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화란 무엇인가?

2019-01-03     일묵 스님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바라는 것과는 달리 삶에서 많은 괴로움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현대문명과 의학의 발달로 육체적인 고통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과도한 생존경쟁을 치르며 겪는 정신적 고통은 과거보다 더욱 더 많아지고 다양해졌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정신적 고통들은 모두 화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이해하고 화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성제의 관점으로 화를 꿰뚫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화가 무엇인지?(고성제)’, ‘화의 원인은 무엇인지?(집성제)’, ‘화가 소멸되는 것은 가능한지?(멸성제)’, ‘화의 소멸로 인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도성제)’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성제의 틀로써 화를 이해하게 되면 화에 대한 어리석음이 사라져서 화는 저절로 버려지게 됩니다. 화를 버리기 위해 화와 다투는 것은 또 다른 화를 불러올 뿐입니다. 

세상에는 화를 다스리고 버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이며, 그러한 이해를 통해서만 화는 실제로 버려질 수 있습니다. 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화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화가 나면 가장 먼저 괴로운 사람도 자신이고, 가장 큰 괴로움을 겪는 사람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기도 하고 화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화를 버리지 못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화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화로부터 벗어나는 출발점이 됩니다. 

화를 뜻하는 빨리어 도사dosa는 악의, 타락, 미움, 싫어함, 성냄 등의 의미입니다. 이를 한자로 성낼 진嗔자로 쓰거나 불 화火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화는 대상을 싫어하는 심리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항상 정신적 불만족과 함께 합니다. 화가 일어나면 정신적 불만족이 있고, 정신적 불만족이 있으면 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마음 상태가 화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힘들 때는 정신적 불만족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공포, 두려움, 우울함, 슬픔, 비탄, 탄식, 절망, 허무 등은 강한 정신적 불만족과 함께 하기 때문에 당연히 화입니다. 몸이 아픈 것에 대한 불만, 가벼운 짜증, 따분함이나 지루함 역시 비록 미세할지라도 정신적 불만족과 함께 하기 때문에 화입니다. 

화는 자신에 대한 화와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렇게 못났나’ 혹은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싫어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화입니다. 그리고 남을 증오하는 것이나,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을 싫어하는 것은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화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는 미세하거나 거칠거나, 자신에 대한 것이나 타인에 대한 것이나, 저열하거나 수승하거나, 과거의 것이나 현재의 것이나 미래의 것이나 대상을 싫어하는 모든 심리현상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처럼 화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화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신적 고통은 의식意識을 통해 일어나는 정신적인 불만족 입니다. 육체적 고통은 몸[身識]을 통해 일어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플 때를 생각해 봅시다. 몸에서 일어나는 찌르는 듯한 통증은 육체적 고통이고, 찌르는 듯한 통증을 싫어하여 불만을 가지는 것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은 항상 화와 함께하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완전히 소멸할 수 있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라 하더라도 육체적 고통까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등이 아파 고통을 겪으신 일이 있었고, 쭌다라는 재가자가 공양 올린 음식을 드시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신 일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육체적인 고통은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몸의 어느 부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통증이 드러나야 문제를 인지하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만일 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육체적 고통 자체는 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몸의 고통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묻고 답하기 - 집착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습니다

Q. 예전에는 ‘나는 박사학위도 받았어’ 이런 자부심도 있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자꾸 실패를 경험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별 볼일 없고 티끌 같은 존재구나’ 하는 생각에 점점 의욕도 없어지고 삶에 지쳐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삶에 지쳐 간다는 것은 자신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실망감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것이죠. 그것은 일종의 화입니다. 집착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습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해 가고 이전보다 좀 더 향상되어 간다는 관점으로 보면 현재에 만족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가지고 판단합니다. 목표를 이루었나 이루지 못했나, 성공했나 실패했나 그런 것에만 초점을 맞추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성취하고, 어떤 업적을 이루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이든 선한 마음으로 하는지 불선한 마음으로 하는지, 번뇌를 가지고 하는지 번뇌 없이 하는지, 그것이 바로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내 마음의 태도를 바꾸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로 이 자리에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두면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한번 잘 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묵 스님
서울대 수학과 졸업,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수료한 후 봉암사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미얀마와 플럼빌리지, 유럽과 미국의 영상센터에서도 수행했다. 현재 제따와나 선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