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수행자의 길

불자가정만들기

2007-09-15     관리자

"1930 년대 역사적 격동기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진 시련을 감내하며 살아온 지나간 생애를 이제와서는 한스럽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보다 불교의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삶이었지요."
서울시립대학교 환경공학과 김동민교수(65세, 덕산)는 우리나라 환경공학계의 원로교수로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대학강단에 서오면서 학생들과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어김없이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서재에서 예불문·반야심경·천수경 독송과 1시간 동안의 좌선(坐禪)시간을 갖고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삼보사찰 수련대회에 계속해서 참가하면서 학문과 수행의 길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목동 신시가지 13단지 내의 김동민 교수 댁은 여섯 식구가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부인 공민옥(65세, 묘련화) 여사와의 사이에는 1남 1녀를 두었다. 건축사 일을 하고 있는 아들 김석환 씨와 집안에서 가사일을 돌보는 며느리 이미애 씨, 그리고 국민학교에 다니는 손녀 진희 양·손자 근표 군 이렇게 3세대가 한 집에서 산 지 12년째가 되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김석환(39세) 씨의 생일날이었다. 음력으로 윤달 8월 12일이 본 생일인데 지금까지 제대로 맞지를 않아 양력으로 지내왔다. 그런데 바로 오늘이 생후 처음으로 윤달의 음력 생일을 맞았고, 그래서 같은 아파트의 5단지에 살고 있는 딸 김은주 씨와 인천제철에서 과장으로 있는 사위 박용근 씨 내외와 외손자 형준 군을 비롯해 온 가족이 경사스런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남편과 결혼을 한 후 폐백을 절에서 올렸어요. 마포의 극락암이란 곳에서요. 지금도 그곳을 지나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저도 절에 가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서 좋아요. 그래서 절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갑니다."
공민옥 여사는 도봉산 호암사에 남편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그동안 자식들 키우고 집안 일 때문에 절에 자주 다니지는 못하고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집에서 불경을 독경하고 평상시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기분이 밝아진다고.
"우리 집사람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무척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일생동안 자기 의욕대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주변사람들을 위해 보살 행으로 살아왔지요. 불교를 알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듣던 김동민 교수의 말이다.
"자랑할게 너무 많아요. 어머님은 늘 우리들 입장을 먼저 생각하시고 저희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세요. 친정 어머님 같은 느낌이 들지요."
며느리 이미애 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보면 좋은 점이 더 많아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편하게 살고 있다며 오히려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한다.
몇 해 전에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 전에 계속해서 같이 살 것인지에 대해서 아들 내외와 상의를 한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장점과 단점을 따져 보고 처음에는 따로 살기로 했었지만 며느리 이미애 씨의 제안을 다시 받아들여 같이 살기로 하였다.
"아들 내외와 12년 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며느리가 얼마나 많이 참았겠어요. 요즈음 현대여성으로는 보기 드물지요. 지금은 우리 두 부부만 절에 다니고 있지만 자식들도 나이가 들고 인생경험에 비추어 그때 절에 나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안의 화목과 안정을 위해서는 부모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리고 젊은 세대도 전통적 윤리 규범의 가치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동민 교수는 그런 면에서 며느리를 마음 속으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저는 불운했던 성장기를 보냈어요. 일찍이 아버님을 여의고 어릴 때부터 홀어머니를 도우며 등짐행상을 해서 6년제 중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 때문에 힘들게 고학으로 대학교·대학원·유학까지 다녀왔지요."
경기도 장단군(현 판문점)이 고향인 김동민 교수는 20대에 처음 서양문물이 들어와서인지 기독교가 신식종교 같고 해서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전통적인 유교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맞지가 않았다. 언젠가 인도의 성자 라즈니쉬의 '마하무드라의 노래'라는 책을 읽고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티베트 불교의 티로파(Tilopa)의 가르침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면서 선(禪)과 인도의 초월 명상법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다.
"이번 여름에도 통도사 수련대회에 다녀왔지요. 나이 제한이 있어 자원봉사자로 동참을 하였고,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지는 고된 일과이지만 끝마치고 났을 때의 시원함과 상쾌함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몸과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정년 퇴임을 1년 앞두고 있으면서도 학생들과 어울려 사제지간의 정을 다지며 설악산과 지리산으로 자주 산행(山行)을 하고 있다. 교수님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가 5명이나 있고 그 밖의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두었다. 밀양산업대 환경공학과 이병인 교수와 국토개발연구원 김선희 박사를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저는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환경보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산다면 환경운동도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퇴임 후에는 불교와 환경에 관계된 연구를 하며 경전 속의 내용을 현대문명과 접목시켜 현대적인 언어로 풀이하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사위 박용근 씨는 이런 교수님에 대해 젊은 사람으로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며 한마디 거든다. "장인어른께서는 말씀하시는 것과 행동이 항상 일치되어 마음 속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들 김석환 씨 또한 아버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무 원리원칙대로 사시는 분이라 힘들 때도 있습니다. 아버님은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세요. 속마음은 안 그러신데…."
김동민 교수는 불교 공부와 좌선을 하다보면 전생의 미완성이었던 자신이 수행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하여 이러한 환경과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이론적이 아닌 수행의 느낌으로 윤회를 믿고 있으며 세상이 이번 삶으로만 끝난다고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 태어날 것을 대비하면서 수행을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김동민 교수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제 삶을 정리하면서 무엇을 잘못했는가 돌이켜 보고 잘 마무리해서 다음 생에 태어날 때는 한 차원 높은 수행의 단계에 오르는 것이 소망입니다."
김동민 교수는 현대사회에 맞는 방편으로 포교가 활성화되고, 사찰의 조직과 재무관리도 현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말을 맺었다. 한평생을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학문과 수행으로 일관해오며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신 김동민 교수의 그 모습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정의 화목 또한 그러한 감동과 빛에서 연유되는 것이리라.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