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살행론]회향 보살의 작고 기쁜 책을 꿈꾸며

2018-11-23     재마 스님
그림 : 재마 스님


제가 보살의 수행법에 대한 이 책을 지어 쌓은 공덕으로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처럼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어디에서나 몸과 마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모두 제 공덕의 힘으로 한량없는 기쁨과 행복을 얻게 하소서! 그들이 윤회 속에 남아 있는 한 그들에게 금생의 행복이 줄지 않고 궁극에는 모두 부처님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1~4) 


『입보살행론』 10장은 「회향품廻向品」입니다. 회향은 되돌려 나아간다는 뜻으로 선한 일, 공덕을 쌓을 만한 일을 했을 때 그 공功을 자신이 갖지 않고 어딘가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절집에서는 매일 사시에 부처님께 마지공양을 올리고, 일체중생을 위한 3처處 회향 축원을 합니다. 3처 회향이란 중생과 보리와 진여에 회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 회향은 커다란 자비로 일체 존재를 이롭게 하는 것이고, 보리 회향은 모든 선한 의도와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진여 회향은 회향하는 이나 회향할 공덕이나 회향을 받을 이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성을 깨달은 열반의 회향을 말합니다. 나누되 나눈 바 없는 무주상보시처럼, 회향을 하되 한 바 없이 회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회향은 보리자량菩提資糧과 복덕의 자원이 됩니다.

샨티데바 스님은 『입보살행론』을 지은 목적이, 첫째는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처럼 깨어 있는 삶을 기원하고, 모든 이들이 완전하고 궁극의 깨달음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윤회를 계속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이 고통에서 벗어나 한량없는 기쁨을 얻어 금생의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선근 공덕뿐만 아니라 여러 보살들에 의해 중생들의 모든 장애와 어려움이 씻어지고 최고의 안락을 누리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입니다. 『입보살행론』은 어쩌면 샨티데바 스님의 육바라밀 수행을 기록한 것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애썼던 흔적을 남기거나, 아니면 가장 자신 있는 무엇을 세상에 남긴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글은 작가의 인격과 수행과 삶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어떤 책을 지을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을 이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요? 자신이 가장 애썼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긴다면 어떤 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제가 주고 싶은 것,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사유해봅니다. 제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다른 이를 이롭게 하고, 기쁨과 안락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책이 될 수 있을지 사유해봅니다.

10장 「회향품」에는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몸을 가진 이들이 모두 극락정토의 기쁨(4)’을 누리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첫 부분에 등장합니다. 불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옥은 144개나 되는데, 그중 10장에서 묘사하는 것은 칼산지옥과 깨진 쇠와 가시로 된 나무들, 타오르는 불더미, 어마어마한 산들과 쏟아지는 불타는 석탄, 용암, 칼, 무기로 하는 모든 싸움, 불같은 염산의 급류, 염라왕의 옥졸과 까마귀, 독수리들 같은 것들입니다. 다양한 불의 모습이 주를 이루지만, 고통을 받는 수많은 모습들을 묘사합니다. 

샨티데바 스님은 이런 고통이 즐거운 놀이동산이나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로, 호수에 향기로운 연꽃과 백조, 거위, 물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어우러짐으로, 보석더미와 시원한 수정바닥으로 이루어진 천상의 궁전으로 변해 고통이 사라지게 기원합니다. 고통을 주는 도구들이 꽃비가 되고, 꽃을 주고받는 놀이가 되며, 끊임없이 타오르는 지옥 불은 즐거운 구름들이 시원한 연꽃 비와 향기로운 비를 내려 극락으로 변모되도록(6~12) 자신의 선근 공덕을 회향합니다. 또 스님의 선근공덕으로 ‘보현보살을 비롯한 여러 보살들에 의해 모든 중생들의 장애가 씻겨지고 그들이 모두 최고의 안락을 누리기(15)’를 바랍니다.

이 장에서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보살 네 분이 등장합니다. 번뇌와 악업을 부수는 다이아몬드 같은 칼을 지닌 금강수보살(Vajrapa-n.i)의 도움과 뜨거운 지옥의 불과 열을 식히는 관세음보살(Avalokiteśvara)의 감로수, 자비로운 문수보살(Man~juśri)의 지혜, 온갖 덕행의 보석으로 장엄된 보현보살(Samantabhadra)입니다. 이 자비로운 대보살들의 서원과 힘은 지옥중생 뿐 아니라 잡아 먹힐까봐 두려움에 떠는 모든 축생들과 늘 굶주린 아귀들에게도 상쾌하고 청량한 행복의 감로수(16~17)를 흐르게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로 어떤 지옥에서 살고 있을까요? 우리를 찌르는 가시나 칼은 도처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한마디나 오해와 비난, 비판 등으로 실의에 빠지고 좌절했던 경험은 온갖 흉터를 남깁니다. 한 고개 넘으면 다른 칼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계속되는 운명의 장난 같은 고통의 산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샨티데바 스님은 이때 금강수보살의 칼로 번뇌와 고통을 단번에 자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가시와 칼은 무상과 무아의 칼로 자를 수 있습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상처를 내는 신념과 모든 습관들은 공성과 무한 가능성의 칼로 단박에 자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누군가가 찔리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지혜의 칼로 그분의 고통을 잘라 주는 금강수보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잘 살펴보면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집착과 원망, 혐오와 적개심으로 열이 올라서 자신이 있는 곳을 온통 뜨거운 불바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 혹은 무엇이 자신을 화나게 했다는 강한 신념으로 작은 불을 큰 불더미로 만들어 가고 있다면 관세음보살의 시원한 감로수와 보현보살의 즐거운 구름과 향기로운 비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비로운 보살들의 서원이 만드는 극락을 우리도 만들 수 있을까요? 샨티데바 스님의 발원처럼 우리도, 화로 불타는 지옥을 상쾌하고 고요한 호수에 용서와 받아들임의 물새들이 날개 짓고 노래하는 즐거운 극락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미움과 싫어하는 것들이 꽃비가 되고, 서로 상처를 내던 싸움은 축제와 놀이가 되는 세상을 말입니다. 

저는 겸허하게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 대보살들을 따라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온갖 쓰레기로 고통을 일으키는 마음의 공간에 부처님들의 성품인 꽃과 나비들이 머무는 궁전을 만든 샨티데바 스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염라왕의 옥졸과 까마귀, 독수리도 종종 경험합니다. 죽음에 가까운 경험, 자신을 잃을까봐 두려움에 떨었던 경험으로 말입니다. 누군가 아주 사랑하고 친밀했던 이와의 이별, 혹은 죽을 만큼 아팠던 질병의 고통은 염라왕이 보낸 독수리와 까마귀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번 생에 얼마나 많은 독수리와 까마귀의 초대장을 받았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애써 외면하거나 금방 잊어버리고 늘 허기진 채로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끊임없이 갈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만족하지 못하고, 늘 부족감과 결핍감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자애의 도움으로 아집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샨티데바 스님의 회향기도는 욕망으로 치닫고, 집착과 혐오를 오가며 고통의 널을 뛰며, 자신만 잘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치료하는 명약입니다. 보리심을 완성하고 이타심을 넓힐 수 있는, 무아와 공성을 실천하는 탁월한 수행입니다. 또 회향은 모든 중생들을 구하고 보호하며 고통을 덜어주고 기쁨을 증장시키는 보살의 육바라밀을 완성합니다.

이번 달은 가능하시다면, 『입보살행론』 10장을 매일 독송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 두려움과 멸시, 불안이나 슬픔’을 겪는 이는 없는지 따뜻한 관심을 가져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헤아려보고 실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삶으로 쓰는 에세이나 작은 책입니다. 그리고 그 공덕을 불보살님들의 회향을 본받아 함께 회향한다면 더없는 기쁨을 경험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재마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로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과학연구소에서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움직이는 법당, 춤추는 절을 꿈꾸며 소마명상여행을 이끌고 있다. 또한 종교를 초월해 마음비추기 피정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완화의료병동에서 영적돌봄 봉사를 하고 있다. 박사 논문으로 「사무량심의 가치 재발견과 체화프로그램 개발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