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14. 우팔리 존자 2

이발하다 참선에 든 청년

2019-02-08     이미령

| 이발하다 참선에 든 청년

성불하신 직후 부처님은 고향인 카필라밧투를 방문합니다. 이때 부처님은 참 많은 석가족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불본행집경』에 따르면 어떤 어머니가 앳된 청년을 데리고 부처님을 찾습니다.

“제 아들 우팔리입니다. 이발사지요. 부처님의 머리를 깎아드리고 싶은데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부처님은 당신의 머리를 맡겼습니다.

청년은 이발도구를 들고 공손히 부처님 머리를 깎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우팔리가 머리를 잘 깎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머리를 잘 깎는군요. 그런데 몸을 너무 낮추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우팔리야, 부처님 머리를 깎으면서 몸을 너무 낮추지 말라. 부처님 마음을 어지럽히면 안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우팔리는 선정의 첫 번째 단계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시 아들의 이발 솜씨를 여쭈었고 부처님은 답했습니다.

“잘 깎고 있습니다만, 몸을 너무 곧추세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일렀습니다.

“우팔리야, 몸을 너무 꼿꼿하게 세워서는 안 된다. 부처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이 말을 듣는 순간 우팔리는 선정의 두 번째 단계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시 부처님에게 아들의 이발 솜씨를 여쭈었고 부처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잘 깎고 있습니다. 하지만 숨을 지나치게 들이쉽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를 주었고 그 순간 우팔리는 선정의 세번째 단계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또 여쭈었고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잘 깎고 있습니다. 하지만 숨을 너무 내쉽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우팔리야, 너는 숨을 너무 내쉬지 말라. 부처님 마음을 어지럽히면 안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우팔리는 선정의 네 번째 단계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옆에 있던 제자들에게 일렀습니다.

“그대들은 우팔리 손에서 칼을 받아들어라. 그는 지금 선정에 들었다.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라.”

(『불본행집경』)

당신의 머리에 닿아 있는 칼날의 감촉만으로도 그의 현재 상태를 꿰뚫어 보신 부처님의 능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의 단계를 향상시킨 청년 이발사 우팔리가 더 감동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이발사가 바로 우팔리존자입니다. 경전을 헤아려보자면 그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앳된 청년이었는데 왕조차도 예를 갖추는 부처님의 머리를 깎고 있던 그는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토록 존귀한 분의 머리칼을 깎다가 상처라도 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심정이 충분히 느껴집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조금도 허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그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생의 시간에 수행을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가하기 전에도 참 신중한 성격이었고, 평소에도 홀로 조용히 사색하기를 즐겼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부처님의 예사로운 한 마디 한 마디로 선정의 경지를 깊이 들어갈 수 없었을 테지요.
 

| 흙수저 우팔리의 선택

부처님의 고향방문은 석가족 왕자들에게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대부분이 출가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혔고, 실제로 그들은 출가를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마하나마 왕자 한 사람만 남겨두고 왕자들은 이발사 우팔리를 데리고 성 을 나왔습니다. 왕자들은 우팔리에게 자신들의 화려한 장식품을 떼어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우팔리여, 이 장식품을 네게 주겠다. 가지고 싶으면 다 가져라. 우리에게는 이제 필요 없다. 그리고 성으로 돌아가서 우리 부모님에게 우리를 대신해 출가소식을 알려라.”

평소에는 가까이서 보기도 어려웠던 진귀하고 값비싼 보석이며 장신구들 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 우팔리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평생 돈을 벌지 않고 살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팔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석가족은 핏줄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유달리 강하다. 내가 왕자들의 보 석장신구를 가지고 돌아가면 석가족 사람들은 나를 의심할 것이다. 내가 보석이 탐나서 왕자들을 해친 뒤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석가 족 사람들 손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도저히 성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지요. 왕자들이 맡긴 보석장신구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는 서둘러 왕자들을 뒤따라가서 함께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게 됩니다. 이때 왕자들은 부처님에게 이렇게 요청 하지요.

“세존이시여, 우팔리를 먼저 출가시켜 주십시오. 그가 저희의 선배가 되어 저희 왕자들의 절을 받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석가족의 교만함이 꺾일 것 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발사 우팔리는 왕자들보다 앞서 출가하게 됐고, 신분이 낮 음에도 불구하고 왕자들의 예경을 받게 되자 스스로를 더욱 단속하여 지계제일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화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발사 우팔리는 왕자들이 값비싼 보석 장신구를 자신에게 맡기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저 석가족 왕자들을 좀 보라. 이렇게 값비싼 보석 장신구를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내던지는구나. 그걸 내가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될까. 좋은 가문에 높은 신 분에 산더미 같은 재물을 가진 왕자들도 관직과 재물을 다 버리고 출가하는데, 내가 어찌 출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석가족 왕자들은 금수저입니다. 반면 이발사 우팔리는 흙수저의 전형입니다. 사람들을 금수저니 흙수저니 갈라서 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부모에게서 아무 것도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흙수저들은 죽을 때까지 노력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신분상승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흙수저들은 무엇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까요? 대체로 현재 금수저들이 누리고 있는 환경이 그들의 로망일 것입니다. 금수저들이 사는 곳, 금수저들이 먹는 것, 금수저들이 입는 것, 금수저들이 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 바로 그 모든 것 들을 흙수저인 나도 한번 이뤄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평생 그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다 죽습니다.

이발사 우팔리는 언제나 왕자들의 삶을 곁에서 훔쳐보면서 동경해왔을지도 모릅니다. 전생에 무슨 복을 얼마나 쌓았기에 저들은 이렇게 호화롭게 살아 가고 있는지 무척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토록 부러워했던 저 왕자들이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오직 진리의 길을 걸어가려고 성을 나섰습 니다. 지금까지 우팔리가 부러워했던 것들보다 더 소중한 무엇인가가 저 길 끝에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우팔리도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왕자들 이 헌신짝처럼 버린 것을 받아들고 만족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불본행집경』에 따르면, 왕자들이 자신들의 보석장신구를 이발사 우팔리 에게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부모의 허락을 구하느라 지체하는 사이, 우팔리는 그 길로 출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왕자들이 부처님에게 우팔리를 먼저 출가시켜 주십사 요청할 일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흙수저 우팔리는 오히려 홀 가분하게 출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왕자들보다 한 발 앞서 부처님에게 나아가 출가했고, 왕자들의 재물보다 더 큰 보물, 무너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 깨달음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팔리 존자의 출가를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그는 참으로 큰 뜻을 품은 구도자였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금수저들이 내다버린 것들을 주워들며 기뻐 하는 삶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정말 소중한 가치를 누 구보다 한 발 앞서 찾아 나선 사람입니다. 그 대범하고 용감한 행보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미령
불교강사이며, 불교칼럼리스트, 그리고 경전이야기꾼이다. 동국역경위원을 지냈고,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고, 불교책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을 이끌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붓다 한 말씀』,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수행입문』, 『이미령의 명작산책』,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볼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