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울에서 발견하는 만해의 발자취

[특집] 만해를 다시 보다

2019-02-26     김우진
사진 : 최배문

 

 

망우리 공동묘지

1944년 6월 29일 성북동의 심우장尋牛莊에서 중풍으로 입적.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미아리 사설 화장장에서 다비된 뒤 망우리 공동묘지에 유골이 안치되었다. 사진 우측이 만해 스님의 묘, 좌측은 부인 유씨.

사진 :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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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배문

동국대학교

1906년 동대문 밖 과거 원흥사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불교 학교인 명진학교(동국대학교의 전신)가 문을 열었고, 불교계 고급 인재들이 앞다퉈 입학했다. 만해는 1기 졸업생이다.

사진 :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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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1933년 성북동 언덕 마을에 집을 지었다.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북향의 집이다.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기에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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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배문

서대문 형무소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탑골공원에서 조선총독부 경무국 순사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3년 간 수감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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