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해방촌 사찰음식점 ‘소식’ 개업한 청춘 3인방

전범선, 안백린, 박연

2019-02-26     유권준

젊음의 거리 해방촌에 사찰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소식’. 소채로 음식을 만들고(蔬),작은 것을 사랑하고(小), 웃을 수 있는(笑) 음식점이라 하여 ‘소식’이다. ‘소식’을 창업한 이들은 전범선, 안백린, 박연 씨. 영국과 미국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유학파 3인은 동물들을 보호하고 환경을 생각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찰음식점을 생각했다. 유쾌하지만 철학이 있고,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 최배문

 

|    레스토랑이지만, 사찰을 지향하는 ‘소식’
똑 똑 똑~. 목탁을 치면 직원이 나와 응대를 한다. ‘소식’은 음식점 이전에 사찰이다(?). 적어도 주인장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종교적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주인장은 스스로를 주지라고 부른다. 입구에는 석등이 놓여있다. 벽에는 소반이 걸려 있다. 바닥은 마루다. 방석을 깔고 앉아 목탁을 치면 주지가 나와 주문을 받는다. 주지이지만 스님은 아니다.

이 독특한 음식점이 문을 연 것은 이제 한 달 남짓. 채식주의자이고, 외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동물권 보호운동을 한다는 청춘 3인이 모여 만든 식당 ‘소식’은 어느 모로 보나 특별하다.

공동대표 전범선 씨는 락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리더다. 이미 음반을 3장이나 냈다. 출판사도 운영한다. 얼마 전에는 대학로의 서점 ‘풀무질’도 인수해 3가지 사업을 함께하고 있다. 셰프를 맡은 안백린 씨는 영국의 더럼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요리를 공부했다. 100군데가 넘는 유럽의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요리를 배웠다. 파리의 야닉 알레노 셰프가 운영하는 ‘알레노 파리오 파빌리옹 르드와양’에서도 근무했다. ‘소식’의 인테리어를 맡아 사찰을 만든 이는 일러스트레이터 박연 씨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은 전범선 씨의 여자 친구가 해방촌에 ‘동물해방물결’이라는 동물권 보호단체를 만들면서부터다. 여자 친구를 통해 박연 씨를 소개받고, 나중에 안백린 씨가 합류했다. 만나보니 모두 채식주의자였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다. 

사진 : 최배문

“이곳이 원래는 옷가게였어요. 사무실을 임대하려고 보니, 바닥이 나무로 된 마루더라고요. 여기서 뭔가 해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전범선)

“우리는 음식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스토리,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생각과 철학도 함께 먹는 것이죠”(안백린)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와보니, 뭔가 이상했어요. 서구화된 카페가 유행인데, 왜 뿌리가 깊고, 가치 있는 문화와 철학은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죠. 가치 있는 생각을 공유해보자는 생각에 사찰음식을 하게 된 거죠”(박연)

불교라는 단어는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는 불교가 가득했다. ‘소식’이 사찰이 되고, 그곳에서 만든 음식이 사찰음식이 되고, 그들이 주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사진 : 최배문
사진 : 최배문

|    소蔬,소小,소笑  ‘소식’
‘소식’에는 세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나물 소蔬, 작을 소小, 웃을 소笑다.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이들답다. 이름은 박연 씨가 지었다. 

“가능한 육식을 삼가고, 적게 먹으며,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자는 의미죠. 지금은 비건Vegan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소식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죠”(전범선)

이들이 만드는 음식의 재료를 보면 이름의 의미가 더 단단해진다. 백미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흑보리, 청차조, 메밀 등과 같이 조금은 생소한 곡물로 밥을 지어 낸다. 장단콩과 호랑이콩 같은 재료도 사용한다. 무농약 당근과 새송이도 주재료다. 소금은 자염만 사용한다. 

“레스토랑 문을 열기 전에 염전 투어를 간 적이 있어요. 천일염부터 자염, 정제염, 구운 소금 등 소금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는 여행이었는데, 자염이 눈에 띄더라고요. 과학적으로만 생각하면 정제염이 가장 깔끔하기는 한데, 자염에 담긴 철학과 과정이 좋았어요. 바다의 내음이 담긴 것도 좋았고요”(전범선)

셰프를 맡은 안백린 씨는 너티즈라는 젊은 채식주의자 단체를 통해 이름을 알려왔다. ‘비건 파티’를 기획하기도 하고 스님을 찾아 전통사찰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천장암의 정관 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어요. 다큐멘터리로 스님을 보고, 찾아 뵀는데, 뜻밖에 간장을 주셔서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납니다”(안백린)

‘소식’의 메뉴는 단출하다. 꼬치와 발우, 그리고 곁들임 후식이 전부다. 꼬치는 나물에 싸인 송이, 당근 말랭이, 두부의 변신 등 8가지다. 발우는 산속, 바닷속, 외강내유 등 5가지, 곁들임은 떡 멜로우 등 3가지다. 모두 안백린 씨가 개발한 메뉴다. 

“사찰음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담백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종종 짭조름하기도 하고, 매콤하기도 해서 맛도 챙기려고 생각합니다.”(안백린)

사찰음식의 정신을 살리되, 대중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좋은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같은 게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음식의 가치를 생각하면서도 맛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음식의 윤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맛을 음미하면서 느끼는 행복감도 중요하거든요. 다만, 그 모두를 생각하고 깨어있으려고 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안백린)

사진 : 최배문

|    “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걸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전범선 씨는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미국의 다트머스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로스쿨을 가려다 진로를 변경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를 마치고,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 먹고,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을 결성했다. 그의 음악에는 반골 기질도 묻어있고, 리버럴 특유의 자유로움도 녹아있다.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 록 싱글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레퍼런스로 만든 곡이다. 2017년에는 통일부가 주최한 유니뮤직레이스에 ‘전선을 가다’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두루미출판사에서 나온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는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로 불린 허정숙의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다. 어찌 보면 과격한 급진주의자의 냄새도 나지만, 속 이야기는 다르다. 

“사상이 싸움을 낳아 어느 한쪽이 사상을 죽이면서 우리 정신이 아주 재미없어졌어요. 저는 좌우의 날개를 크게 펼치고 싶어요. 잊혀진 생각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전범선)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한 번도 출판된 적 없는 책이기 때문에 책을 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장사는 만족스럽게 잘 되느냐고 물었다.

“아직은 열정페이로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망하면 어찌할 것이냐고 물었다.

“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젊은 3인방의 생각은 갇혀 있지 않아 좋았다. 민족주의적 감수성인 듯 하다가도, 국제적 감수성으로 돌아서고, 사찰음식이라는 정체성으로 묶고 나면, 생태와 환경 그리고 철학으로 내닫는다. 파격을 추구하면서도 전통을 생각하고, 윤리를 말하면서도 맛과 경험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 사찰음식인데 사찰음식 같지 않았다. 옆에 앉은 젊은 처녀 총각은 음식을 먹으며 마음챙김 명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이들이 놓아준 집에 길냥이들이 연신 들락거렸다. 해가 지고, 촛불이 일렁거리는 공간에는 테크노음악이 마치 염불소리처럼 또그닥 거렸다. 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