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절구통 수좌 이야기

2019-01-03     윤효
윤효 시인

겨울은 안거의 계절이다. 저마다 한 해의 살림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내면과 차분히 마주 앉는 계절이다. 꼭 무문관이 아니더라도 오욕과 칠정을 내려놓고 심산 선원에서 한철을 나는 수좌들의 풍모는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가.

그러나 안거는 수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안거는 수좌들만의 것이다. 이 세상 유정은 너나없이 수좌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정은 하루하루 백척간두에 선다. 보다 맑고 밝게 살고자 하는 마음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간절히 살아낸다. 유정은, 중생은 그러므로 모두 눈썹 푸른 수좌들이다. 

지구별 생태계 유정 중에서 인간과 가장 밀접한 생명체는 아무래도 푸나무들이지 싶다. 특히 사계절이 또렷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서적 유대까지 서로 돈독히 나누는 대상이기에 더욱 그렇지 싶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은 푸나무들이 광합성을 통해 이룩해낸 생산물에 의지해 연명해 왔다. 물론 육식을 곁들여 해왔지만 일차적인 에너지 공급원은 푸나무들의 몸 자체이거나 열매였다. 어찌 이뿐이랴. 푸나무가 활동하기 전까지 지구는 그야말로 생명 한 톨 없는 불모지였다. 약 4억 년 전, 바다에서 땅으로 걸어 나온 푸나무들이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대기를 한 땀 한 땀 산소로 바꿔놓지 않았다면 인류의 출현은 애당초 꿈을 꿀 수조차 없었다. 사실, 인간이 지구촌에 방부를 올린 것은 멀리 잡아도 겨우 200만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 거의 4억 년에 걸친 푸나무들의 노고에 인간은 심신을 한없이 조아려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말 우스꽝스럽고 염치없고 철없는 허튼 소리일 뿐이다. 

인간을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푸나무들은 오늘도 인간을 기르고 가르친다. 먹이고 입히고 재워줄 뿐만 아니라 품성을 도야할 수 있게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철 다독여 주기도 한다. 생동과 일신을 북돋우고 인고와 겸허를 일깨운다. 그런 가운데 율곡을 길러낸 신사임당처럼 스스로 위의를 격조 있게 가꿀 줄도 안다. 숲에서든 길거리 난전에서든 한 포기, 한 그루가 그대로 청정 도량을 이루는 것이다.

지난 가을 또 한 번의 장엄 불사를 마치고 조용히 지는 푸나무들의 잎을 보면서 나는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시푸른 녹색 차림으로 땡볕과 천둥과 비바람과 맹렬히 맞서온 그들이 한 해 살림을 다 마치고 땅 위에 내려앉을 때에는 하나같이 땅의 빛깔을 하고 있었다. 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수의 잎들까지도 그러했다. 그들은 녹색의 빛깔이 잦아들고 땅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잎을 내려놓았다.

푸나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뉴스 하나를 떠올렸다. 그 뉴스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칼이 다 빠진 친구를 위해 같은 반 학생들이 모두 삭발을 했다는 뭉클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천만방편을 떠올렸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어우러져 화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그렇게 일깨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또한 짐짓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겨울은 역시 안거의 계절이다. 숲에서 총림을 이루었든 길거리에 나와 줄지어 섰든 그 자리를 온전한 제 자리로 알고 묵묵히 묵상에 잠겨 있는 수좌들을 보라. 칼바람 눈보라에도 꿈쩍 않고 오로지 선정 삼매에 든 저 절구통 수좌들을 보라.

푸나무들이 새롭게 들려줄 새봄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윤효尹曉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본명은 창식昶植. 1984년 「현대문학」에 등단했다.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 등이 있다.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동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삶의 서사를 끌어안을 수 있는 시를 추구하는 「작은詩앗·채송화」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