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불교개론] 불교 성전의 언어적 변용

2018-12-24     장휘옥, 김사업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나의 가르침(=법)에 대 해 설했나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잡기 위함이 아니다. ...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非法)이야.” (『맛지마 니까야』 22)

 

| 변용의 진실

아함과 니까야, 그리고 대승경전을 포함한 모든 고전적 불교 문헌은 석가모 니의 말씀 100% 그대로라고는 할 수 없고, 오랜 세월에 걸친 변용이 혼재되 어 있으며, 그 가운데 순수 석가모니의 말씀만 추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에 가깝다는 것을 지난 11월호에서 밝혔다.

그런데 마치 녹음한 파일처럼 석가모니 육성 그대로의 가르침이 저기에 한 권의 책으로 있다고 하자. 그 책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내가 읽고 음미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음미한다면, 엄 격한 의미에서 그 순간부터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나의 내부에서 변용되기 시작한다.

온도계가 26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저마다 실제로 느끼는 온도는 각각 다르고, 나 한 사람만 보더라도 건강 상태나 기분에 따라 24도 또는 29도로 도 느껴질 수 있다. 26도가 24도 또는 29도로 변용되는 것이다. 경전 한 구절 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감동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고, 연륜과 안목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들린다. ‘다르다’는 것은 변용을 뜻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도 변용될 뿐만 아니라, 연구자의 자세에 의해서도 당연히 변용된다. 물론 여기 서의 변용은 석가모니 가르침에 대한 해석의 차이, 언어적 표현의 차이를 말 한다. 변용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냥 그것으로 저기에 그대로 두라 는 것이므로,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적 해석과 음미, 소통의 금지일 수 도 있다.

불교는 이 변용을 어떻게 바라볼까. 불교의 핵심 교리가 연기緣起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기를 간단히 말하면, ‘조건에 의한 생 성’이다.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소멸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건에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때문에 모든 것은 변하며 무상無常할 수밖에 없다.

나의 기분이나 안목도 조건에 해당하며, 시대와 장소, 연구자의 자세도 조건에 해당한다. 이들 조건에 따라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사실도 연기가 의미하는 바에 포함된다. 따라서 불교는 원리적으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변용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변용 될 수 있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석가모니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있다. 도쿄(東京)대학 시모다 마사히로(下田正弘) 교수의 학설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 성전의 언어적 변용을 허용하는 불교의 전통

석가모니 당신 스스로가 성전의 언어적 변용을 허용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범천梵天 권청勸請의 설화’이고, 두 번째 는 ‘뗏목 비유의 경전’이며, 세 번째는 ‘해당 지방어로 설법하라는 권유’이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전하고 있는 다양한 전기들이 있다. 전기들은 전승 되어 온 계통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하지만 모든 전기에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 장면이 몇 개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범천梵天의 권청勸請’이다. 불교 성전은 바로 이 범천의 권청에 의해 처음으로 출현한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에 이른 직후, 연기의 이법은 심오해서 사람들에게 언어로는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설법을 단념하려고 했다. 그런데 범 천, 곧 바라문교의 최고신인 ‘브라흐만’이 석가모니의 이런 마음을 알고 깜짝 놀라 이대로는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석가모니 앞에 나타나, 이해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세 번이나 간청하여 석가모니는 이윽고 말 로써 설법하기로 한다.

이 설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언어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의 존재가 명확 히 의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말로써 다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불 교 성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여기에 사용된 언어는 모든 것을 표출하는 전능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어떤 것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다.

성전에 표현된 언어에 대한 석가모니의 이러한 인식이 구체적으로 드러 난 예가 ‘뗏목 비유의 경전’들이다. 빨리어로 된 『맛지마 니까야』(22)와 이에 대응하는 한역의 『중아함경』 등에는 석가모니가 자신의 가르침을, 강을 건 너기 위한 뗏목으로 비유하는 경전이 수록되어 있다. 『맛지마 니까야』(22)에 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나의 가르침(=법)에 대해 설했나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잡기 위함이 아니다. ...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非法)이야.

이들 경전에서 석가모니는 뗏목은 강을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잡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듯이, 자신의 가르침도 소기 의 목적을 달성했으면 버릴 것을 권한다.

여기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말로 표현된 가르침이다. 따라서 위의 내 용에 따른다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성전의 언어적 표현들은 절 대적 의미를 가지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전의 내용은 상황에 따라 서 적절히 취사선택될 수 있는 것이며, 시대나 지역의 변화 등 새로운 환경 에서는 가르침의 진의를 살려 갱신될 여지까지 석가모니는 허용하고 있다 고볼수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성전의 언어적 표현이 존재하는 것이 지, 언어적 표현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착각하면, 강을 건넌 후 에도 뗏목을 지고 천리 길을 가는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

또한 석가모니는 자신의 가르침을 해당 지방어로 설하라고 했다. 그가 청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사용하여 설법하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으 로 간주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인도는 현재 러시아를 제외한 동·서유럽을 합한 것보다 더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세계 7위의 광활한 면적이다. 사용하는 언어도 많아 연방정부 와 각 주의 주정부가 공용어로 인정하는 언어만 모두 합해도 20개에 이른다. 지방마다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심지어는 같은 도시라 해도 신분과 직업, 종 교에 따라 말이 다르며, 마을에 따라 말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 당시에도 언어의 다양성은 비슷했을 것이다.

이런 다언어사회多言語社會의 전형인 인도에서 각 지방어를 사용하여 가 르침을 전파한다면, 전파 지역이 확대될수록 가르침의 언어적 표현은 급속 히 확산된다. 한국어로 된 작품이 여러 외국어로 번역될 때와 같은 단순한 번역 수준의 양적 확산도 있었겠지만, 위의 뗏목의 비유를 감안한다면 그 지 방의 청중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쪽의 문화와 정서에 맞게 표현을 바꾸거 나 더하고 빼기도 하는 질적 확산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양적 ·질적으로 가르침의 버전 version이 확산되면 , 그것은 일반적으로 교단의 정체성 유지에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이를 피 하는 것이 통례다. 이런 점들을 충분히 예상했을 석가모니지만, 그는 각 지방 어로 불교를 전파하라고 함으로써 불교 성전이 확산되는 것을 인정하고 있 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성전의 언어적 변용을 허용했다고 볼 수 있는 또 하 나의 근거다.

가르침의 언어적 표현에 대한 석가모니의 이러한 태도를 계승한 불교 교단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성전의 언어적 변용이 확산되어 가는 것은 당연 한 일이었다. 만약 석가모니가 성전의 언어적 변용을 다른 종교처럼 철저히 금지 또는 반대했다면 후대의 다양한 성전의 출현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불교는 ‘열린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변용을 허용치 않은 종 교들의 성전은 불교의 그것과 비교할 때 변용의 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대표적인 불교 성전은 경·율·론 삼장이다. 성전의 언어적 변용, 즉 성전 의 확산에 관해 우선 논論에 대해 살펴보자. 논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한 불제자들의 해석을 담고 있는 장르다. 논은 1,000여 년의 세월에 걸쳐 끊임 없이 창출되어 왔다. 다양한 견해를 표명하는 논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었다 는 것은 가르침에 대한 언어적 변용이 계속 이어졌다는 뜻이다.

불교 성전에서 경의 설법자는 석가모니고, 율의 제정자도 석가모니로 되어 있다. 논의 저자만 해당 불제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관련 연구자들은 다음의 사실을 당연한 것처럼 인정한다. 율장 속에 수록된 기술의 많은 부분이 석가모니 입멸(入滅, 석가모니의 서거를 불교에서는 입멸이라고 부른다.) 후에 제작된 것이고, 거기에는 석가모니가 생존했던 때가 아니라 그 기술이 제작된 당시의 시대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석가모니 입멸 후에 제 작되어 율장에 추가적으로 수록된 기술이 많다는 것은 이러한 율에도 석가 모니의 이름을 빌린 언어적 변용이 이어졌다는 말이다.

경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아함과 니까야조차도 각 부파의 전승 과정 에서 많은 변용을 겪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직전 호에서 밝혔다. 지금까지 살 펴보았듯이, 석가모니는 성전의 언어적 변용을 허용하였으며 이후 불교는 경·율·론 삼장 전체를 통하여 변용과 확산을 거듭하는 전통을 형성해 왔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보기 힘든 불교만의 특색이며, ‘불교의 불교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라는 같은 토양에서 불교보다 약 1,000년 앞서 시 작된 바라문교는 베다 성전을 전승할 때 언어를 철저히 귀하게 여겨서 전승 의 매체가 되는 성전어의 전환도 허용하지 않을뿐더러, 내용의 삭제나 치환 도 용납하지 않는다.

유일신을 신봉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도 성전의 변용을 허용치 않는 것 은 마찬가지다. 말을 전하는 자가 신의 예언자가 되는 종교에서는 ‘범천의 권청’도 ‘뗏목의 비유’도 있을 수 없다. 반면, ‘조건에 의한 생성’을 뜻하는 연 기를 핵심 교리로 하는 불교에서 성전의 변용은 당연히 허용될 수밖에 없다 고 해야 할 것이다.

연기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단지 ‘모든 것은 변한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연기가 진정 보이고자 하는 고갱이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므로 그것에 절대성을 부여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그것에서 자유로워라 하는 것이다. 성전이 상황에 맞는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불교다움’이요, 불교가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이에 대해 마조(馬祖道一, 709?~788) 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도 했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같은 질문에 운문(雲門文偃, 864~949) 선사는 “똥 덩어리(乾屎橛)”라 했고, 동산(洞山守初, 910~990) 선사는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다.

세 선사가 똑같은 대답을 했다면 선禪, 아니 불교는 벌써 죽었다. 동산 선 사는 운문 선사의 제자다. 동산이 운문처럼 “똥 덩어리”라고 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동산은 운문에게 “이 밥통아!”라는 욕설과 함께 방망이로 호되게 맞았을 것이다. 당신은 뭐라 답하겠는가? 당신이 제대로 답하는 그 속에 불교는 살아서 숨 쉬고 있다.

 

| 대승경전과 대승불교

대승경전과 대승불교는 최근 세계 학계로부터 새로운 시각과 접근으로 조명받고 있다. 대승경전과 대승불교도 성전 변용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탄생 한 것이다. 『반야경』·『화엄경』·『법화경』·『아미타경』을 위시한 대승경전은 아함과 니까야보다 훨씬 더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기원 전후의 시기부터 기 원후 7세기까지 약 70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편찬되어 왔다.

대승경전의 창출은 대승불교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대승불 교의 기원에 대해 주류를 이룬 종래의 학설은 ‘재가·불탑교단 기원설’이었 다. 불탑 신앙을 주로 하는 재가자 중심의 대승교단이 있었고, 여기서 대승경 전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대승은 부파(=소승)불교의 흐름 과는 별도다’라는 미리 정해 놓은 전제에 입각한 이 설에는 문제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되는 것은 다음의 이것이다. 불탑이나 불 상을 중심으로 한 신앙과 의례는 대승불교를 일으킨 원동력이라 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재가·불탑교단 기원설’은 불탑 신앙의 요소가 부파불교에는 미 비해 있었다는 전제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재가자의 불탑 신앙을 비롯한 신앙 과 의례는 그 최초기부터 일관되게 부파불교의 출가 교단이 재가자와의 관 계를 통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던 분야이기 때문에, 대승불교라는, 부파불교 와는 다른 새로운 불교가 재가자의 불탑 신앙 그것 때문에 발생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세계 학계는 대승불교의 기원을 부파불교 세계의 내부에서 구한다 는 점에서 거의 통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대승불교를 일종의 경전 제작 운동으로 본다는 점도 세계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 분야에서 시모다 교수의 학설은 학계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와 는 별도로 그는 ‘불교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무슨 문제가 있 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통렬히 비판하면서 불교학이 지향해 야 할 새로운 지평도 열어 보인다.

그에 따르면 대승경전의 출현이 먼저고 대승교단은 대승경전의 출현이 가지고 온 결과물이다. 문자로 기록된 경전을 서사書寫경전이라 한다. 상당 한 세월에 걸쳐 서사경전인 대승경전에 영향받은 결과, 대승교단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시모다 교수의 견해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경전은 왜 출 현했으며, 그 성격은 무엇이고, 제작한 자들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다룬다.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 과정 졸업. 이후일본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화엄사상으로석사·박사학위를받고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중국불교사』 등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길을걷는자,너는누구냐』(공저),『무문관참구』(공저) 등이있다.

장휘옥ᆞ김사업
두사람은전문수행자의길을걷기위해2001년함께대학강단을떠나남해안의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 지도로 1,000여 회에 이르는 독참을 통해 피나는 선문답을 나누며 수행해 왔다.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에서 수행·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