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 기업경

기업경企業經, 불법佛法 바탕 위에 새로 쓰는 경영원론

2018-12-24     이언오

| 기업이 고통의 원인이 아닌 행복의 수레여야

초등학생들 사이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유행어가 떠돈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보다 사용층이 어리고 어감은 냉소적이다. 분노에 지쳐 무기력해진 세 태를 반영한다. 불난 집이 무너지는데 불교는 ‘불이 뭣꼬’ 화두에 매달려 있 다. 고통 치유의 본분을 망각한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불법을 펼쳐야 할 승僧 이 제 역할을 못해서 비롯된 일이다. 나 밖에 승이 따로 있지 않다. 내가 세상 고통의 주인공이다.

산업화·정보화로 물질이 넘쳐나고 생활은 편리해졌다. 기업이 경영에 매진해서 이룩한 성과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 양극화, 갈등, 정 신 피폐의 고통이 수반되었다. 그 뿌리는 각각 탐욕, 분노, 무명. 기업이 마음 의 삼독을 키우고 퍼뜨리는 중이다. 마음이 잘못되어 기업 수레에 불이 났다.

불난 집은 혼자 타지만 불난 수레는 세상을 불바다로 만든다. 부처님이 보셨 던 ‘불타는 세상’이 이런 모습일까.

부처님은 교단을 창업해서 상당한 규모로 키우셨다. 일생 기업가 정신 이 충만해서 사셨다 하겠다. 왕자로서 리더십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으셨을 것이다. 초기 승가는 화합했고, 교단은 오랫동안 번성했으며, 당시 운영방식 은 여전히 작동한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과 솔선은 요즘 기업에게도 유효 하다. ‘나에게서 모범을 보라’, ‘기업에서 불법을 펼치라’는 부처님 원음圓音이 들리는 듯하다.

기업이 고통의 원인이 아닌 행복의 수레여야 한다. 마음먹고 행동하기 에 달렸다. 사람이 삼독에 빠져 기업을 경영해서 고통을 받는다. 방편인 조 직·이익에 마음을 빼앗기고 행동이 휘둘린다. 경영·기술 발전이 기업 수레 의 성능을 대단히 뛰어나게 만들었다. 좋은 수레를 타고서 고통 속에 헤매니 어리석다. 기업이 상相과 습習, 가상의 질서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내가 깨어 나고 주인공으로 살아서 기업 수레를 행복으로 이끌어야 한다. 기업하는 사 람들이 경전의 근본 뜻을 읽고 실천하면 된다.

부처님 열반하시고 삼보의 불과 법은 불법으로 하나 되었다. 부처님 안 계시니 내가 불법을 펼치는 승僧이다. 내가 불법 바탕 위에 기업 수레를 이끌 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과 행동을 기록한 경전에는 기업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기업 조직은 경전이 결집되고 2천 년이 지나서야 등장했다. 아문我聞 경전을 길잡이로 하되 아견我見·아행我行이 요구된다. 불법으로 새로 쓰는 경 영원론, ‘기업경’을 찬술해야겠다.

 

| 기업의 사람·조직·성과를 바로 보고 바르게 실천해야

불경에 나오는 우화. 벌판에서 미친 코끼리가 한 남자를 공격했다. 그는 우물 속으로 피해 나무뿌리를 붙잡았다. 쥐가 나무뿌리를 끊고 있어 추락은 시간 문제. 그때 꿀물이 입술에 떨어져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성난 코끼리 는 고통, 쥐는 시간, 우물은 죽음. 나무뿌리(힘·돈·명예)를 붙잡고서 꿀물(쾌락)에 혹함이 부질없음을 보여준다. 기업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조직에 기대서 이익에 탐닉하는 것과 닮았다.


‘기업경’은 5개 품으로 구성된다. 1대의품, 2사람품, 3조직품, 4성과품, 5대행품. 각 품의 첫 문장은 1여시아문, 2 ∼ 4여시아견, 5여시아행 이다. 팔정도 경영의 1중도, 2주인·수행, 3동사·연결, 4보시·수순, 5보 살과도 통한다. 기업경은 근본을 파고들고(定), 견해를 드러내며(慧), 행동 기준 을 제시한다(戒). 기업경은 경영원론의 원론, 현대판 유마경이다. 구성원들이 귀일심원해서 기업 수레가 요익중생토록 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제1 대의품. 기업 ‘이 뭣꼬’ 화두를 들자. 부처님은 고통 원인(탐욕·분노·무 명)과 현상(연기)을 바로 보고(정견) 실천(수행·보살행)하라 하셨다. 궁극의 성과는 모두가 행복한 불국토. 세속 기업은 사람(탐욕)이 조직(연기의 구조화)을 만들어 성과(탐욕)를 추구한다. 탐욕의 마음으로 탐욕을 쫓으니 고통이 필연이다. 인 위로 연기를 만들고 통제하니 조화·순환이 깨진다. 사람·조직·성과를 원점 에서 재정의하고 행태·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한 생각 일으켜 한 기업의 한 행동씩. 바꾸어야 한다. 탐욕과 정견, 조직과 공동체, 이익과 행복의 중도 어 딘가에 답이 있다.

제2 사람품. 기업은 사람이 전부이다. 불교는 유아독존·수처작주하라 가르친다. 부처님은 여인을 쫓던 청년들에게 자신부터 찾으라고 설득하셨 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셨던 것이다. 선악·근기의 차이에는 섭수와 절복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셨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정업· 정명을 실천해야 한다. 조직에 몸담고 성과를 추구하되 마음이 늘 깨어있어 야 한다. 직업은 생계 수단이면서 삶에 의미·안정감을 부여하는 소명이다. 자긍심을 가져야 스트레스 없이 성과를 낼 수 있다. 평상의 내 몸과 내 마음 이 바로 기업이다. 생업으로 행복을 일구니 모두가 보살이다.

제3 조직품.조직은계율과같아틀속에서자유를준다.교단은계율준 수가 구성원의 기본 요건, 출입은 자유 의지에 맡긴다. 출가를 결단했으니 계 율 준수는 사소한 불편에 그친다. 기업 구성원들은 출입이 계산적이고 타율 로 쫓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경직된 틀이 자유를 억압한다고 여긴다. 기업은 평소 화이부동하고 위기 시에는 동이불화同而不和해야 한다. 구성원에 맞추어 역량을 끌어내고 개성을 조화시켜야 한다. 상근기는 독선하고 하근기는 방관하기 쉬우니 경계할 일이다. 당근·채찍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만 지속 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제4 성과품. 성과는 초점을 부여하고 의욕을 북돋운다. 불교는 개인 성 불과 불국토 실현을 지향한다. 고통 치유의 성과가 있어야 진리라 하겠다. 성 과를 추구해야 하지만 집착은 금물, 집착이 성과를 저해하고 고통을 낳는 탓 이다. 기업의 성과는 행복. 이익에 매달려서 무형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 다. 물론 적정 이익을 내서 선택의 자유와 심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꾸준 히 노력하면 세상이 성과로 보답한다. 요행과 대박은 일장춘몽, 작은 성과들 이 계속 쌓여서 기업이 위대해진다. 지금 씨앗을 뿌려 후대가 열매를 먹을 수도 있다. 경영진·주주가 받는 보상을 절제해야 이해당사자들이 두루 혜택 을 누린다. 강자의 탐욕 충족보다 약자의 고통 해소를 우선해야 한다. 비판 때문이 아니라 옳은 일이어서 사회·자연에의 책임을 다한다.

제5 대행품. 행동 없는 불법은 무기無記, 기업은 행동으로 귀하다. 부처님 은 길을 열어 보이고 몸소 걸어가셨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수행·전법·탁발 행동은 상인들을 감화시켰다. 요즘 불교는 고립·정체되어 기업 행동을 바꾸 는 일에 소극적이다. 기업 고통이 심한 만큼 행동이 바뀔 가능성도 높다. 성 공했으나 공허한, 실패했지만 의지가 살아있는, 그 한 사람이 물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하자.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코끼리 떼처럼 무리가 되 어 세상을 바꿀 것이다.

 

| 기업경을 찬술해서 현장의 기업 보살들을 독려

기업의 소의 경전인 기업경을 찬술하자. 기업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관 문. 보살행 실천의 현장이기도 하다. 기업가와 수행자·보살은 불이不二, 같은 사람의 다른 이름들이다. 기업경은 기업가의 수행·보살행을 이끄는 길잡이 이다. 기업가 마음에 작용해 기업을 행복의 수레로 변모시킨다. 기업경 찬술 의 마음을 내는 순간 기업은 바른 길로 들어선다.

기업 고통 치유의 사례를 축적하자. 고통이 심할수록 내면의 소리가 살길을 열어준다. 기업경은 그 깨달음들을 결집한 것이다. 고통이 기업의 일상 이니 진리를 따로 어렵게 구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의 고통 치유가 진리를 구하는 활동이다. 주리반특이 청소하다 깨달았듯이, 진리는 마음과 현장의 공명으로 드러난다. 고통을 치유하면서 실패 교훈을 배우고 자비심을 증진 시켜야겠다.

경영 교육을 혁신하자. 이론·기법 학습을 넘어 깨달음과 실천을 자극해 야 한다. 마음이 바뀌고 몸이 기억하는 기업가 보살을 육성해야 한다. 출발점 은 기업 문제를 화두로 한 정진이다. 의문에 몰입해야 답 없는 답을 찾아내는 성공 체험을 한다. 교육 과정에 창업, 현장 근무, 만행·순례, 멘토링을 포함시 켜야겠다. 스스로 눈을 뜨고 필요한 역량 습득에 매진토록 하기 위해서이다.

기업경은 불교에도 유용하다. 사람·조직·성과의 틀로 불교를 바라볼 수 있다. 불교는 사람을 출가자로 좁게 보아서 조직·성과가 위축되었다. 사 람들이 양극화와 정신 피폐로 고통받으니 불교가 할 일이 널려있다. 공유경 제, 공동체, 마음 챙김 등이 조직·성과의 불교적 모델이다. 출가자가 전문성 을 키워서 사찰공간, 전통문화, 자연환경을 사업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출가 자·재가자가 함께 교육, 복지, 농업 등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면 어떨까. 수 행·생업을 접목한 운력運力을 시민운동으로 전개해도 좋겠다.

서유기 끝부분. 삼장 일행이 처음 받은 불경은 백지였다. 천신만고의 보 상이 공空이라니. 다시 사정해서 문자로 채워진 경을 구했다. 불립문자, 문자 에 의지하되 뛰어넘으라는 가르침이다. 경영원론 문자들이 기업을 번잡하 게 만들었다. 이제 백지에 기업경을 새로 써나가야겠다. 인터넷·모바일 기 반의 위키피디아가 기업경의 한 예일지 모른다. 핵심은 다양한 견해와 실천 경험을 통섭하고 계속 진화하는 것이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