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4년간 봉사 마치고 귀국한 탄하 스님

[사람과 사람들] 빛나는 땅 아프리카 케냐, 4년간의 이야기

2018-11-23     김우진
사진 : 최배문

딱 한 명. 케냐 땅에 살던 유일한 한국 스님이었던 탄하 스님이 올해 9월을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구촌공생회(이사장 월주 스님) 케냐 지부장으로 활동한 지 4년 만이다. 모든 것이 낯선 아프리카 땅에 지구촌공생회가 자리를 잡고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중심에는 탄하 스님의 역할이 컸다. 거칠어진 스님의 피부가 그간의 여정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    눈을 뜨게 하는 일, 눈을 감게 하는 일

탄하 스님이 케냐에 가서 먼저 관심을 쏟은 것은 학교 수업이었다. 

처음 현지 학교를 방문하던 날, 스님은 깜짝 놀랐다. 교실 전체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탄하 스님은 학교에 갈 때면 매번 청소와 위생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지구촌공생회가 케냐에서 운영을 지원하는 학교는 초등학교 2곳과 중‧고등학교 3곳. 이곳을 다니는 학생만 900여 명이 넘는다. 그들을 가르치는 40여 명의 선생들에게 스님은 청결과 위생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도 예전에는 가난했었다. 그래서 위생이 무엇인지 청결이 무엇인지 몰랐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으면 전염병이 돌고 건강에 위협이 된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건강하려면 주변의 위생부터 살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를 해도 변하는 게 없었다. 피부로 와닿게 하는 수밖엔 없다는 생각으로 학교의 교장 선생님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했더니 케냐 교장선생님들이 놀라더라구요. 한국 할아버지들이 쉬지 않고 일하고,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면서 번 돈으로 여러분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케냐 교장 선생님들은 한국의 모습을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탄하 스님은 그들에게 깨끗한 거리와 일하는 사람들, 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숙소도 호텔에서 묵지 않고 아는 보살님의 도움으로 홈스테이를 했다. 한국인들의 생활공간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교장들끼리 모여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느낀 점이 많았다. 케냐로 돌아온 교장 선생님들이 나서서 교사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스님이 지적하던 청소와 위생 문제를 교장이 직접 교사들에게 지시했다.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던 교사들의 태도도 변했다.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스님은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기본 교육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의식주 관련 문제는 물론이고, 특히 인권이나 여성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케냐인들은 아직도 여자를 남자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염소 몇 마리에 팔기도 합니다. 그런 인식이 만연해 있다 보니 성폭력이나 낙태,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이 비일비재하죠.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태어나는 아이들도 많아요.”

탄하 스님이 케냐에 있는 동안 겪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집으로 팔려가기 싫어 학교로 도망 오는 아이, 두세 시간 거리의 학교에 등교하다 숲속에 숨어있던 남자에게 겁탈당한 소녀, 집에 먹을 게 없어 60대 노인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경우 등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런 일을 겪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였어요. 사회시스템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데 변화는 더디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저 혼자 그 모든 아이들을 도와줄 수 없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진제공 : 지구촌공생회
사진제공 : 지구촌공생회

|    고기 낚는 방법

탄하 스님이 지구촌공생회 케냐 지부장으로 임명된 것은 2014년 7월. 

지구촌공생회는 2007년 케냐 남부 카지아도 지역에서 우물 관정사업을 시범적으로 시작하면서 지역개발과 교육부분까지 지원 사업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두 시간 이상 떨어진 카지아도 지역은 마사이 족이 모여 사는 곳. 이곳 원주민인 마사이 족들은 대부분 흙집을 짓고 살며, 넓은 땅에서 주로 유목생활을 한다. 지구촌공생회는 교육을 통해 이곳 주민들이 정착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농사짓는 법도 가르치고 있다. 우물을 파는 것과 교육기관을 짓는 것, 농장을 조성하는 것, 모두 이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곳 아이들은 학교에 두세 시간씩 걸어와요. 우유에 찻잎을 넣고 끓인 짜이 한잔을 아침식사로 마시고는 두세 시간씩 걸어오는 거죠. 음식이 부족해 아이들 중 절반 정도는 그마저도 먹지 못하고 등교합니다.” 

점심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주는 곳도 있지만, 점심을 못 주는 곳도 많다. 급식을 주는 곳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처럼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니라 약간의 옥수수나 감자가 전부다. 수돗물로 배를 채운다는 말도 할 수 없다. 수돗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굶는 게 일상인 셈이다. 아이들은 결국 주린 배로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는다. 저녁밥도 죽이나 간단한 식사가 전부다. 그래서 아이들은 해가 지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잠이들어야 굶주림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공생회가 지원하는 학교에서는 점심에 급식을 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이곳으로 전학을 오는 일이 많다. 절차는 나중 일이고, 음식을 준다고 하니 무작정 찾아오는 것이다. 약간의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원래 다니던 학교보다 더 먼 거리를 마다 않고 걸어온다.

하지만, 지구촌공생회가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따로 있다. 단순 지원보다는 자립할 수 있도록 근원적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물고기를 나눠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식이다. 이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같은 지원은 무상이 아니다. 현지인들은 사업비의 10퍼센트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동기를 부여하고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학교 옆 농장에서 농작물을 생산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지구촌공생회의 봉사와 지원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더 이상 배고픔 속에 살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지구촌공생회의 목적이다. 탄하 스님은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낚는 법을 알려주라는 말이 있잖아요.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전적 지원은 그때뿐이더라고요. 지속적으로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중심으로 농장을 가꿔 농작물을 생산하도록 지도했습니다.”

스님은 케냐 사람들과 어울려 옥수수, 감자, 배추, 무, 케일 등 여러 농작물을 심었다. 농사에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잘 가꿔 수확해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농작물을 팔아 이윤을 남길 때도 있었다. 남은 이윤은 다시 농사를 짓는 데 쓰거나 학교 운영비와 아이들 복지 지원비로 사용하도록 가르쳤다.

2017년 진행한 나눔과 꿈 자립급식 사업을 보면 1억 원 가까운 지원금과 약 2,400만 원의 자부담금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3곳의 학교에 총 1만2천평의 농장을 조성해 케일과 콩, 옥수수 등을 수확해 3곳 학교 360여 명의 자립급식에 사용했다.

사진제공 : 지구촌공생회
사진제공 : 지구촌공생회

|    내 인생 최고의 수행처

케냐에서 탄하 스님은 유명인사다. 

케냐는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문화가 그들의 삶에 퍼져 있다. 기독교를 제외하면 이슬람이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케냐 사람들에게 불교는 생소한 종교다. 그렇기에 케냐에서 혼자인 스님이 지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

“케냐에 있는 한국인들 중 선교사만 700여 명입니다. 스님은 저 혼자죠. 불교를 종교로 내세우지는 않았어요. 스님인 제가 기독교인인 마사이 족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며 한인 선교사들이 도움을 주기도 하더라구요.(웃음) 케냐 주민들도 제 모습이 남과 달라 저를 아주 잘 알아보았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NGO들은 국제개발협력에 힘쓰며 아프리카 30개국 이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불교 NGO의 해외활동 중 아프리카 지역의 활동은 아름다운 동행의 탄자니아 지원과 지구촌공생회의 케냐 지원 두 곳뿐이다. 그러다 보니 회색 승복에 삭발한 스님의 독특한 모습은 케냐인들에게 늘 화제였다. 불교 문화를 처음 보는 대다수의 케냐 사람들에게 불교는 곧 탄하 스님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스님도 매 순간 책임감을 느끼며 지냈다. 아이들은 탄하 스님을 “한국에서 온 불교의 예수님”라고 부르며 따랐다.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스님.

스님은 케냐에서의 기억이 모두 소중하다고 했다. 매 순간이 빛났고, 모든 활동이 보람있었다. 지구촌공생회를 통해 케냐에 간 것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고, 수행이었다. 남을 위해 땀 흘리며 자신의 도움으로 함박웃음 짓는 그들의 모습에서 무엇보다 큰 기쁨을 느낄 때 정말 행복했다. 그곳 사람들에게 베푼 것보다 그 속에서 배운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케냐 주정부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게 바라는 게 없다고, 고맙다고. 그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불교에 호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