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과 동물이야기] 스님 둘, 백구 셋 그들이 사는 방식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2019-02-07     양민호
사진=최배문

“승가대학교를 다니면서 매주 인천의 지선사에서 어린이 법회 법사를 했는데 그곳에의 백구 명지랑 많이 친해졌다. 명지는 내가 초면에 쓰다듬고 궁둥이를 두드리는 걸 허락해 주었다. 어느 날 명지는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았고, 그중 한 아이를 내가 데리고 왔다. (...) 나중에 들으니 선우는 우리에게 보내기로 정한 강아지였다고.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진엽스님, 『개.똥.승』중에서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백구와 두 스님(진엽 스님, 경봉 스님)의 조금 특별한 동거 이야기. 시작은 이랬다. 벌써 13년 전 이야기다. 그렇게 시작된 진돗개 한 마리와 두 스님의 동거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사이 어미 선우가 새끼(파랑이, 오페라)를 낳아 식구가 둘 더 늘었다는 것. 그리고 최근 거처를 옮겼다는 것. 이사한 지 겨우 한 달쯤 되었단다. 이제 막 새 공간에 적응을 마친 그들을 만나러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작은 시골 동네를 찾았다.

“집 안에서 자란 녀석들이다 보니까 낯선 사람을 보면 처음에 좀 짖어요. 그래도 착한 아이들이라 물진 않는답니다.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자, 들어오세요.” 살갑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 줄 거란 기대는 애당초 무리였음을 진엽 스님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깨달았다. 낯선 사람 냄새를 맡자 이구동성으로 짖어대는 녀석들. 요란한 환영식에 살짝 기가 죽었지만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물론 전혀 통하지 않았다. “웡웡~”
다행인 건 진엽 스님 말씀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 열심히 짖긴 해도 물진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짖는 주기도 잦아들었다. 중간 중간 깜빡했다는 듯 몇 번씩 짖긴 했지 만, 그건 ‘나 아직 여기 있소’ 하는 관심 환기 정도로 여길만 했다. 어쩌면 자기들 얘기에 직접 나서 답한 것일지 모른다는 스님들 말씀이 맞을지 모른다. 이런 게 꿈보다 해몽!

한바탕 소란이 지난 뒤 경봉 스님이 내어준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안부 겸 스님과 백구네 근황을 물었다. 진엽 스님은 동물과 함께 사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그저 더불어 사는 한 모습일 뿐이라며 미소를 띠었다. 스님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고. 그 말씀처럼 두 스님과 선우, 파랑이, 오페라가 함께 사는 공간이 일반 가정집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소박한 살림에, 사람이 있고, 개들이 있다. 그뿐!

일러스트=봉현

슬픔을 덜어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것이 내 종교

개똥승(개똥 줍는 스님), 진엽 스님 별명이다.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사형 경봉 스님. 선우를 입양한 뒤 매일 아침 마당을 돌며 개똥을 치우는 진엽 스님을 보고 우스갯소리 로 한 말이라는데 진엽 스님은 그 말이 맘에 들었단다. 그래서 여태껏 개똥승을 자처한다고. 지난 2016년 두 스님과 백구네 가족 사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때도 당당히 『개.똥.승』이란 책명을 달았다. 자타공인 개똥승으로 거듭난 순간이다.

두 스님과 함께 있다 보면 쿵짝이 참 잘 맞는 사이란 걸 금세 알 수 있다. 그럴 만한 것이 두 스님은 속가에서 한 지붕 아래 자란 자매였다. 출가를 한 이후로도 도반으로서 지금껏 함께 공부하고 수행해 왔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그런 둘에게도 시련의 시절이 있었다고. 바로 선우를 입양하던 때다. 처음 선우를 입양할 때 두 스님 사이에 온도차가 있 었단다. 출가자로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개까지 기르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경봉 스님과 소중한 생명을 보 호하는 것이 출가자의 역할 중 하나라는 진엽 스님 생각이 충돌했던 것이다.

적잖은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사형 경봉 스님이 마음을 냈다. “출가해서 살면서 고생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많이 위축됐죠. 지금 내 상황이 불안정한데 다른 생명 돌볼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애들 밥 굶길까봐 걱정도 컸고요.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어요.” 가뜩이나 힘든 형편에 건사할 식구가 는다는 게 얼마나 큰 결정일까. 지금에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스님의 고충은 흔쾌히 웃어넘길 만한 게 아니었을 거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준 그날의 경봉 스님께, 그날의 결정에 박수를!

선우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두 스님의 에피소드는 이것으로 끝이다. 합심한 순간 더 이상의 걸림돌은 없었 다. 율장에 기록된 ‘출가자는 동물을 기르면 안 된다’는 부처님 말씀조차 두 스님의 확신에 찬 신념을 가로막진 못했 다.

“동물을 기르는 걸 계율에서 금하고 있죠. 그런데 또 하나 살생도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위기에 놓인 생명을 보살피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건 계율에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리의 문제죠. 물론 계율은 부처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방편이므로 신중히 여겨야 합니다. 다만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결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불가능하다고 봐요. 언제나 선택이 필요하고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하죠. 그리고 선택의 기준 이 무엇이든, 그것이 법이든 계율이든, 저는 그게 윤리나 도리, 정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출가한 지 20 여 년, 그렇게 두 스님은 각자 선택한 출가자로서의 길을 부단히 걸어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활동 등) 동물 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진엽 스님, 건강을 살리는 자연식 요리법을 대중에게 보급하는 일에 앞 장서고 있는 경봉 스님. 방식은 달라도 결은 같다. ‘슬픔을 덜어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것이 종교다’라는 신념에 뿌리 내린 자비행이다.

일러스트=봉현

개들이 사람보다 나은 점 하나

선우, 선재, 이런 말은 불교에서 흔히 쓰는 단어다. 불자들 가운데 함께 사는 반려동물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준 이들 도 적잖을 거다. 그래서 어미를 선우라고 이름 붙인 연유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참고로 선우(善友)란, 착하 고 어진 벗을 일컫는 말.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정도를 가르쳐 좋은 이익을 얻게 하는 스승이나 친구를 뜻한다]. 대 신 파랑이와 오페라의 이름에 대해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스님들 작명 센스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파랑이는 어 렸을 때 너무 말라서 머리만 동동 떠다녔어요. 마치 태권 동자 마루치 아라치 만화에 나오는 악당 파란해골13호처 럼요. 그래서 파랑이가 되었죠. 오페라는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유난히 커서 꼭 오페라 가수 같았어요. 그래서 오페 라가 되었구요.”

대개 사람 이름에는 기대가 담겨 있다. 출세하라거나, 오래 살라거나, 남자답게라거나, 여자답게라거나. 그런데 동 물에게는 보통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이름을 붙인다. 나비, 벌, 구름, 파랑이, 오페라 등등. 어째서일까. 동물에게는 인간만큼의 기대를 갖지 않기 때문일까. 알 수 없지만 어쨌 건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무언의 기대로 삶의 무게를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파랑 이와 오페라는 그래 보였다. 물론 선우도. “각자의 모습, 성격 그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저희도 선우네 가족도요. 어떤 기준에 맞춰 바꾸려고 하거나 훈련시키지 않고요. 저 마다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그게 더불어 사는 것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 싶어요.” 진엽 스님 말씀에 동의한다는 걸까. 파랑이와 오페라도 곁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웡~웡~”

또 하나 백구 가족이 누리는 호사(?)가 있는데, 바로 경봉 스님이 손수 지어주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수제 간식. 자 연식 요리 전문가인 경봉 스님의 손을 거쳐 탄생한 건강식 요리는 백구 가족의 취향마저 완벽히 저격했다. 요즘은 진엽스님의 부지런한 SNS 홍보덕에 두 스님이 백구가족과 함께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 분들이 간식을 챙겨 주기도 한다고. 이만하면 정말 ‘백구 팔자 상팔자’라고 할 법하지 않을까.

 

글 양민호
사진 최배문
일러스트 봉현

사진= 최배문
사진=최배문
사진=최배문
사진=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