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아줌마, 집에서 밥이나 하지

지혜의 뜰, 삶의 여성학

2007-09-15     관리자

우리 생활 주변을 둘러보면 여자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잘하는 것 자체를 여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도구나 연장, 기계 등속은 남자들이 잘 아는 것이지 여자들은 잘 모르는 것으로 여겨왔다.
어릴 때 어쩌다가 숫돌에 칼을 갈려고 하면 할아버지가 야단을 치곤 하셨는데 이유는 '여자는 칼을 갈면 칼이 잘 안 든다'는 것이었다. 망치같은 연장들도 '계집애들은 손을 대면 안 되는' 금녀의 물건들이었다. 남자들의 자존심인 도구나 기계 같은 데 관심을 가지거나 손을 대는 여자는 '눈 밖에 난 여자. 거칠고 여자답지 못한 여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다.
시대가 변하여 이제는 여자들도 쇳덩어리인 자동차 운전을 하고 다니는 천지개별 세상이 되었건만 여자가 칼을 갈면 칼이 안 든다는 신화가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급한 볼일로 택시를 탔다. 택시 안은 깨끗한 시트로 단장을 했는데다가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기사님의 파란복장도 유난히 말쑥해 보여서 운 좋게 택시를 잘 골라 탔다고 생각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창밖을 보면서 기분 좋게 앉아 있던 필자는 느닷없는 기사의 욕지거리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줌마들이 집에서 밥이나 하지. 할 일 없이 차를 끌고 나와 가지고서는 쓸데없이 돌아다니니까 길이 이렇게 복잡하잖아. 운전도 할 줄 모르는 것들이, 남의 차 앞에서 또 알짱거리네. 젠장."
놀라 앞을 바라보니 앞에 가는 여성 운전자의 차를 들이받을 것처럼 바짝 따라 가며 차 안에서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화를 내며 욕을 하는 것이었다.
십여년 전 비교적 여성들이 운전을 덜 배우던 시기에 운전을 한 사람들은 별의별 일을 다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 중심을 약간 벗어나서 차를 운전하고 가면 지나가는 남성 운전자들이 경적을 일부러 울려서 놀라게 하거나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이'라며 희롱을 하기도 하고, 일부러 거칠게 운전을 해서 위협하며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자기가 잘못하고서도 차를 세우고 오히려 삿대질을 하면서 무조건 '아줌마가 잘못했다'면서 욕을 해대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 운전자들이 많아진 지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 운전자들을 비아냥대는 분위기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차 운전하는 여성치고 욕 한바가지씩 안 먹은 사람이 있을까? '여자들이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지 뭐하러 길바닥에 나와서 자존심 상하게 하늘같은 남자의 앞을 가로 막느냐'는 것이 욕 잘하는 저속한 남자들의 뒤틀린 심사이고 화를 끓이는 근본생각이 아닌가 한다.
여자 친구들 모임에 가보면 "오늘은 욕 안 먹고(?) 잘 왔니."라는 말로 첫인사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어떤 친구는 "오늘도 그 XX 소리 또 들었어, 그런 남자들은 입이 왜 그렇게 더러운지 모르겠어. 여자라고 그러면 그냥 얕보고 무시하고 욕부터 해대는 거야. 여자하고 무슨 웬수진 사람들 같지 않니? 그런 사람들이 집에 가면 어떻게 할 것 같니? 집에서도 저 혼자 잘난 체 하겠지! 거칠게 욕하는 언어 폭력도 구타하는 남자들이 손찌검하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동시에 한다고 하더라." 오물을 뒤집어 쓴 듯한 욕을 들은 친구는 분을 삭이지 못해서 말이 많아진다. 그런 이야기의 끝에는 그런 남자하고 사는 여자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욕 잘하는 남자들은 자동차 운전이 남자의 특권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여성들이 일상으로 쓰는 부엌칼을 필요할 때마다 갈아 쓸 수 있고 남편이나 아들에게 운전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필요할 때 혼자 운전해서 가면 된다는 것은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합리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꼽다는 식으로 굴절시켜 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 꽤 있는 모양이다.
운전교습소에 등록해 본 여성이면 다들 씁쓸한 경험 한두 가지는 다 기억하고 있다. 아주 똑 소리가 나는 여성들도 교습소에 가면 별 수 없이 자기가 얼마나 못난 여자인가를 운전교사로부터 듣고 배우게 된다고 한다. 처음 운전을 배우는데 남녀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은데 주로 남자들인 교사들은 그 게 아니다. 남자 피교육자들에게는 정중한 말을 쓰면서 여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줌마, 왜 이렇게 운동신경이 둔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또 까먹었어요? 아줌마, 국민학교 나왔어요? 대학교까지 나온 사람이 이거 하나 기억 못해서 쩔쩔매요? 아, 아줌마는 안 되겠어요. 포기하세요. 그렇게 못해 가지고 누굴 죽이려고 그래요?" 아줌마로 불리는 여성들은 남존여비의 올가미에 걸려들면 여지없이 당하고 만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못한다는 한마디에 그렇지 않아도 없는 자신감이 싸그리 죽어들고 미리 주눅이 들어 정말 못하는 때도 있다. 그 중에서 어떤 여성은 "내가 당신이 말하는 대로 운전을 잘하면 무엇 하러 배우러 왔겠느냐? 못하니까 당신한테 배우러 온 것 아니냐? 못하는 것 가지고 당신에게 핀잔 받고 무시당하려고 온 것 아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내가 운전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쓸데없이 내게 화내고 인격적인 모욕을 하는 것 같은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교습소 측에 항의하겠다."고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여 남자 교사의 태도를 바꾸게 한 사례도 있다.
여성들이 미리 겁을 먹고 배울 엄두도 못 내고 무능력자로 생각되는 기계 가운데 또 하나가 요즈음 신세대들이 잘하는 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들뿐만 아니라 구세대 남성들도 이 점은 사정이 비슷하다. 즉 컴퓨터는 어머니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못하는 집이 수두룩하다. 사람은 누구나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면 모르게 마련이다.
지난 여름 여성과 노년의 삶이란 주제로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노년의 삶을 재미있고 풍부하게 사는 방법의 하나로 컴퓨터 배우기를 생각해 보았다. 사실 컴퓨터는 우리들 생각해 보았다. 사실 컴퓨터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외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신세대와 시대의 변화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고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컴퓨터를 배우면 은행처리도 집에서 할 수 있고 항공표와 기타 교통편의 표도 끊을 수 있는 생활상의 편리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컴퓨터에서 통신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도 얻고 다양한 친구들과(얼굴은 없지만) 사귀기도 하고 취미활동, 오락도 즐길 수 있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50대 주부들 몇 사람에게 변화하는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고 위협을 하였더니 약효가 당장 나타나서 50대의 캄캄한 컴맹 여성을 위한 컴퓨터 방을 하나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외국에 있는 아들 손자며느리와 매일 편지를 받고 보낼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더니 솔깃해서 나온 사람들이다.
떡도 먼저 먹는 놈이 임자더라고 속아서 시작했건 하고 싶어서 했건 간에 먼저 배워서 쓰는 사람이 결국 잘사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운전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도 학원에 나가서 배우는 과정은 비슷한 과정을 겪으리라고 생각한다. 남자중심의 사회에서 남자들이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기계종류를 가까이 가려고 하면 또한번 '아줌마 무능력론'이 판을 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줌마, 그것도 하나 못 쳐요? 가르쳐 준 것 또 까먹었어요?'하고 야단을 맞고 어리둥절해 하는 주부들과 괜히 죄스럽고 창피하고 무한하고 주눅이 들어서 감히 항의도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웃으며 당하고만 앉아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람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지 남이 살아주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공부해 가지고 남주나!'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