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 일이 사람을 만든다

2018-11-23     유권준

●    노공爐供. 사찰 공양간에서 장작불을 담당하는 소임을 뜻하는 말이다. 부처님의 마지를 짓는, 장작불 관리를 맡 은 이를 상노공上爐供, 대중공양 짓는 이를 하노공下爐供이라 한다. 불씨를 잘 관리해 밥이 설익지도, 타지도 않게 잘 관리해야 하고, 이렇게 지은 마지공양을 각 전각의 부처님께 차질 없이 올려야 하는 일이다. 노공은 가마솥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 냄새를 맡아가며 불 조절을 한다. 김의 색깔도 보고, 가마솥에 흘러내리는 물방울도 살핀다. 솥뚜껑의 물방울이 솥을 한 바퀴 돌아 흐르고, 보글보글 김이 거품을 일으키는 ‘눈물’이 흐르면 불붙은 장작을 흩트려 중불로 줄인다. 다시 냄새를 맡고 밥 냄새가 무르익으면 약불로 하여 뜸을 들인다. 마지를 담을 때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입에는 마스크를 한다. 작은 티끌과 입김도 마지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가사와 장삼을 입고, 상단에 마지공양을 한다. 지난 여름 무더위는 공양간을 녹여버렸다. 겨울 새벽 삭풍은 온몸을 추위에 얼어붙게 만든다. 스님들은 ‘공양간 소임을 한 철 살면, 평생 남의 밥 얻어먹을 복을 짓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일이 고되고, 정성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마지공양을 올리는 자세는 특이하다. 마지 그릇을 들 때는 오른손으로 아랫부분을 받쳐 들고, 어깨 위로 올린다. 왼손은 오른 손목을 받쳐 붙잡는다. 부처님이 드실 밥에 입김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세를 잡으면 손목은 저리고, 손가락에는 통증마저 밀려온다. 스님은 마지 밥을 짓는 것에서 마지를 올리는 일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수행이라고 말한다. 공양을 올리는 데 비라도 내리고 바람마저 불면 행동 하나하나가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라도 얼면 더욱 긴장되는 일이다. 마지공양이 끝나면 큰 누룽지가 남는다. 주전부리가 적고,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 절집에 누룽지는 좋은 간식거리다. 누룽지는 큰스님부터 행자까지 고르게 나누어 드린다. 노공 소임을 맡은 스님의 막강한 권한(?)이다.

●    절집이든 세속이든 많은 소임이 있다. 하찮아 보이는 소임도 있고, 중요해 보이는 소임도 있다. 소임은 일종의 업業이다. 시절인연이 닿으면 해야만 하는 것이 일이고 까르마karma다. 우리는 흔히 체면과 인습, 전통이라는 굴레 속에서 일을 받아들인다. 하찮은 소임을 맡았다 하여 의기소침해 하기도 하고, 중요한 일을 맡았다 하여 우쭐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찮은 일과 중요한 일이라는 구분은 그저 세속적인 잣대일 뿐이다. 노공 소임처럼 그저 장작불을 관리하는 소임이라 하여 그 중요함이 다른 일에 비교해 떨어지지는 않는다.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 공양을 짓는 소임이라서가 아니다. 절 주차관리원에서, 공양간의 노공, 그리고 종단의 소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    붓다의 수행은 밥 먹는 일에서 시작한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인 밥 먹는 일조차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밥을 먹기 위해서 누군가는 밥을 지었을 것이다. 밥이 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삶을 지탱한다. 지혜로운 이는 하찮아 보이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난다. 주어진 소임을 책임 있게 다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수행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는 삶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삶도 중요하다.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를 만든다. 우리는 지금 어떤 태도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가. 내 발밑을 살피면 가야할 길이 보인다. 장작불 때는 노공스님이 가르쳐준 지혜다.