌 작은 음식점 ‘소식’에서 미황사 떡국이 가진 단순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이야기도 없다. 대신 젊은 그들만의 언어와 삶의 태도가 음식을 빛나게 했다. 꽃피는 3월이면 해방촌 사찰음식점 ‘소식’을 들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