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분노, 스트레스, 짜증, 인색, 후회.

2019-02-26     일묵 스님

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잘 알고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많은 화에 휩쓸리며 살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그것이 화인지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화를 내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랜 시간 습관화된 화는 자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처럼 화는 빨리 알아차리면 적은 노력으로도 치유할 수 있지만, 모르고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매우 거친 형태의 화 중 대표적인 것이 분노입니다. 물리적이거나 신체적인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적인 폭력도 마음속의 분노가 행동이나 말로 표출된 것입니다. 분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거나 호흡이 거칠어지는 등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화라고 알기가 쉽습니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화가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외래어가 스트레스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아갑니다. 스트레스는 자꾸 쌓이다 보면 몸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요즘에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스트레스 또한 화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누군가가 마음에 거슬릴 때 내는 짜증도 화의 하나로 봐야 합니다. 가벼운 화이기는 하지만 이런 짜증도 화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남이 잘되었을 때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기하는 질투의 마음도 화이고,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지 않고 자기만 거머쥐고 있으려는 인색한 마음도 일종의 화입니다. 질투가 타인의 성공을 싫어하는 심리 현상이라면 인색은 자기의 성공을 남과 나누지 않으려 하는 심리현상입니다. 그래서 인색은 보시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네 과위 중 첫 단계인 수다원만 되어도 질투와 인색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목숨을 바쳐 익힌 법들이라 하더라도 묻는 것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다 가르쳐 주고 대답해 줍니다. 질투나 인색도 화의 한 형태라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화의 또 다른 형태는 후회입니다. 후회는 해야 할 선행을 하지 않았을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불선행을 했을 때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쳤을 때나 사소한 일에 화를 버럭 내고 돌아왔을 때 후회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선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잘못한 일을 참회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못난 인간이야’ 하고 자책하면서 지난 일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자신을 학대합니다.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화입니다. 이처럼 과거를 붙들고 싫어하는 감정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것은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힐 뿐입니다. 또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정신적인 병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후회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을 인정하고 참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된 일이 왜 발생했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숙고하여 지혜를 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불교의 독특한 접근방식 중의 하나가 그릇된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 행위에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원래 잘못된 인간이 있거나 근본적으로 나쁜 마음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마음도 조건의 결합에 의해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눈과 형상이 접촉할 때 눈 의식(안식)이 일어나는 것처럼, 감각 기능과 감각 대상의 접촉에 의해서 마음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눈, 귀, 코, 혀, 몸, 마노(마음)와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마음의 대상)의 접촉에 의해서 눈 의식, 귀 의식, 코 의식, 혀 의식, 몸 의식, 마노 의식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번뇌 또한 해로운 심리현상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은 조건에 의해서 발생하는 현상이지 변하지 않는 실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난 번뇌도 특정한 조건 아래서 발생한 현상으로 실체가 없고 공空하다는 것을 이해하면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묻고 답하기]                       

과거는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습니다 

[질문] 과거의 괴로운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힘이 듭니다.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돼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재 삶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어느 남자 신도님의 경우 아버지가 매우 엄격하여 어릴 적에 무슨 말만 하면 자신을 윽박질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거나 반발을 하면 이내 주눅이 든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초등학교 때 발표를 하다가 선생님께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사람들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텅 빈 듯하고 마음이 위축된다고 합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은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가 버린 과거를 지속적으로 기억하면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실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꾸 떠올리는 것은 마치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것과 같은 것 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실체화해서 자꾸만 반복하고 붙잡으면 또다시 괴로워집니다. 과거의 기억이나 상처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고 실체가 없습니다. 먼저 이것은 허구이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단지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정말 쓸데없는 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참으려고 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거기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묵 스님
서울대 수학과 졸업,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수료한 후 봉암사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미얀마와 플럼빌리지, 유럽과 미국의 영상센터에서도 수행했다. 현재 제따와나 선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