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와 함께한 동물 식물] 코코넛과 낙타

순수함의 상징 코코넛, 낙타를 추리했던 붓다

2018-12-24     심재관

코코넛

한여름 인도 길가의 그늘 아래서 언젠가 코코넛 왈라(Coconut wala: 코코넛 상인)를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는 낫으로 윗부분을 정확히 도려내 겨우 빨대를 꽂을 만한 구멍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그리고 빨대가 꽂힌 그 코코넛을 당신에게 건넬 것이다. 갈증이 심하더라도 그 안의 코코넛 수액을 마시기 전에 기억할 것이 있다. 그 안에 있던 코코넛 수액은 방금 전 입구가 잘려나가기 전에 한번 도 외부 세계와 공기조차 접촉한 적이 없었으며, 지금 막 당신의 입과 목구멍에 처음 닿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코코넛은 순수(viśuddha)의 상징이다. 인도 사람들은 이 순수함과 정결함을 사랑한다. 그리고 코코넛이 보여주는 순수의 의미를 잘 활용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동남아 일부의 불교 승려들은 출가하기 전에 이 코코넛을 교단에 바친다.

자신의 출가를 받아주고 계율을 내려줄 승려 들에게 이 코코넛을 준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적이 고 정신적인 순수함을 교단에 의탁하겠다는 의미 이다. 성욕을 억제하고 독신 수행의 출가 사문이 되기 위해 그는 외부세계와 불순한 접촉을 끊어낸다. 마치 코코넛과 같이, 그는 계율을 통해 세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매우 단단한 차단벽을 갖게 된다.

출가 사문들뿐 아니라, 힌두 사회에서도 이러한 코코넛의 상징성은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다. 인도의 카스트 위계가 유지되는 첫 번째 조건은 계급의 순수성이다. 순수성은 외부 접촉을 단속함 으로써, 즉 다른 계급과 섞이거나 그렇게 될 수 있는 오염원의 조건을 단속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그러한 순수성을 내포하는 열매가 코코넛이다.

힌두교나 불교 사원을 장식하고 있는 푸르나 가타 (purn. a ghat.a, 또는 푸르나 쿰밤 purn. a kumbham)의 조각은 보통 물단지나 물항아리의 주둥이에 망고 잎들을 꽂아 주고 그 위에 껍질을 벗긴 코코넛을 세로로 세워 올려놓은 모습을 한다. 현재의 의례 속에서도 여전히 푸르나 가타를 통해 코코넛을 올리는 이유도 순수의 상징에 있다. 이러한 코코넛이 보여주는 순수함의 상징성을 이해하게 된다면, 왜 거의 모든 인도의 종교적 의례나 사회적 의례 속에서 코코넛이 소비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많은 나무들이 그렇듯, 코코넛 또한 풍요의 상징이다. 열매를 맺으면 나무가 죽어버리는바나나와 달리, 기온이 괜찮다면 코코넛은 사시사철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다 익지 않아도 먹을 수있고, 다 익으면 쓸모가 더 많다. 스리랑카에는 임신한 부인이 출산할 때가 되면, 탁자 위에 코코넛등을 올려 놓은 탁자와 부인의 손가락을 묶어주 고, 『앙굴리말라An. gulimāla경經』(이점은 정말 특이하다!)을 읊어주는 의식이 있는데, 이 경우도 코코넛은 풍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코넛 나무(Cocos nucifera)는 고대 인도로부터 중요한 자산으로 쓰였다. 열매의 흰 속은 식자재 로 사용하거나 이를 말려서 코코넛 오일을 짰다. 이것으로 음식을 볶거나, 지금처럼 신에게 올리는 등공양에 사용하기도 했다. 흰 속살이 차오르기 전 아직 어린 코코넛 열매는 달착지근한 코코넛 수액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영양 공급원으로도 괜찮다. 때로는 이를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단단하게 익은 신선한 속살은 갈아서 코코넛 처트니Coconut Chutney를 만드는데, 이는 지 금도 남인도의 곁들이 음식 가운데 하나다. 열매의 두꺼운 겉껍질은 말렸다가 땔감으로 사용하고, 목재는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했다. 심지어 속껍질에 붙어있는 섬유들은 거름망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어부들이 먼 바다로 나갈 때는 이 코코넛야자를 배 양쪽에 잔뜩 붙이고 나갔는데, 물이 떨어지거나 식량이 떨어졌을 때 비상 식량을 대신하기도 했다. 이 나무의 쓰임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코코넛은 산스크리트어로 날리케라(Nā.likera 또 는 나리케라nārikera)로 불렀는데, 이를 불경에서 나라 계라那羅雞羅, 나리기타那利耆陀, 나리라那梨羅 등으로 옮겨 불렀다. 그런데, 불교 이전에 해당할 것으로 여겨지는 베다문헌에서는 코코넛이 거의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완전히 후대에 작성된 베다 의례문헌에서 소소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인도 의학서인 『수슈르타-상히타Suśruta-sam. hita』에서 코 코넛을 약용으로 쓰고 있는 사례로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 인도인들은 적어도 기원전 3세기경에 는 이 코코넛을 사용했을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수슈르타-상히타』는 그 문헌이 만들어진 역사 층위가 다양해서 언제부터 코코넛을 음식으로 사용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쯤 되면 우리는 실제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 코코넛 열매를 당시에 드셨는지 더 의문이 들게 된다. 코코넛이 지금은 인도의 비하르와 아 쌈을 포함해 네팔 전역에 재배되고 있지만 코코넛의 실제 자생적 번식은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 madhyapradesh주에도 거의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의문은 다시 꼬리를 물고 팔리 경전에 등장하는 계율로 옮겨갈 것이다. 율장에 따르면, 부처님은 당시 오후 불식을 제자들에게 당부했고, 대신 오후에도 먹을 수 있는 과일 음료는 허용하신 듯 보인다. 이 음료들은 당糖을 첨가해 오전 한 끼로 주린 배를 위로할 수 있었다. 문헌 속에는 과일 음료 가운데에는 여덟 가지 음료가 열거되는데, 그 중에 하나 초차파나cocapāna가 보인다. 학자들은 이 것을 코코넛 음료로 보기도 하지만, 이것이 코코아 열매로 만든 음료인지, 코코넛 음료인지는 불 확실하다. 부처님은 과연 코코넛을 드셨던가?

우리는 아직이 물음에 대답할 만큼 충분한 단서를 갖지 못한다.

낙타

앞의 코코넛만큼이나 불교에 낯선 동물이 낙타다. 저명한 중국학자 발레리 한센Valerie Hansen은 자신의 책에서 르콕Le Coq이 어떤 식으로 키질Kizil 석 굴의 불교벽화를 뜯어내 독일까지 옮겨왔는지를 인용한 적이 있다. 르콕의 말에 따르면, 벽화가 붙어있던 벽면은 마치 한국의 흙집과 같이 진흙을 낙타의 똥과 짚을 함께 섞어서 올린 것으로, 그 위에 회마감을 하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는 쥐꼬리톱을 이용해 벽에서 그림을 분리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낙타똥을 섞은 벽이라니. 낙타의똥은 사막 기후에서 더없이 단단하게 건조되기 때문에 돌이 부족한 지역에서 벽의 내부강화재로 사용하기 적당했을 것이다. 낙타의 똥은 실크로드의 상인들이 사막에서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중요 한 자원이 되기도 했다. 물론 가죽이나 고기, 우유도 이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오래 전 내가 달렘Dahlem에 있는 아시아미술박물관에서 이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유물의 수량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뜯어온 유물들을 그대로 박제 형태로 옮겨놓았던 모습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키질의 석굴벽화는 거의 뜯겨진 채로 유럽과 일본 등의 유물로 전락하고 있었 다. 독일은 그중에서 가장 많은 유물을 획득한 나라였는데, 박물관 내부에는 그 유물이 있었던 석굴형태를 그대로 재현해놓고 그 벽면에 매끄럽게 잘려나간 벽화를 고정시켜 놓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아름다운 사람을 소유하기 위해 그를 질식시킨 후 정교한 미라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몇 개의 팔다리는 잃어버린 채로 말이다.

필시 키질에서부터 이 유물들을 싣고 왔을 낙타들은 ‘박트리아 낙타(Bactrian Camel)’일 것이다. 박트리아 낙타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로 중동지역 의 낙타와 달리, 건조한 기후 뿐 아니라 추위에도 잘 견디며 고산 지역에서도 문제없이 이동한다. 이 낙타는 훨씬 후대에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아라비안낙타(Arabian Camel)’와 다른 종인데 아라비안 낙타는 가운데 등의 혹이 하나뿐이다. 고대 인도 의 조각 속에서 가장 일찍 표현되는 낙타는 이 ‘박트리아 낙타’라고 부는 종種이다. 등에 두 개의 혹을 달고 있는 낙타인데, 보통 그 혹 사이에 사람이 올라타게 된다. 이 모습은 산치Sañci스투파에 잘 나 타나 있다.

기원전에 이 모습이 조각되었다면, 부처님도 아마 낙타를 실제로 보고 경험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경전에는 수없이 많이 낙타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직접 부처님이 낙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문학적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십송률十誦律』에는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낙타처럼 앉지 말 것을 당부하는 구절도 있으며, 낙타털로 짠 옷감은 청정한 옷감이 아니니 입지 말 것을 당부하는 구절이 있다. 당시의 기후나 장소를 고려할 때 부처님의 유행지는 낙타를 빈번하게 보거나, 낙타털 옷감을 입을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경전은 부처님이 마치 셜록 홈즈나 바스커빌의 윌리암처럼 나타나 낙타를 찾아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부처님이 법을 설하면서 사막 지역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는 한 상인들을 마주치게 되는 데, 그들은 잃어버린 낙타를 찾고 있었다. 상인들이 물었다.

‘잃어버린 우리 낙타를 찾고 있는데, 혹시 보셨소?’

‘아니요. 그렇지만 혹시 왼쪽 눈이 멀고 왼쪽 다리를 저는 낙타가 아니었나요? 그리고 앞니는 없구요?’

상인들은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을 수상쩍게 생각했다. 자신들의 낙타를 보지도 않았다면서 자신 들의 낙타를 정확히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낙타를 훔쳤을 것이라 생각하고 상인들은 부처님을 데리고 마을 장로들에게 향했다. 마을 장로들은 부처님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 상인들의 낙타가 왼쪽다리와 왼쪽 눈이 먼 것을 아셨소?’

‘길 오른쪽 편의 풀들만 뜯겨진 흔적이 있더군 요. 그래서 동물의 왼쪽 눈이 멀었다고 생각했지요.’ ‘낙타의 왼발이 어떻게 절름발이란 걸 아셨소?’ ‘길에 난 발자국을 보니 오른쪽 발자국이 다른 왼쪽 발자국보다 깊게 나있더군요. 그래서 낙타가 왼발을 절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럼, 앞니가 없는 건 어떻게 아셨소?’

‘잘려진 풀잎들을 보니 중간부분이 그대로 있더 군요. 그래서 혹 앞니가 빠졌나 하고 생각했었지요.’

부처님이 유행遊行하던 지역에 실제로 사막과 낙타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이 멋진 추리를 보여주는 스승의 이야기가 사실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