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번뇌를 홀홀히 보내는 제야의 종소리

불교세시풍속

2007-09-15     관리자

12월의 세시(歲時)
세월이 물 흐르듯 한다더니 어언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정월 세시풍속을 쓴 것이 엊그제만 같은데......
세시풍속의 기본이 되었던 음력으로 치면 이달은 11월이요, 한 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은 다음 해로 넘어가는 것이나 본디의 세시를 가늠하기 위하여 이번 호에서 '동지' '섣달'을 함께 살펴 보고자 한다.
흔히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 하고 12월을 '섣달'이라 한다.
'하지'가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데 '동지'는 그와 반대로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를 '작은 설〔아세〕'이라고도 함은 옛날에는 동지를 '설'로 삼은데서 나온 말이니 민간에서는 지금도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 한다.
그래서 동짓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팥죽을 쑤었었다. 팥을 삶아 으깨거나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 찹쌀로 단자를 새알만큼씩 만들어 넣고 죽을 쑨다. 이 단자를 '새알심'이라 한다.
동지 팥죽은 먼저 조상께 차례를 올린 다음 방·마루·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으며, 대문이나 벽에다 수저로 뿌리고 난 후에 먹는다.
붉은 빛의 팥죽이 잡귀 귀신을 물리친다는 데서 이어져 오는 구습이다.
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는 동지를 전후하여 팔관회(八關會)를 올렸음을 기록에서 알 수가 있다.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가 바로 그것이다.
팔관회는 대중이 모여 '팔계'를 다짐하는 겸허한 자리이다.
팔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살생하지 말 것.
둘째, 도둑질하지 말 것.
셋째, 사음하지 말 것.
넷째, 거짓말하지 말 것.
다섯째, 취하는 것을 먹지 말 것.
여섯째, 꽃이나 향이나 몸을 치장하지 말 것이며, 춤추고 노래하는 곳에 가지 말 것.
일곱째, 호화로운 평상에 앉지 말 것.
여덟째, 때 아닐 때 먹지 말 것.
한 계 한 계를 되새기며 오늘의 우리네 처신을 돌이켜 반성하게 된다.
한편 동지 후에 맞는 경신일(庚申日)에는 경신수야(庚申守夜)라 하여 잠을 자지 않고 징을 치며 불경을 외웠었다. 이는 도교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나 뒤에는 불교에서 더욱 지켜졌다. 이는 동지를 설로 삼았던 시절의 유습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시절 음식으로는 먼저 월동용으로 담근 온갖 김치를 꼽아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동치미를 치니 시원한 냉면을 마는 데 제격이다. 추운 겨울에 따끈한 온돌방에서 먹는 냉면은 별미 중의 별미이다. 옛날에는 주로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즐겼는데 지금은 전국적인 시절음식이 되었다.
곶감과 꿀물과 계피가루로 만드는 수정과도 역시 영하의 추운 계절에 마시는 별미이다.
생선으로는 동태찌개가 얼큰하고 구수해서 맛도 맛이려니와 추위를 이기는 데는 으뜸이었다.
양력으로 12월 10일이 지장재일, 16일이 관음재일, 22일은 동지이다.

달력의 옛 이름은 책력(冊曆)
'여름 부채요, 겨울 달력(夏扁冬曆)'이란 말이 있듯이 겨울의 선물로는 책력을 꼽았다.
옛날, 관상감(觀象監)에서 동짓날에 다음 해의 책력을 만들어 나라에 올리면 나라에서는 백관(百官)에 나누어 주었다. 책력은 일년 동안의 절후가 모두 명시되어 있어 일상생활에 긴요하게 쓰이니 필수품의 하나였다.
지금도 연말이면 달력을 주고 받는 가운데 달력장사들은 길거리에까지 울긋 불긋한 그림달력을 걸어 놓고 제철을 놓칠세라 손님을 부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특히 근년에 들어 '불교 달력'이 눈에 많이 띄게 되었음은 불자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천지신명께 지난 한 해를 고하는 제사-납향(臘享)
동지로 부터 세 번째의 미일(未日)인 납일에 지난 한 해의 됨됨이를 신에게 고하는 제사를 '납향'이라 한다.
납일 밤에 농촌에서는 새잡기를 한다. 이 날의 새고기는 맛이 있을 뿐 아니라 아이가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 했다.
또 납일에 내린 눈은 약이 된다 해서 곱게 받아 독에 담아 두었다가 약을 다릴 때 쓰기도 하고 눈을 씻으면 안질이 없고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옛 내의원(內醫院)에서 이 날 만든 약을 '납약'이라 한다. 내의원의 납약으로는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데 쓰는 청심환(淸心丸), 열을 다스리는 데 안신환(安神丸), 곽란을 다스리는 데 소합환(蘇合丸)이 유명했다. '납향 제사'는 나라에서도 지냈는데 산돼지를 제물로 쓰니 미리 포수들이 잡아 진상을 했었다.

묵은 세배
일 년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에는 아침 일찍부터 집집마다 대청소를 한다.
묵은 해의 때묻은 먼지를 홀홀히 털어내는 가운데 잡귀 잡신까지 몰아내어 정갈한 새해를 맞고자 함이다.
옛날에는 나라에서도 관상감으로 하여금 대궐 뜰에 끼었을 귀신을 쫓는 대나(大儺)를 열었음은 같은 맥락이라 하였다.
특히 섣달 그믐에 지난 해도 무사하고 보람되게 지냈음에 감사하며 어른께 절을 올리니 이를 '묵은 세배'라 한다.
"저 사람은 '묵은 세배'도 모르면서 '세배'는 잘해!" 하는 말씀에서 하나 하나를 반듯이 매듭짓고, 새로 시작했던 조상 대대의 법도를 깨우치게 된다.

수세(守歲)와 제야(除夜)의 종소리
섣달 그믐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한다. 어찌 새해를 맞는 이 밤에 쿨쿨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어린이들은 민속놀이를 하며 어른들께서는 내일 새벽의 차례준비와 새해의 설계로 뜬 눈으로 지새우게 된다.
양력 12월 31일 밤 자정을 기해서 서울 종로의 보신각에서는 33번의 종을 친다. 그런데 절에서 치는 제야의 종은 108번이다.
33번도 실은 불교의 33천에서 유래된 것이니 33개의 하늘을 말하며 일명 '도리천'이라 한다.
108번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인식하는 번뇌의 숫자인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모두가 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옷깃을 여미며 제야의 종소리를 온몸으로 맞이하자. '백팔번뇌'가 백팔복락으로 되고, '삼십삼천'의 기쁨이 온 누리에 고루 점지하게 되기를….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정귀혜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