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자원봉사 대통령표창 강부선 씨

금보다 빛나고 햇살보다 따뜻한 손

2019-02-08     김우진

강부선(70, 경기 수원) 씨는 70평생 중 20년을 봉사하며 살았다. 일생동안 자신보다 남 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배고픈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퍼주고, 몸이 불편한 이 들의 발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은 괭이가 된 쇠처럼, 자기가 된 흙처럼 단단하고 반 질반질해졌다. 때로는 가족보다도 봉사를 우선했다. 지난해 그녀는 전국자원봉사 자대회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속에 그 자비와 헌신의 씨앗 을 심었던 것일까.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 따뜻한 마음이 오간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골목길. 어린 아이 하나 가 웃으며 복지관 문을 열고 뛰어 나온다. 그 뒤를 따라 허리 굽은 할머니가 문 앞에 세워둔 손수레를 끌며 아이를 부른다. “할머니 허리 아퍼, 천천히 가 욘석아.” 할머니를 마중 나온 아이는 뛰던 걸음을 멈추고 손수레 옆에 붙어 골목 어귀로 들어섰다.

동네 주민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드는 곳인 삼 전종합복지관. 강부선 씨는 매주 토요일이면 이곳 에서 수족침 봉사를 한다. 함께하는 봉사자들과 수족침 봉사를 진행한 지도 벌써 여덟 해 째다.

오전 11시 30분. 봉사를 진행하는 2층의 프로 그램 실에 사람들이 모인다. 삼전동 주민들이 수 족침을 맞으려 왔다. 매주 오는 단골이라며 서로 의 안녕을 묻는다.

강 봉사자의 손이 단골 어르신의 손을 더듬는 다. 상대의 얼굴과 손을 천천히 번갈아 보며 아픈 곳을 묻는다. 물음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맞잡은 손에는 따뜻함이 오간다. 아프지 않을 거라는 말, 다 괜찮을 거라는 말이 유난히 고맙게 들린다.

“삼전복지관에서 봉사한 것은 2012년부터였 을 거예요. 조계종자원봉사단에 들어가서 발마시 지 봉사를 하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 전 에는 종로노인복지관이랑 조계사 만발공양에 나 가 혼자서 봉사했죠.”

지난해 12월 5일 자원봉사자의 날을 맞이하 여 개최한 2018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서 강부선 씨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조계종자원봉사단 소속으로 2001년부터 꾸준히 봉사를 실천해온 게 그 내용이었다.

“아이고, 강 선생님이 그렇게 오래 봉사하신 지 그 전에는 몰랐죠. 평소에 그런 말씀하신 적이 없거든요.”

삼전복지관에서 함께 봉사하던 식구들도 상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알았다. 20년 넘게 봉사를 이어오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티내지 않 았기 때문이다.

“함께 봉사하는 분들 모두 같은 마음인데 제 가 특별할 게 있나요. 제가 봉사를 시작한 것도 특 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수많은 봉 사자들이 느끼는 것처럼 봉사를 통해 느껴지는 보 람. 그게 정말 좋아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 미안할 게 없는 데도 미안한 사람들

강부선 씨는 수족침 봉사 외에 뜨개질 교실도 운 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매주 수요일이면 고양 시 원당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 료 뜨개질 교실을 열고 있다.

“어머니가 손재주가 좋으셨거든요. 옛날에는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니가 실을 풀어 서 뜨개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익숙하게 뜨개질 을 했었다가 어른이 된 후에 뜨개질 학원을 다니 면서 정식으로 배웠습니다. 뜨개질을 다 배우면 학원에서 사범증을 줬거든요. 가만히 썩히면 아깝 잖아요. 그래서 저도 계속 뜨개질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한거죠.”

강 씨는 “봉사를 통해 자신이 더 많이 배운다” 며 말을 이었다. 그에게 뜨개질은 일종의 재능 기 부였다.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는 과정이었다. 발 마사지도 그러했다. 조계종자원복지단에서 배운발마사지로 수족침 봉사를 하기 전 오랫동안 장애 인복지관에서 사람들의 발을 어루만졌다.

“8 , 9 년 쯤 했어요. 금요일 오전 열시면 노원구 에 있는 시립북부장애인복지관에 갔어요. 함께하 는 팀이 오래 발마사지 봉사를 해왔거든요. 그곳 에 계신 분들이 금요일이면 저희가 오는 걸 알아 요. 그래서 9시 반부터 그 앞에 나와 계세요. 저희 에게 인사하고, 반겨주려고요. 정말 그분들 순수 하고 순박하고 정이 많아요.”

장애인복지관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에 비해 봉사자는 한 주에 네다섯 명 정도. 하루에 마사지 해줄 수 있는 인원이 스물이 채 안됐다. 대기 신청 이 길어 석 달은 기다려야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 다. 복지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봉사자들을 맞이했다. 봉사자 들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봉사자들을 반겼다. 어눌 한 발음이지만 분명하게 “선생님 어서 오세요. 기 다렸어요”라고 말할 때면, 천진한 그 얼굴이 기특 하면서도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스쳤다. 오래토 록 그곳에 다니며 그 사람들의 발을 주물러주고 싶었지만, 10년을 못 채웠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2000년대 초에는 발마사지 팀이 여럿 있었어요. 제가 있던 팀도 그 중 하나였는데, 발마사지가 아무래도 힘이 많이 들고 고되다 보니 새로운 봉사자가 없더라고요. 10년 이상 함께하던 분들이 사정이 생겨 그만두 시면서 인원이 조금씩 줄어들다가 팀이 해체되었 죠. 아마 지금은 한 팀만 남았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장애인복지관에 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는 강부선 씨. 선한 마음들이 이어져 서일까, 서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복지관에 있 는 사람들과 다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그날 을 그리는 그다.
 

| 온몸으로전해지는마음,봉사,그리고보람

“봉사하러 오기까지가 가장 힘들죠. 집에 갑자기 일이 생기면 봉사하러 못 오잖아요. 제가 여기서는 봉사자지만, 집에서는 엄마니까요. 막상 봉사하는 것은 사람들이랑 함께 하니까 즐겁거든요. 봉사하 는 곳까지 오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게 힘듭니다.”

강부선 씨가 봉사했던 곳들을 나열하니 지역 이 일정치 않았다. 일산에서 노원으로, 다시 종로 에서 송파로 이어졌다. 강 씨의 집은 수원이다.

거리가 먼 것은 조금 일찍 나서면 되지만, 식구 들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가 족들이 잘 도와줬다.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게 됐다 는 소식을 딸에게 전했다. “그 동안 엄마가 뭐하는 지 잘 몰랐는데, 엄마가 정말 대단한 일 했었구나” 라는 딸의 말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자식들 에게 모범이 되고 인정받은 게 참으로 고마웠다.

“봉사 한 번 해보세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해 보세요. 정말 보람차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어요.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를 웃게 하고 힘나게 한다는 게 얼마나 큰일입니까. 부처님께서도 보살 행을 말하신 거 보면 제가 잘하고 있는 거겠죠?”

『법구경』에서는 ‘빛깔은 고우나 향기가 없는 꽃처럼 아무리 좋은 말도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강부선 씨가 받은 상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글. 김우진
사진. 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