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제자 이야기] 수보리 존자 2

2018-12-24     이미령

| 그 포악했던 수보리가...

수보리 존자는 공을 이해하기로 으뜸(解空第一)일 뿐만 아니라 다툼을 없앤 사람 으로도 으뜸(無諍第一)이라는 점을 앞에서 만났습니다. 공의 이치는 수행을 많이 해야 깨닫게 되는 것이라 잠시 밀쳐 두더라도, 다툼을 없애서 언제나 마음이 고 요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경지는 부럽습니다. 어쩌면 수보리 존자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그 이전의 생에서도 이렇게 평화로운 성품의 인물이었을지도 모릅 니다. 사람의 성정이란 쉽게 바뀌지 않으니, 누구보다 온화한 성품이었기에 출 가해서도 부처님으로부터 다툼이 없는 제자 가운데 으뜸이라는 찬탄을 들었을 테지요.

하지만 뜻밖에도 수보리 존자는 매우 거칠고 사납고 잔인한 성품이었다는 이야기가 경전에 등장합니다. 부처님에게 귀의한 인연 이야기를 모은 경인 『찬 집백연경』에는 수보리 존자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 부리負梨라는 이름의 바라문 집에 아들이 태어났 습니다. 부모는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빼어나 수보리(須菩提, 수부티)라고 이름 을 지었습니다.

아이는 잘 생기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주 총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런데 딱하게도 수보리의 성품은 난폭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지 화를 내고 상대방을 거칠게 대했습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수보리를 만나면 그 날은 아주 하루를 망칠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잔인하고 사나워서 부모와 친척들조차도 그를 꺼리니, 어쩌겠습니 까? 수보리는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지요. 하지만 산에서도 그의 포악한 성품 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날짐승과 길짐승이 그를 피해 다녔고, 심지어 풀과 나 무조차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고 『찬집백연경』에서는 말합니다. 대체 산 속의 풀 과 나무들,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에게까지 화를 내고 욕을 퍼붓고 포악하 게 구는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수보리는 타고난 성정이 거칠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수보리를 보다 못해 산에 사는 신이 나섰습니다.

“어쩌려고 산에서까지 그리 포악하게 구는 게냐? 내가 훌륭한 스승님 한 분 소 개할 테니 그 분에게 가보지 않을 테냐? 그 분은 딱 너처럼 잔인하고 사나운 이들 의 성품을 부드럽게 만져주시고 지혜도 안겨주신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원한다면 내가 안내하겠다. 너도 그 분을 만나 뵈면 틀림없이 성격을 고칠 수 있을 게다.”

‘한 성깔’하는 수보리이지만, 그도 자신의 성격이 문제 있다는 걸 잘 알고 있 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도 고치지 못하는 자기 성격인데 그 분이라면 혹시.... 수 보리는 반가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꼭 뵙고 싶습니다. 그 스승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산신은 대답합니다.

“정말이냐? 그렇다면 두 눈을 꼭 감고 있어라. 내가 순식간에 그 스승님 계신 곳으로 널 데려다주마.”
 

| 수보리는 분노조절장애자?

잠깐 감았던 눈을 뜨자 그는 자신이 사위성(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와 있음을 알 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단정하기 이를 데 없는 부처님이 계신 것을 보게 됐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이 어찌나 평온하고 단정하신지 뵙기만 해도 마음이 편 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수보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수보리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하신 듯 그를 따뜻하게 맞 이하고 이내 법문을 하셨습니다.

『찬집백연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특히 ‘성냄’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베푸 신 듯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그런 행동들이 습관이 되어 다음 생에 태어나더라도 늘 다투고 심지어는 잡아먹 고 먹히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차오르는 자신의 앞날이 불 보듯 빤해 지자 수보리는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머리털이 쭈뼛 섰고 식은땀이 흘러내렸 습니다. 나는 화내고 싶지 않은데 언제나 바깥의 저 녀석이 내게 화를 불러 일으 켰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났었습니다. 네가 뭔데 나를 건드리냐는 생각이 일면 그 녀석을 반쯤 죽도록 패야 성이 찼습니다. 이런 수보리의 모습을 보자면 요즘 많 이 하는 말로 ‘분노조절장애’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 분노 의 열기와 불만족의 짜증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모두가 원수 였습니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열 받게 하는 원수덩어리인 사람, 그래서 죽을 때 까지 그 마음에 세상을 향해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을 단 한 시도 꺼버리지 못한 사람, 수보리는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수보리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쩌면 수보리는 부처님이 아닌, 자신의 분노에 무릎을 꿇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분노를 이기려고 더 길길이 화를 내던 자신을 내던지고 “분노야, 이제 너는 나를 지나가라”며 항복 선언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떠난 마음에 수보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았습 니다. 제자 되기를 간절히 청하는 수보리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잘 왔구나. 비구여!”

이 한 마디 말씀으로 수보리는 반듯한 수행자로 거듭났습니다. 『찬집백연 경』에 따르면 그 즉시 그의 몸에는 가사가 입혀졌고 머리와 수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세상과 다투려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 수보리, 지금까지 자신은 대체 무엇과 다투었던 것일까요?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화를 내며 싸워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이 부조리하면 그 부조리한 것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하지만 분노에 휩쓸리다보면 자신 역시 부조리한 세상의 한 조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다툼이라는, 분노라는 번뇌의 실상을 꿰뚫어버린 수보리입니다. 그 번뇌를 벗어버리고 나니 세상 그렇게 시원하고 유쾌할 수가 없습니다.
 

| 사나운 욕을 퍼부은 대가

『찬집백연경』에서는 수보리가 왜 그리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는지에 관한 전생 인연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가섭부처님 시절에 수보리는 스님이었는데, 도반들과 함께 공양을 나서게 됐습니다. 그런데 도반 한 사람이 무슨 사정이 있는지 꾸물거리고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을 이끌던 스 님이 입에 담기 무색한 욕설을 그에게 퍼부었다고 합니다.

“독사보다 더한 녀석이다.”

어떻게 도반에게 이런 욕설을 쏟아낼 수가 있을까요? 그 스님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서 오랜 세월 독사로 태어났고, 수많은 생명들에게 독기를 끼쳤 으며, 사람으로 태어나도 걸핏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의 전생 이야기를 믿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어떤 한 가 지 습관이 몸에 배면 쉬 고치기 어렵고, 행여 그 습관이 악한 것이라면 그 사람의 삶을 망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보리 존자는 다행 이었습니다. 자신의 성품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부 처님을 뵙고 제자가 되어 수행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일들을 볼 때면 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저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비록 분노 때문에 수보리는 몇 차례나 거칠게 태어나 거칠게 살다 그렇게 죽은 뒤에 또 다시 그런 삶을 반복했겠지만, 바로 그 분노 때문에 그는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수보리인 만큼 그에게는 다음의 이야기도 늘 뒤따릅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이 지붕을 덮지도 않은 오두막을 수보리 존자에게 기증했지만, 그는 평온하게 잘 지냈습니다. 출가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 이었습니다. 오히려 수보리 존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마음은 지붕이 잘 덮여서 비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바람아, 불 고 싶으면 불어라. 비야, 내리고 싶으면 내려라. 나는 거리낄 것이 없다.”

분노조절장애로 고생하던 수보리 존자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 고 태평스런 성자가 되어 이런 노래를 부르며 한 생을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라디오북클럽’과BBS 불교방송에서‘경전의숲을거닐다’를진행하고있다.또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