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마애불] 거창 가섭암지마애삼존입상

어머니 품속 같은 석굴에서 아미타삼존상을 만나다

2018-11-23     이성도
사진 : 최배문

거창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전북, 경북과 마주하는 경남의 최북단 서부지방이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의 1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빼어난 산수풍광의 고장이다. 이곳은 경상우도의 문향文鄕으로 영남유학의 거점이 되는 주요 고을이다. 조선 중기 충절의 상징이라 할 동계桐溪 정온鄭蘊선생(1569-1641)의 고택이 있고, 거창을 대표할만한 수승대를 비롯한 농월정, 요수정, 관수루 등 여러 정자와 누대 등 풍성한 사대부 문화가 있다. 거창에는 유교문화 못지않은 불교문화도 산재하는데 여러 전통사찰과 함께 양평동석조여래입상, 상림리석조보살입상, 농산리석조여래입상, 심우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가섭암지마애삼존입상, 고견사동종 등의 보물들이 있다. 또한 군단위로는 최초로 건립된 공립 거창박물관이 있어 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마애불이 있는 금원산金猿山은 거창의 서남쪽에 위치하는 1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다. 우거진 수목 사이로 거대한 흰 화강암 암반을 드러내면서 녹색의 수목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다.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곳곳에 큰 바위가 있어 마애불의 순례 길은 깊으면서도 시각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다. 거대한 매스mass를 가진 큰 바위들을 만나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풍광이다. 국내에서 단일바위로는 제일 크다는 문바위(門岩)에서 가섭암지까지 매스가 큰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그 옆으로 맑은 개울이 있다. 가섭암지는 매스와 볼륨이 큰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기대어 그 사이의 절묘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천연석굴이다. 석굴로 가는 가파른 계단은 점점 좁아지면서 두 허벅지 사이를 통과하는 듯한 묘한 진입동선을 만들고 있다. 큰 볼륨과 매스를 가진 바위 사이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것이 생명의 본향인 어머니 자궁을 파고드는 먼 여행 같은 미묘한 느낌이 있다. 내부는 천정이 경사진 삼각형이며, 석굴 내 서향의 수직 바위 면에 마애불상이 조성되어 있고, 열 평 남짓한 공간에는 한 낮이 되어야 햇빛이 든다.

마애삼존불은 깊은 산속 숨겨진 천연동굴에 삼존이 현현한 듯한 신비로운 모습이다. 바위 면을 따내어 중앙의 연화대위에 얕은 돋을새김을 하고 있는 삼존은 가운데 보주형 광배를 한 주존과 두광을 한 두 분의 협시보살상이 있다. 이 삼존은 도상의 크기 면에서 상대적인 차별성이 있다. 전체적으로 얕은 저부조로 판화를 보는 듯하다. 본존인 아미타불상의 수인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가슴 앞으로 올린 상품중생인을 취하고 있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아미타 삼존으로 보인다. 

주존은 보주형 광배, 양 협시보살은 원형 광배를 하고 있다. 아래로 이어진 면은 삼존불 전체의 광배인 양 협시보살상과 대좌를 남겨놓고 여백을 파내었다. 마치 목판의 여백처리를 보는 듯하다. 또한 바위틈으로 비추어지는 광선으로 바위 면의 기복이 도드라져 미묘한 감성을 유발하는데 참으로 감각적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손으로 천천히 더듬어 가보면 조각의 면이 매우 거친데도 시각적으로는 잔잔하다.

사진 : 최배문
사진 : 최배문

 

중앙의 본존불은 이마가 좁고 낮으며 육계는 큼직하다. 타원형의 둥근 얼굴에, 밑면이 넓고 위가 좁은 삼각형의 납작한 코, 초승달 같은 작은 눈과 얇은 입술의 작은 입, 휘어지면서 길게 내린 귀 등은 도식적이면서 토속적이다. 주존의 인간적인 모습은 투박하면서 어딘가에서 만난 듯한 평범하고 친근한 얼굴이다. 짧은 목과 어깨는 수평과 직각에 가깝게 사각형으로 딱딱하게 표현돼있다. 우리의 인체는 어깨에서 가슴, 배, 허리, 다리 그리고 발에 이르기까지 취하는 동세에 따라 볼륨의 변화가 무상하다. 그러나 본존상에서는 거의 같은 높이로 굴곡 없이 밋밋하게 표현되어 있어 자연스런 불신의 변화를 느낄 수 없다. 비례에 있어서도 가슴으로 올린 팔이 가늘고 짧아 보인다. 얼굴에서 보인 도식적인 표현이 팔이나 다리 그리고 발 등에서 계속된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직사각형의 면에 무릎 아래까지 음각의 U자형 큰 옷 주름이 이어진다. 기둥 같은 다리와 좌우로 돌린 발끝 등의 형식적이고 도식적인 처리는 마치 이집트 조각과 같다. 팔에서 흘러내린 긴 가사 자락은 발끝 가까이 내려간다. 본존의 여래상은 거의 대칭적인 모습이다. 본존의 좌대는 변형된 ∩자 모양으로 위로는 다섯 연잎이 있고 좌대 아래로는 복련의 세 연잎이 입체감 없는 평면적 표현으로 되어 있는 독특하지만 고식古式이다.

좌우의 협시보살도 본존과 유사한 도식적이고 투박한 얼굴로 평범하고 친근하다. 본존이 단순한 복식이라면 양 협시는 복잡한 복식을 하고 있다. 대의를 걸친 여래와 천의를 입은 보살의 차이로, 보살상이 더 복잡하고 장식성이 강하다. 양 협시보살은 약간 키가 작고, 체구 또한 빈약하다. 빈약한 몸매에 둥근 어깨의 얕은 볼륨을 제외하면 평면적이다. 

우 협시보살은 머리에 타원형의 보관을 쓰고 갸름한 얼굴에 오른손은 팔꿈치를 약간 꺾으면서 천의 자락을 옆으로 당긴 것처럼 잡고, 왼손은 가슴께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듯하다. 체구가 작으면서 더 여성스럽다. 좌 협시도 보관을 쓰고 얼굴은 넓고 길며, 오른손은 가슴에 올려 꽃을 들고 있다. 왼팔은 팔꿈치를 약간 꺾으면서 손은 허리 가까이에서 천의를 잡고 있는데 그 아래에는 천의와 영락의 장식이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모습으로 율동감이 있다. 천의에 영락으로 걸친 번잡한 옷차림이 아래로 수직의 띠처럼 면으로 흘러내리면서 옷자락이 신체 양쪽으로 물고기 지느러미같이 삐죽 나오는데, 마치 삼국시대 금동보살상을 보는 듯하다. 양 보살상 중에는 좌 협시보살이 천의의 노출 정도가 심하다. 한편, 삼존이 한 공간에 존재한다면 좌대의 높이는 달라질 수 있지만 기저선은 같아야 할 것인데, 현재로는 양 협시보살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사진 : 최배문
사진 : 최배문

 

전체적으로 삼존불의 표현방식은 저부조의 양각으로 처리했지만 볼륨감보다는 평면적이다. 일정한 두께로 돋을새김 했기 때문인데, 거창박물관에 전시 중인 탁본을 보면 튀어나온 광대뼈에 삼각형의 코, 그리고 도식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은 불신의 볼륨을 무시하고 밀어낸 목판의 판각한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면서 고졸古拙한 목판화를 연상시킨다. 본존의 사각대좌에 솟아 있는 연꽃 받침과 보살상 대좌의 아래쪽을 향하여 만개한 복련의 연꽃은 서로 대비를 이루고, 단순하면서 독특한 고식 표현으로 보인다. 본존의 앙련으로 된 연꽃은 도안화한 단순한 표현인데 비해 보살상의 연화좌는 거칠기는 하나 생동감 나는 모습이다. 마애불 주존의 보주형 광배 위쪽 꼭대기를 정점으로 하여 불상이 조각된 면으로 빗물이 넘어오지 않도록 긴 홈을 파놓은 사선의 큰 人형의 선은 거대한 연잎처럼 보이면서 그곳에 아미타 삼존이 현현한 듯하다.

삼존불의 왼쪽 사각 면에는 명문이 있다. 명문은 12줄 540여 자에 달하지만 박락이 심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판독되는 글로 미루어 마애불의 제작연도가 ‘천경원년天慶元年’, 이는 요遼나라의 연호이며 서력 1111년임을 알 수 있다. 고려 국왕의 ‘망모亡母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인물로 ‘제복堤福’, ‘법운法暈’ 등이 판독된다. 효심이 지극한 예종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조성하였다고 하나 지방 장인의 표현 역량의 한계로 뛰어난 조형성과는 거리가 있는 지극히 못생긴 모습이 되고 말았다. 예경의 대상인 불상의 미적 비평은 어렵지만, 조형을 조형으로서 이해한다면 평범한 얼굴의 못난이 삼형제 같은 지극히 소박한 모습이다. 조형세계에서는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표현 역량의 한계는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삼존상에 쏟은 장인의 정성은 조각 곳곳에 배어나면서 천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삼존불은 소박한 상호 그대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참배자를 맞고 있는 것이다. 

예종이 이 불상을 조성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했듯이, 나는 거창에 일어난 현대사의 비극인 ‘거창양민학살사건’에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 본다. 6‧25전쟁 중 1951년 2월 9~11일에 이 마애불에서 멀지 않은 신원면 일대에서 일어난 비극. 공비토벌에 나섰던 국군이 주민 719명을 공비에 협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중화기로 무차별 학살한 이 참극의 슬픔을 어이 말하랴. 한순간 구천에서 떠도는 고혼들이 이곳 아미타불과 관세음‧대세지보살의 위신력으로 극락왕생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해본다.               
          

이성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4회 개인전과 270여 회의 초대, 기획, 단체전에 출품하는 등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국 마애불의 조형성』 등 다수의 책을 썼고,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서 후학 양성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